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미국의 어느 대학교, 역사상 최초로 비백인 인종 여성 학과장이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김지윤. 하지만 그가 학과장 자리에 오른 영문학과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과거에 비해 수강 인원은 줄었으며, 주어진 예산조차 깎여나갔다.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윤은 애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는 미국의 펨브로크 대학교 영문학과 학과장이 된 지윤이 학과장 자리에 앉으면서 보고 겪고 느끼는 온갖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드라마다. 할 일도 많을뿐더러, 헤쳐 나가야만 하는 갈등도 많은 ‘영문학과’ 학과장의 하루는 어떨까. [더 체어]는 수많은 과제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 지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지윤이 앉은 ‘의자’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미지: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인 ‘더 체어(The Chair)’는 통상적으로 회장석, 혹은 높은 자리를 가진 직위나 사회적 명칭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해당 작품에서는 학과장을 의미하는 표현에 가깝다. 지윤은 높은 직위를 차지해 이제 꽃길만 걸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더 체어]는 1화의 오프닝부터 이 같은 기대를 무너뜨린다. 상기된 표정의 지윤이 학과장실의 의자에 앉자마자 부서진다. 학과장 생활의 순탄치 못했던 첫 출근에서부터 슬픈 예감은 시작되었던 것일까. 사실 지윤은 월등한 성적에도 승진은 늦었고, 연봉도 같은 동기의 남자 교수에 비해 1/3 수준으로 받는다. 지윤이 차지한 그 의자, 학과장 자리도 사실 다른 남자 교수들에게 제안한 후 거절당하자 그에게 넘어온 자리였다. 이는 지윤 본인도, 심지어는 다른 교수들과 학생들까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윤이 얻은 것은 화려한 왕관일까, 아니면 독이 든 성배일까. [더 체어]는 시작부터 유머러스한 연출로 지윤이 겪을 위기를 센스 있게 예고한다.

미국 명문 대학교 ‘최초의 비백인 여성 학과장’

이미지: 넷플릭스

아이비리그 하위권, 펨프로크 대학교의 영문학과 교수이던 김지윤은 교내 역사상 최초의 비백인 여성 학과장 자리를 맡는다. ‘최초’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잠깐, 학과장으로서 수행할 첫 번째 과제를 받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지만, 수강인원은 낮은 세 명의 교수를 해고시킬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찾아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제에 당혹감을 느끼기도 잠시, 동료 교수인 빌 돕슨이 강의 중에 나치 경례를 한 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면서 지윤은 시한폭탄을 떠안은 꼴이 되었다. 어쩌면 ‘최초의 비백인 여성 학과장’이라는 타이틀은 지윤에게 필요 이상의 짐을 지게 한, 겉만 번지르르한 명패였을지 모르겠다.

‘코딩을 배웠어야 했어’ 순수 문학, 인문학이 맞이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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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윤이 학과장을 맡은 ‘영문학과’는 학생 수 감소, 지원 중단 등의 문제로 위기에 직면했다. 줄어드는 학생 수를 잡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이 원하는 흥미로운 수업을 준비하거나, 노교수들을 퇴직시키는 방안도 떠오른다. 하지만 해당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영문학이라는 인문학, 그 존재 자체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해당 전공 학생들의 취업난, 현실 생활과 동 떨어져 있다는 편견 등 현재 인문학이 맞은 위기의 순간을 지윤의 시선에서 여과 없이 묘사된다. 학교만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꼬집겠다는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돋보인다.

비백인 인종, 단순한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섬세함

이미지: 넷플릭스

[더 체어]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주인공의 명예와 소속 구성원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로만 흘러갔다면 단조로웠을 것이다. 드라마는 지윤의 일상을 다뤄내며, 이를 기점으로 이민 가족의 시선도 영리하게 표현해냈다. 미국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다뤄지는 한국인과 그 문화는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스테레오 타입에 많이 갇혔다. 하지만 [더 체어]는 한국 이민 세대를 섬세하게 그려내 공감대를 자아낸다. 지윤의 아버지가 헬로키티를 싫어하는 이유라든지, 돌잔치 에피소드 같은 한국 가정과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이는 지윤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공과 사, 양측의 모습을 모두 현실감 있게 그려내면서 극의 재미를 더한다.

[더 체어]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만연하게 퍼져있는 세상 속에 놓인 주인공의 모습을 의미 있게 부각한다. 지윤이 겪는 많은 위기와 갈등이 현실감 있게 다가와 웃음과 재미 뒤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지윤은 영문학과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은 물론, 학장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지금의 과제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를 밀도 있게 다뤄내 서글프면서도 반가운 드라마를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