청춘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빠지면 섭섭한 단골 소재다. 하지만 ‘캠퍼스판 미생’을 표방해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된 현실을 그릴 것이라는 성장 드라마가 ‘인물의 성장’이 아닌 ‘로맨스’에 치중했다면 과연 청춘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KBS 2TV 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의 이야기다.

이미지: KBS 2TV

동명 웹툰이 원작인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명일대학교에 재학 중인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김소빈과 여준, 남수현은 겉보기엔 평범한 대학생 같지만, 사실은 다른 이들에겐 말하지 않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3학년 소빈은 과거 집안 사정으로 인해 놀림을 당한 게 트라우마로 남아 ‘평범하게 사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은 채 조용히 학교 생활을 이어왔다. 새내기 준은 외모와 친화력, 재력까지 겸비한 ‘명일대 최고의 인싸’지만, 가족으로부터 오랜 기간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받았다. 소빈과 마찬가지로 3학년인 수현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공부와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힘겹게 버티는 인물이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청춘’이지만, 속사정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게 드라마의 기획 의도이자 원작의 방향성이었다. 하지만 12부작 중 8회까지 방영된 시점까지 지켜본 바로는, 어째 본래 취지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원작 웹툰의 인물 서사가 어둡기도 하고, 또 남녀 주인공이 아닌 두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성장을 그리는 만큼 공중파에서 다루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드라마는 각색 과정에서 소빈과 준의 로맨스에 집중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러나 작중 분량과 중요도에 비해 서사와 인물들의 감정선에 설득력이 없어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그동안 ‘웹툰 원작 드라마’들이 각색을 거치면서 비슷한 난관을 겪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웹툰의 방대한 내용을 한정된 에피소드의 드라마에서 모두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인물 설정과 중요한 사건만 옮겨오고 캐릭터의 서사나 감정선을 일부 생략하거나 변화를 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각색의 결과가 매끄럽지 않다면 원작 팬과 일반 시청자로부터 각각 ‘원작 파괴’ 혹은 ‘개연성이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미지: KBS 2TV

대표적으로 준과 소빈의 로맨스가 아쉽다. 새내기 배움터에서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준이 소빈에게 교내 아르바이트를 양보하거나 연애 상담을 들어주고, 조별 과제를 하며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친한 대학교 선후배 혹은 누나 동생의 관계이지,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보는 계기라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물며 소빈이 자신의 오랜 짝사랑을 계획적으로 망쳐버린 준에게 그토록 쉽게 마음을 연다는 건 인물들의 서사나 감정선을 고려할 때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강민아와 박지훈의 얼굴과 연기력이 곧 개연성이라고 해도 말이다.

반대로 두 남자 주인공의 브로맨스는 보는 재미는 물론, 나름의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살아온 환경과 현재의 삶, 심지어 성격까지 정반대라 항상 ‘부딪히던 준과 수현은 조별 과제 이후 조금씩 가까워진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시작된 준의 호의는 어느덧 진심으로 변했고, 이를 매정하게 거절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던 수현은 본의 아니게 몇 차례 도움을 받는 동안 준의 진심을 깨닫는다. 서로 상극이던 두 사람이 점점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기대와 달리 흘러가는 이 작품을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이유는 빈약한 성장 서사와 로맨스에서 오는 아쉬움을 브로맨스가 달래주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지: KBS 2TV

일부 캐릭터들의 관계 묘사는 다소 아쉬울지 몰라도, 이를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 [연애혁명] 이후로 이번 작품이 두 번째 주연작인 박지훈은 섬세한 감정 연기로 부족한 캐릭터 서사를 채워나가고, 강민아는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소빈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배인혁 역시tvN [간 떨어지는 동거]의 계선우와는 전혀 다른 남수현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주연배우 세 사람뿐 아니라 권은빈과 우다비, 최정우와 나인우를 비롯한 배우들도 안정된 연기로 극에 활력을 보탠다. 특히 극중 악역인 한정호와 오천국을 맡은 이우제와 유인수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조별 과제 빌런’ 혹은 ‘민폐 학교 선배’의 모습을 정말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등장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미지: KBS 2TV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종영까지 4회만이 남았다. 청춘남녀의 가슴 설레는 로맨스나 브로맨스도 물론 좋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기대했던 건 앞에서도 말했듯이 준과 소빈, 수현이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이다. 남은 에피소드에서라도 세 청춘의 성장을 다루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뻔한 청춘 로맨스물’이라는 아쉬운 평가는 면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