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에 탄 소녀]는 첫 장면부터 강렬하고 독보적인 캐릭터 ‘혜영’을 선보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반말에 욕설은 기본. 용 문신으로 뒤덮인 한쪽 팔을 내세우며, 자신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모든 이에게 위협을 가한다. 특히 자신의 어린 동생 그리고 철부지 아빠에 관한 일이라면 상대가 회장임에도 들이박는, 소위 포스가 장난 아닌 소녀다.

열아홉과 스물의 경계에 서 있는 혜영에게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 잔혹하기만 하다. 그 잔인한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분노하며, 소리 지르는 주인공의 화가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혜영에게 점점 빠져 들어가는데, 배우 김혜윤의 폭발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김혜윤은 2018년,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강예서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고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했다. 다만 강렬한 예서 캐릭터 때문에 배우가 특정 이미지에 갇히는 건 아닌지 많은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 김혜윤은 그런 걱정들을 여러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기력으로 모두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화 많고 안하무인에 불도저 같은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불도저에 탄 소녀]의 혜영과 [스카이 캐슬]의 예서는 얼핏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예서와 혜영의 분노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김혜윤은 소녀의 분노라는 1차원적인 설정을 넘어, 혜영의 모든 사연을 이해하며 연기한다. 김혜윤은 인터뷰를 통해 “촬영하는 동안 인물의 들끓는 내면이 너무 뜨거워, 혼자 마음에 품고 있기가 버거울 때도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거기에 실제 불도저 주행은 물론, 영화 속 액션 장면을 직접 소화하는 등 캐릭터에 진심으로 다가갔다. 그야말로 영화 속의 김혜윤은 혜영, 그 자체였다.

조연 배우들의 명품 연기력도 돋보인다. 아빠 본진은 혜영의 분노에 동기와 명분을 부여하면서 그를 성장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본진 역을 맡은 박혁권은 권력 앞에서 좌절하는 인물을 처절하게 연기하며 관객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정계 진출을 노리는 중장비 회사 회장 역을 맡은 배우 오만석은 혜영과 치열한 대치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슈퍼주니어의 멤버이자 최근 배우로 활약 중인 예성은 사고를 수사하는 경찰 역을 맡아, 짧은 출연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미지: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불도저에 탄 소녀]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개연성 있는 연출로 보는 상당한 몰입감을 건넨다. 여기에 중장비를 끌고 관공서를 들이박았던 사람들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만큼 실화에 기반한 사회적인 메시지가 많은 감정을 자아낸다. 주인공이 불도저에 올라타 폭주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기도. 꺾일지 언정, 절대 굽히지 않는 혜영과 같은 여성 캐릭터를 앞으로 많은 미디어 속에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