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서른, 아홉]은 [사랑의 불시착] 이후 손예진의 3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이자 요즘 대세인 워맨스 드라마로 관심을 모았다. 손예진이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주목받은 전미도, 뮤지컬 배우 김지현과 함께 그려낼 세 여성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일면서 기대가 됐다. 그러나 전작들을 넘어서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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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아홉]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을 다룬다. 18살에 만나 20여 년을 함께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차미조(손예진), 정찬영(전미도), 장주희(김지현)는 내일모레면 마흔이 되는 친구들이다. 기존의 워맨스 드라마가 20대 혹은 이제 막 30대에 진입한 여성들, 아니면 주로 자녀들의 교육을 통해 욕망을 꺼내 드는 엄마들에게 편중됐던 것과 달리, [서른, 아홉]은 제목처럼 불혹을 바라보고 인생의 새로운 시기에 접어드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게다가 세 친구는 각자의 사정으로 일에 몰두하느라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존의 워맨스와 구분되는 배경을 가진 세 여자의 이야기가 초반부터 진부하고 실망스럽다. 보다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음에도 구태의연한 장치를 여기저기 끌어온다. 가장 먼저는 시한부 설정이다. 드라마는 일찌감치 찬영의 죽음을 예고하며, 세 친구가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식상한 전개라는 아쉬움은 있으나 여기서 불필요하게 더하지 않았다면, 세 친구가 나누는 애틋한 우애가 더 깊고 슬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저마다 개인사로 속앓이를 하는 캐릭터들이 곳곳에서 서사를 늘어뜨린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찬영은 오래전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전 연인 김진석(이무생)과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나쁜 건 섣불리 응원하기 힘든 두 사람의 사랑에 면죄부를 주려는 듯 진석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안타깝긴 해도 진석의 아내를 비난할 여지를 마련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시대착오적인 설정도 등장한다. 미조와 연인이 된 김선우(연우진)의 동생 소원(안소희)은 파양된 이후 방황이 심해져 술집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온다. 양모의 죽음과 양부의 폭언 등을 겪었다 해도 소원의 선택은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유복한 가정에 입양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미조에게는 공황장애라는 숨겨둔 문제가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지나치게 비극적인 요소만 부각해 애초에 기대했던 워맨스는 점점 더 뒤로 밀려난다. 

그나마도 세 친구의 로맨스를 챙겨야 하니 워맨스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세 친구의 일상은 대체로 시트콤처럼 가볍게 그려내고, 로맨스는 진지하게 다루는 게 아쉽다. 미조와 찬영 사이에서 순수하고 엉뚱한 매력으로 웃음을 주는 주희가 좋은 예다. 백화점 코스메틱 매니저 주희가 일의 어려움과 불안한 미래를 토로하는 상대는 친구들이 아닌, 친분을 쌓고 있는 단골 가게의 주인 현준(이태환)이다. 복권에 당첨됐거나 백화점을 그만둘 때처럼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하지만, 드라마는 주희가 현준과 가까워지는 것에 더 관심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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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성들의 현실적인 고민이나 친구들의 우정보다 로맨스와 불행을 우위에 둔 서사 진행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럼에도 세 친구의 우정이 빛나는 순간이 존재한다. 응원과 지지의 마음이 드는 그 순간은 가슴이 뜨겁고 먹먹해진다. 스물아홉 살에 무엇을 좋아했냐는 선우의 질문에 미조가 “친구”라고 답했을 때, 주희가 자신에게 처음 찾아온 행운을 찬영에게 주기 위해 당첨된 복권을 포기하고 미조는 미국행을 접고 안식년을 찬영과 함께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와 같은 장면에서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세 친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우정이 참으로 부럽고 멋져서, 이들의 빛나는 우정을 서사에 더 할애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낡은 각본을 뛰어넘고 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을 진짜처럼 전달하는 배우들의 열연 또한 [서른, 아홉]이 가진 큰 강점이다. 진폭이 큰 감정 연기부터 편안한 생활 연기까지,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의 몫을 정확히 해내며 서사의 빈 공간을 메운다. 그중 찬영의 시한부 사실을 알게 된 미조가 진석을 찾아가 울분을 토해내고, 찬영에게 시한부 소식을 들은 진석이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손예진과 이무생이 보여준 오열 연기가 너무나 절절해 예고 없이 찾아온 슬픔을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죽음이라는 끝과 사랑이라는 시작이 교차하는 [서른, 아홉]. 세 친구의 찬란한 우정은 어떻게 작별의 순간을 맞이할까. 부디 이 세 친구의 남은 나날은 좀 더 행복하길 바라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보게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