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콤플렉스는 있다. 부모님을 잃고 삼촌 집에 얹혀사는 춘희는 다한증 때문에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고, 춘희가 모임에서 만난 주황은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춘희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벼락을 맞는데, 그때부터 어린 시절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춘희의 고민을 내비친다. 손에 땀이 많다고 면박 주는 선생님과 떠나버린 친구들, 자신 때문에 다투는 가족까지. 모두가 춘희에게 큰 상처를 되었고, 이 때문에 그는 위축되고 자신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춘희는 다한증 때문에 친구와 폴카 댄스 추는 것을 그만두고, 노래방도 놀이공원도 혼자 쓸쓸히 갈 뿐이다. 이제 춘희 곁엔 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다행히 현재의 춘희는 소극적이지만 성실하게 살아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고 호기심에 기웃대던 심리치료센터에 용기를 내어 들어가기도 한다. 여기서 만난 주황의 상처를 토닥이며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런 과정 속에 노숙자 아줌마를 비롯한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삭막했던 삶에 따뜻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난다. 처음 춘희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한 번도 그는 좌절하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좁은 다락방 생활에 적응했듯이, 지금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향해갔다.

영화는 춘희 외에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로 웃음과 따뜻함을 건넨다. 특히 진중한 성격을 가진 주황은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많은 웃음을 자아낸다. 극중 춘희 앞에서 어설픈 태평소 실력을 선보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또한 영화는 가벼운 문체로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해 그 의미를 강화한다. 춘희는 사람들이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한다. 꽤 당황스러운 말이지만, 춘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오히려 친구가 없는 자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상처받았던 과거를 안아준다. 영화는 춘희의 성장을 통해 각자의 문제에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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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감독의 고향이자 영화의 배경인 전주는 춘희의 어린 시절을 섬세하게 다루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근대 주택의 양식이 곳곳에 묻어 있는 춘희의 집은 영화의 중요한 장소로 많은 에피소드들이 여기서 펼쳐진다. 이곳은 곧 철거될 예정이라 영화 속에서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한벽굴은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촬영지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춘희가 중요한 변화를 겪는 순간을 맞이하는 장소로 의미 있게 그려진다. 주황이 수문장으로 일하는 한옥마을의 경기전은 전주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건네며 작품의 운치를 더한다.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춘희가 살던 집을 잃고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주황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손을 내민다. 하지만 춘희는 책임진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며 여러 번 화를 낸다. 만약 영화가 춘희의 지금까지 고민을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고, 흔한 로맨스 영화 속 해피엔딩처럼 끝냈다면 아쉬움이 컷을 것이다. 영화는 춘희가 어떻게 상황을 해결했는지, 행복하게 살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춘희의 표정을 통해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나름의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던 우리도 인생의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을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