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홀리고 있다. 어린 시절 즐겨하던 각종 놀이를 통과해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가 거액의 상금을 차지한다는 줄거리는 제법 신선하지만, 이 시리즈가 “강남 스타일”만큼 히트를 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생존과 보상을 둘러싼 인간들의 암투와 갈등은 픽션과 논픽션을 막론한 최고의 인기 소재다. 이러한 내용적 보편성이 한국 놀이들이 가진 고유한 매력과 의외로 잘 버무려지면서 K-컬처에 관심이 많아진 외국인들을 사로잡은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넷플릭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삶과 죽음을 ‘게임’과 ‘존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가르는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선보여 왔다.

원헌드레드 (The 100)

이미지: 넷플릭스

카스 모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원헌드레드]는 넷플릭스의 숱한 하이틴 드라마 중에서도 SF 장르와 결합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류가 핵전쟁 후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난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지구로 파견된 10대 범죄자 100명의 운명을 그린다. 소설 [15소년 표류기]의 아이들처럼 이들 100명은 미지의 세계나 마찬가지인 지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서로 반목하거나 화합하고, 때로는 지구 모처에서 숨어 살던 다른 인류와 전쟁을 벌인다. 드라마임을 감안해도 과학적 오류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이긴 하지만, 지지부진한 스토리를 싫어한다면 [원헌드레드]의 과감하리만치 빠른 전개에 만족할 수도 있다. 작년 9월 시즌 7을 끝으로 종영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시즌 5까지만 시청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흠이다.

어둠 속으로 (Into the Night)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벨기에 오리지널 [어둠 속으로]는 참신한 설정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교통수단이 인류 최후의 피난처이자 신세계가 된다는 줄거리는 [설국열차]와 비슷하다. 그러나 [어둠 속으로]는 미디어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태양광을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내면서 차별화를 둔다. 캐릭터들의 이름을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삼으면서 관련 인물의 과거 또는 타인과의 관계를 묘사한 것도 각 캐릭터의 비중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느낌을 준다. 시즌 2 마지막화에서 쥐를 이용한 실험의 성공으로 태양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밝혀졌는데, 이야기가 그대로 끝날지 아니면 시즌 3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비트윈 (Between)

이미지: 넷플릭스

캐나다 Citytv에서 방송된 [비트윈]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때문에 만 22세 이상의 주민들이 대거 사망한 어느 소도시의 생존자들을 다룬다. 모종의 이유로 어른들이 사라지고 청소년들이 고립되었다는 설정은 넷플릭스의 하이틴 드라마 [더 소사이어티]와도 유사한데,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소재이다 보니 코로나19에 익숙해진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비트윈]에 더 깊이 몰입할 만하다. 하지만 넷플릭스 작품 치고는 상당수의 평론가로부터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시즌 2 종영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후속 시즌 제작 여부가 알려지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캔슬을 공식 발표한 적도 아직 없지만 사실상 시즌 3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할 상황인 듯한데, 시즌 2에서도 재앙의 원인 등 완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을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3%

이미지: 넷플릭스

브라질에서 제작된 [3%]는 넷플릭스 최초의 포르투갈어 오리지널 시리즈로, 앞서 소개된 작품보다 ‘생존’과 ‘보상’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극중 20세의 젊은이들은 빈곤한 ‘내륙’을 떠나 유토피아인 ‘외해’로 갈 수 있는 최후의 3%로 뽑히기 위해 일명 ‘절차’에 참가하는데, 지식과 체력을 총동원하여 서로 경쟁하고 낙오되는 구도가 [헝거게임]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비교적 잦은 주기로 벌어지는 헝거게임과 달리 [3%]의 ‘절차’는 각 개인의 일생에 단 한 번 주어지는 기회이며 훨씬 더 폐쇄적이고 억압적이다. 이는 오랜 경기 침체로 양극화가 뿌리 깊게 굳어진 브라질의 절망과 체념을 상징하는 듯하다. [3%]는 해외 각국에서 잇따라 호평을 받으며 4개 시즌으로 종영했다. 피날레가 열린 결말에 가깝긴 하지만 꽤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며 마무리됐으니 다행스럽다.

I-랜드 (The I-Land)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I-랜드]는 외딴섬에 불현듯 떨어진 10명의 사람이 기억을 잃은 채 생존과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무인도에서 한데 모인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고 분열하기도 하는 줄거리는 [로스트]와 상당히 흡사한데, 인물들이 자신의 신원과 과거 행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색다른 긴장감이 더해진다. 초반부터 섬 곳곳에 의문을 느끼는 주인공 체이스가 다른 낙오자들에게 외면당하는 모습은 흥미진진하지만, 3화에서 중요한 반전이 너무나 빨리 공개되는 바람에 이후의 플롯이 매우 시시하게 다가온다. 체이스 역의 나탈리 마르티네즈와 KC 역의 케이트 보즈워스 두 배우의 연기력이 좋은 만큼 대부분의 해외 매체가 [I-랜드]에 날린 혹평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