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봐야 할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하지만 ‘재미있다’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대신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지: 넷플릭스

안준호는 자대 배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군무 이탈 체포조, 이른바 D.P.로 발탁된다.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그동안 잡지 못한 탈영병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군무 이탈 담당관의 눈에 든 것. 하지만 첫 임무 도중 눈앞에서 놓친 탈영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준호는 상병 황호열과 함께 새로운 D.P. 조를 이루게 되고, 더 이상의 헛된 죽음은 없을 것이라 결심하며 탈영병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D.P.는 탈영병들을 뒤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다룬다. 군필자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보직이나, 어쨌거나 ‘남성들의 영원한 술 안주거리’ 정도로 여겼던 ‘대한민국 군대 이야기’다. 이 작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이야기인 만큼,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추적극 혹은 수사 추리물의 성격을 띤다. 상반된 성격의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한다는 부분에선 버디무비의 느낌도 물씬 풍긴다. 그리고 이 작품은 해당 장르들의 기본 요소들을 충실히 지키며 안정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준호와 호열이 작은 실마리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수사망을 좁히며 탈영병을 쫓는 과정은 흥미롭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추격전은 박진감이 넘친다. 진지하고 관찰력이 좋은 준호와 자유분방하지만 본능적인 촉을 지닌 호열을 연기한 정해인과 구교환이 빚어내는 케미스트리도 돋보인다. 그동안 비슷한 류의 작품들에서 접했던 익숙한 재미는 생소한 헌병대 군무 이탈 체포조, 나아가 군대 이야기에 순식간에 빠져들게끔 만든다. 전국 각지로 도망친 탈영병을 잡는다는 설정 덕에 공간적 배경이 한정되지 않고 다채롭다는 점도 여러 볼거리를 제공한다.

[D.P.]가 호평받는 건 ‘추적극’으로 봐도 흥미진진한 작품인 동시에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고발극’으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군대는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자주 소비됐던 소재다. 하지만 각종 예능과 드라마에서 비친 군의 이미지가 현실적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부분 겉으로 보이는 군대의 모습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담았을 뿐, 군대라는 폐쇄적인 사회의 이면을 묘사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카메라가 탈영병들과 군대 내무반을 비추는 순간부터 이 작품을 그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아니, ‘이렇게 즐겨도 되는 걸까?’라는 씁쓸한 의문을 안겨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군대라는 극도로 폐쇄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가혹행위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폭언과 폭행뿐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온갖 형태의 비인간적이 부조리가 만연한 군대 내무실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충격으로, 또 누군가에겐 아픈 기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슬픈 사실은, 이 모든 게 허구가 아닌 현실이며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점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D.P.]는 군대 내부의 폭력과 부조리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해서도 언급도 잊지 않는다. 극중 묘사된 노동력 착취나 빈부갈등, 가정폭력 등 역시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다를 바 없으며, 이 또한 절대로 방관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의 완성도에 방점을 찍은 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톤이다. 그동안 로맨스 장르에서 주로 활약한 정해인은 극초반부 염세적이고 감정을 숨기는 인물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채로운 감정을 내비치는 준호를 완벽히 소화했다. 군대 내의 부조리를 시청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거울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은 덤이다. 구교환은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작품 분위기를 환기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극의 강약을 조절한다. 괜히 ‘대세 배우’라 불리는 게 아니다.

두 배우뿐 아니라 김성균과 손석구, 신승호는 실제 군대에서 볼법한 부사관과 장교, 그리고 인간말종 선임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특히 작품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조석봉 역의 조현철은 선한 모습의 ‘봉디쌤’과 분노에 잡아먹힌 괴물을 신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과거보다 좋아졌다고는 하나, “1953년도에 생산된 수통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데 군대가 바뀌겠냐”는 석봉의 처절한 외침처럼, 비극과 부조리는 어딘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를 방관할 것인지, 아니면 무엇이라도 할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는 건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