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여파로 극장가의 그늘이 계속된 2021년이었다. 관객 수는 2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뚝 떨어졌고, 그로 인해 많은 영화들의 개봉이 미뤄졌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나 극장의 가치, 영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있었을까? 테일러콘텐츠 에디터들이 올해의 영화 7편을 꼽아봤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영화관을 찾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리스트를 정리해 본다.

소울 – 철학적 질문을 감미롭게 풀어내다.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울]은 존재의 이유라는 무거운 질문을 따뜻하고 경쾌하게 풀어낸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디즈니·픽사의 [소울]은 뉴욕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던 ‘조’가 우연히 ‘영혼 22’를 만나 함께 세상을 겪으며 삶의 목적을 찾는 이야기를 그린다. 꿈에 그리던 뮤지션과 합동 연주하게 된 날, 조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조는 링컨, 간디, 테레사 수녀 등 이름난 위인들이 포기한 문제아 영혼 22의 멘토가 되어 그의 관심사를 찾아주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꼭 목적을 지향하고 꿈을 이루어야 삶이 완성될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사는 것만으로도, 태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 [소울]은 영혼 22처럼 자신은 특별하지 않다며 자책하거나, 조처럼 삶의 불꽃을 찾고자 쉼 없이 달려온 영혼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건넨다. ‘어른이’들에게 위로를 전했던 픽사의 감성과 디즈니의 음악적 완성도가 만나 탄생한 [소울], 이 영화가 건네는 감동으로 다들 올 한 해를 포근하게 마무리하시길 바란다.

미나리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이프 이즈 원더풀!

이미지: 판씨네마(주)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 시골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 가정이 풍파를 겪고 더욱 단단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미나리]가 한국 영화인지 미국 영화인지 정체성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정이삭 감독의 말대로 [미나리]는 특정 집단이 아닌 모든 인간을 위한 영화다. 제이콥 가족에게 시련을 주는 것도(태풍, 단수, 화재), 헤어짐을 결심한 이들을 다시 결속시키는 것도 자연이다. 제이콥이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진 날, 구름 속에서 퍼져 나오는 한 줄기 태양빛은 자연 앞에 무릎 꿇은 이들이 다시 자연의 힘을 빌려 앞으로 나아갈 것을 암시한다. 어디에 뿌려도 잘 자란다는 미나리는 영화가 끝날 무렵 제이콥 가족의 희망이자, 보는 이에게도 따뜻한 의미를 건넨다. 순자의 말을 빌려 씩씩하게 2022년을 맞이하고자 한다. 미나리 이즈 원더풀! 우리의 인생도 원더풀!

루카 – 어린 시절에 대한 푸른 향수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애니메이션 [루카]는 육지를 동경하는 바다괴물 루카와 알베르토가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인간 친구 줄리아와 함께 트라이애슬론에 나가는 이야기다. 푸른 지중해와 따뜻한 색채의 이탈리아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러닝타임 내내 마치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전한다. 특히 주인공들이 무모한 장난을 치며 다이빙하는 장면은 싱그러운 바다 내음이 스크린 밖에까지 퍼지는 듯하다. 연출을 맡은 엔리케 카사로사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처럼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일까? 주인공 아이들의 순수하고 쾌활한 모습은 영화의 모험담에 개연성을 더하고, 유년 시절의 향수를 소환한다. 루카의 노력으로 모든 난제가 사라진 해피엔딩은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찾는 이유가 이 같은 행복을 찾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사는 사람들 – 외로움마저 잊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영화

이미지: (주)더쿱

해마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 수 또한 급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이 영화만큼이나 1인 가구의 일상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만큼 혼자 사는 삶을 리얼하고 섬세하게 담아낸다. 주인공이 식당에서 홀로 유튜브를 보고 밥을 먹거나, 휴일에도 누군가를 만나기보다 TV를 보며 여가 생활을 즐기는 등 지금의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묘한 공감대를 전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타인과 더불어 살며 해소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외로움을 억지로 아닌 척 포장하거나, 외면하지 말라며 혼족들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의 메시지, 세심한 연출, 그리고 배우 공승연’ 발견 등, 이 작품이 가진 가치는 제목과 다르게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모가디슈 – 2021년 한국 영화의 자존심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코로나로 인해 개봉영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모가디슈]는 올해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사실 개봉 전까지 상황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여름 극장가 부활을 위해 7월 개봉을 결정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상향으로 흥행이 불투명했었다. 하지만 작품은 일정 변경 없이 원래 개봉일에 공개했고 먼저 본 사람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361만 관객을 동원,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1위에 올랐다(2021.12.23 현재). 작품 역시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앙상블,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리얼리티를 위해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풀어낸 서사 진행과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현지 로케이션은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후반부 목숨을 건 카 체이싱은 한국영화의 스케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며 강렬한 재미를 선사한다. 마지막 모가디슈를 탈출한 남북 대사관 인물들이 서로 눈길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떠나는 모습은 시대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깊은 여운을 건넨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 시리즈를 사랑한 이들을 위한 최고의 팬서비스

이미지: 소니픽처스코리아

2021년 마지막 지구촌 이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그 기대만큼이나 엄청난 흥행을 기록 중이다. 개봉 전부터 많은 떡밥과 루머가 난무해 상당한 관심을 모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같은 열기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존 왓츠 감독은 일찍이 이 작품을 [스파이더맨]판 ‘엔드게임’이라고 했는데, 실제 작품 역시 지금까지 시리즈의 엑기스를 한데 모은 집대성으로 팬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건넸다. 특히 영화가 펼쳐내는 액션에는 이전 시리즈의 명장면-명대사가 떠오르는 오마주가 많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본격적으로 보여줄 멀티버스의 청사진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스포일러 관계로 말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시리즈를 챙겨봤던 팬들에게 건네는 선물은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엄청난 흥행과 환호를 보며 코로나19로 잊고 있었던 극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내년에는 이 같은 순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자산어보 – 흑백의 감탄 메시지의 감동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자산어보]는 [왕의 남자], [사도], [황산벌] 등 사극영화에서 독보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이준익 감독이 다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본 작품이다.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청년 어부 창대의 도움으로 바다에 관한 책을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준익 감독은 [동주]에 이어 다시 한 번 흑백화면으로 영화팬들을 초대했다. 흑산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바다의 여백이 흑백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작품의 운치를 더한다. 몇몇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그림처럼 다가와 보는 내내 탄성을 자아낼 정도. 캐릭터의 대비도 돋보인다. 권력의 허무를 느끼고 귀향 온 주인공과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의 포부를 펼치겠다는 청년을 사제관계로 엮어내, 두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여러 가치관의 대립을 밀도 있게 전달한다. 시대와 한계와 부조리 속에 무너진 두 사람의 이상이 안타깝지만, 그럼으로 인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뚝심과 진심이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와 작품의 여운을 곱씹어 보게 한다. 작품의 기교와 문법도 무척 대단했지만, 그 안에 스며든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메시지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 정도라면 이준익 감독의 사극과 흑백 사랑은 계속 되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