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주말드라마 [악마판사]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법정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법정물의 기묘한 혼합으로 드라마 시작 전부터 독특한 첫인상을 남겼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을 뛰어넘는 사이다가 흘러넘친다. [악마판사]가 지닌 매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미지: tvN

먼저, 에피소드마다 시원한 쾌감을 선사하는 서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인물과 사건들을 넘나들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서사는 법정에 다다르면 상쾌한 매력을 발하는데, 지금까지 봤던 여느 법정과는 현저하게 다른 법정을 선보인다. 드라마 속 법정은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진행되며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된다. 대중은 실시간으로 변론과 증언을 듣고 증거물을 보면서 재판에 선 피고인에 대해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반응을 할 수 있다. 이에 맞물려 판사가 그에 걸맞은 형벌을 내리면 즉각적인 찬반 투표를 진행해 비로소 판결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그 비주얼은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기존의 법정에서 벗어나 대중의 입맛에 맞는 판결에 표를 던지는 ‘법정듀스 101’의 무대에 가까워 보인다. 첫인상은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시스템의 부패가 극에 달한 세계관에서 이러한 국민참여재판은 권력자들을 뒤흔드는 유일한 돌파구이며 매번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다루는 사건과 사람들도 하나같이 현실에서 봤음직한 익숙한 것들이 많다. 첫 법정에서 다뤘던 폐수 유출 사건을 일으킨 대기업부터 시작해,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다니는 정계 인사의 자녀, 위계 관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유명 연예인,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소수자를 향해 혐오와 폭력성을 드러내는 유튜버를 붙잡고 국민들의 손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적은 형량을 받고 끝났던 살균제 사건과 백화점 붕괴 사건의 유가족이거나 가해자가 풀려나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성범죄 피해자라는 배경을 지닌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부패한 권력자들을 비추고, 이들의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권력자를 위한 구조로 돌아가는 시스템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범죄자에게 그야말로 자신의 가해 사실에 준하는 형벌을 선사하며, 말 그대로 사이다 같은 쾌감을 안긴다. 전직 판사인 문유석 작가가 실제 법정에서 목도했던 답답함을 드라마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지: tvN

드라마의 두 번째 매력 포인트는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인물은 역시 지성과 진영이 연기한 강요한과 김가온으로, 두 사람은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기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요한은 처음엔 시청자도 헷갈릴 정도로 선인지, 악인지 확신할 수 없게끔 모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부패한 권력자들과 어울리고 교묘하게 사건의 증거를 조작해 법정의 흐름을 자신의 형세로 만들어버리는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가온은 그가 정말 정의로운 인물인지 의심한다. 가온은 정의라고 믿었던 사법 시스템이 부정부패로 인해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체득하면서 점차 요한의 방식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요한에게 있어서 가온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일하게 자신을 소중히 여겨준 죽은 형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위협받은 후로 두 사람은 안전한 요한의 집에서 같이 지내는데, 그 사이 가온은 요한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그를 이해하고, 요한은 가온에게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면서 점차 유사 가족 관계가 되어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미지: tvN

김민정이 연기한 정선아와 강요한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선아는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자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적 책임재단의 이사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거침없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굉장히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줄다리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특히 요한을 향한 선아의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 독특한데, 사랑이나 인간적인 호감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자신의 앞길을 번번이 방해하는 요한에게 살심을 내비칠 때도 있지만, 멋진 집에서 반짝반짝하게 자란 요한을 가져다가 자신의 곁에 예쁘게 장식해두고픈 수집욕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악마판사]는 마지막까지 단 4화 만을 남겨두고 있다. 부패한 기득권자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고, 대중의 지지를 무기로 법정을 이끌어왔던 요한과 시범재판부 팀은 위기에 직면했다. 과연 드라마는 끝까지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할 수 있을지,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