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소니픽처스코리아

분명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인데 묘하게 친숙함이 든다. 6번의 개봉 연기 끝에 찾아온 [모비우스] 이야기다.

[모비우스]는 희귀 혈액병을 앓는 생화학자 마이클 모비우스가 흡혈박쥐를 이용한 실험적인 치료제를 스스로에게 투입한 후 엄청난 힘과 파괴 본능을 지닌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과 [베놈] 제작진이 선보이는 새로운 마블 안티 히어로로 기대를 모았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아쉬운 점이 여럿 보인다.

먼저, [모비우스]는 히어로의 기원을 그리는 기존 영화들과 비슷하다. 우연한 계기로 힘을 얻게 된 주인공이 혼란을 겪던 중 그 힘을 노리는 자와 갈등을 빚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변인이 위협을 받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악당을 응징한다.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가 매년 최소 한 편은 나오는 만큼 해당 장르에서 신선함을 선사하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장르적 익숙함을 완화하는 것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다. 그 점에서 [모비우스]는 강력한 카드를 거머쥐었다. 박쥐와 인간의 DNA를 결합해 탄생했으며 흡혈을 통해 힘을 얻고 악인을 소탕하는 캐릭터는 모비우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설정이 영화를 끌고 가는데도 한계가 있다. [모비우스]는 이러한 컨셉을 뒷받침해 줄 이야기가 헐겁다. 일단 안티 히어로의 정체성이 애매하다. 보통 안티 히어로는 악당과 영웅의 경계선을 오간다. 그에 걸맞게 [모비우스]는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앞세워 이중적인 매력을 지닌 안티 히어로를 예고했다. 하지만 [모비우스]의 주인공은 영웅스러운 면모를 보이지 않는다. 되려 빌런 같은 모습이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그나마 자레드 레토의 연기가 주인공의 내적 갈등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빌런의 모습을 희석시키지만, 모비우스는 히어로다운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히어로도 빌런도 아닌 어정쩡한 캐릭터로 남았다.

이미지: 소니픽처스코리아

모비우스는 속편에서 진정한 안티 히어로로 거듭나려는 걸까. 하지만 아끼다가 제대로 펼쳐보이지도 못한 채 사멸될지도 모른다. 모비우스는 원작 코믹스에서 빌런으로 시작해 스파이더맨의 적수로 거듭난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스파이더맨 세계관과의 접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코로나19로 뒤엉킨 타임라인이 있다. 당초 [모비우스]는 [베놈 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보다 이른 2019년 6월에 촬영을 마쳤으나, 팬데믹으로 개봉이 거듭 연기됐다. 아마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모비우스], [베놈 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순으로 이야기가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정을 모른 채 베놈과 스파이더맨의 연결고리를 기대한 관객은 실망할 수 있다.

그래도 특수분장과 슬로우 모션을 활용한 액션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음파 탐지를 활용한 움직임과 후반부 박쥐 떼가 날아드는 모습은 진한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여기에 맷 스미스와 자레드 레토의 케미가 둘의 관계성을 돋보이게 만든다. 나아가 쿠키 영상에서 등장한 반가운 인물(!), 그리고 캐스팅 소식이 속속 들려오는 [크레이븐 더 헌터]가 지속해서 확장될 소니 스파이더맨 세계관에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주연 배우 맷 스미스는 “마이클 모비우스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안티 히어로인 모비우스의 개성이 더 드러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