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폭력적이며, 염세적이다. 어떤 때에는 불쾌한 기분마저 든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 시절, 소위 ‘꿈도 희망도 없던’ 연상호가 [지옥]을 들고 돌아왔다.

이미지: 넷플릭스

인간이 자신이 죽는 시간을 정확히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죽음이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큰 혼란이 찾아올 듯하다. 넷플릭스 [지옥]은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한 혼란을 틈타 급속도로 성장한 종교단체와 이들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초조하게 핸드폰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 오후 1시 20분이 되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남자. 그러나 이내 거대한 진동과 나타난 검은 괴생명체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고, 수많은 인파 앞에서 불에 타 죽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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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대낮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사람들의 관심은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에게 향했다. 신이 인간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고지’와 ‘시연’을 선보인다던 그의 주장이 이번 사건과 흡사했기 때문. 사람들 사이에서 정진수에 대한 믿음은 빠르게 커져갔지만, 진경훈 형사와 민혜진 변호사처럼 그의 주장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했다. 이에 정진수는 자신의 옳음 증명하기 위해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한다. 시연은 예정된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고, 그렇게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이른바 ‘새로운 세상’의 절대적인 진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옥]은 신이나 괴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군상에 카메라를 비춘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한다. 연상호 감독은 6부작 중 절반을 할애해 혼란한 세상 속 인간의 갈등과 절망, 광기를 염세적으로 바라본다.

괴물의 등장 이후 기존 사회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새진리회의 교리 아래 인간은 그저 ‘죄인이냐 아니냐’로 나뉠 뿐이었다. 고지를 받은 ‘죄인’이 되면 잘못의 경중을 떠나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고통받는 게 당연했으며, 신의 뜻을 빙자한 폭력을 행사하는 게 정당화되었다. 민혜진 변호사나 진경훈 형사처럼 새진리회에 저항하는 이들 역시 사회적인 멸시와 폭력을 당해야만 하는 세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지옥]은 인간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만 담긴 작품이 아니다. 불가해한 현상으로 인해 무너진 인간 세상의 갈등을 그린 전반부를 지나면, 드라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이어가려는 인물들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반부 민혜진과 배영재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대사나 원작 웹툰과 달라진 결말부에서 연상호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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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힘이 컸다. 유아인과 김현주, 양익준, 박정민과 원진아 모두 멋진 연기를 선보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박정자 역의 김신록과 진희정을 연기한 이레다. 아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던 박정자의 마지막 표정, 그리고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의 최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섬뜩하게 웃는 진희정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명연기다

[지옥]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어렵다.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연상호 감독 특유의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시선이나 작품에 담긴 무거운 주제가 일차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극중 여러 차례 등장한 무자비한 폭력 묘사, 화살촉 인터넷 방송 화면과 같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주려는 듯한 연출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개연성을 찾아보기 힘든 순간들을 참지 못하고 끝내 시청을 포기할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호불호의 영역인 만큼, 정주행 여부는 오롯이 시청자의 몫이다.

원작 웹툰과 달리 드라마 [지옥]은 차기 시즌을 강하게 암시하며 끝을 맺었다. 과연 이것이 좋은 선택이 될지 사족이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시즌 2가 웹툰에 이어 드라마로도 제작된다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될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번 작품의 성공으로 세계관 확장의 기반을 다진 만큼, 차기 시즌에는 또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