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은빛유니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은 미화된다고 한다. 힘들고 아팠던 순간보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로, 추억이라는 단어는 설레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연상된다. 순수했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소소한 행복을 선사했던 [응답하라 시리즈]는 복고 열풍을 일으킨 대표 드라마다. 최근 종영된 [스물다섯 스물하나]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유행했던 음악들과 소품, 설정들로 많은 분의 추억을 소환시켰다. 이처럼 1980년~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동시대를 살아간 세대에게는 공감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레트로 열풍은 국내뿐 아닌 세계적인 추세인데, 오늘 해외드라마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보는 이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을 살펴본다.

다시 열다섯 (Back to 15)

이미지: 넷플릭스

브라질 드라마 [다시 열다섯]은 33살의 아니타가 학창 시절 운영했던 자신의 옛 포토 블로그에 접속하면서 15살로 돌아가는 시간여행 장르다. 33세의 정신연령은 유지한 채, 10대 시절로 돌아간 아니타는 친구들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타는 특정 방식으로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데, 아니타가 과거를 바꿀수록 본인을 비롯한 모든 친구의 미래가 끊임없이 변한다. 가령 친구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피는 것을 알아챈 뒤, 그 친구가 지금의 남편과 학창 시절부터 사귀지 않게 방해한다. 다만 아니타의 좋은 의도와 달리 역효과가 발생하고, 더 곤란에 빠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원하는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과거를 바꿔야 하는 아니타의 고군분투를 그린 드라마 [다시 열다섯]은 20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고등학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모습이 지금과 다른 느낌이라 흥미롭고, 묘한 공감대를 자아낸다. 15살과 33살의 아니타를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의 아역배우와 성인 배우의 연기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순간의 결정으로 미래가 어떻게 바뀌는지 주목해 관람하면 더욱 작품에 빠지게 될 듯하다. (넷플릭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My Mad Fat Diary)

이미지: E4

한국이 [응답하라 시리즈]라면 영국에는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번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드라마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는 1996년 영국을 배경으로, 과체중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고, 폭식, 자해 등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16살 레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또래 아이처럼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사춘기 소녀 레이가 새 친구들을 만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녹여낸다. 레이 얼의 자전적 동명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로, 영국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면을 잘 살렸다는 평과 함께,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특히 드라마 속 음악은 극의 전개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데, OST 역시 훌륭하다. 설레는 로맨스도 있지만 레이가 겪는 좌절과 고통의 이야기도 많기에 하이틴 장르 드라마 치고 꽤 묵직하다.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 빈티지한 색감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로 많은 사랑을 받은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는 3시즌으로 종영되었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판타스틱 하이스쿨 (Everything Sucks!)

이미지: 넷플릭스

[판타스틱 하이스쿨]은 이름만 들어도 지루한 보링 (Boring) 마을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10대들의 버라이어티 한 학교생활을 그리는 드라마다. 고등학교 신입생 아웃사이더 삼 인방은 여학생들이 많길 바라며 방송부에 가입하는데, 이 중 루크는 방송부원 케이트에게 반한다. 루크는 교장 선생의 딸인 요주의 인물 케이트를 카메라 핑계로 함께 하는데 성공하고, 이후 자신의 연출 능력을 발휘해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케이트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성적 취향이 들킬까 봐 루크와 사귀기로 한다. 한편 방송부는 연극부와 큰 마찰을 빚고, 설상가상으로 루크는 케이트가 남자가 아닌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난감한 학교생활을 겪는 루크와 보링 고등학교 학생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은 [판타스틱 하이스쿨]은 오아시스를 비롯한 90년대 음악들과 당시 사용되었던 방송 연출 기법들을 적절하게 배치해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유포리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시드니 스위니가 출연해 반가움을 더한다. 뻔하지 않은 복고풍의 하이틴 드라마로 호평받았지만 2시즌이 취소된 것은 아쉽다. (넷플릭스)

펜15 (PEN15)

이미지: 훌루

미국 아이들의 유치한 말장난을 제목으로 한 [PEN15]는, 순수하지만 철없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중학생 마야와 애나를 주인공으로 한다.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아웃사이더지만 중학교 시절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은 절친 마야와 애나를 통해 사춘기 소녀들의 성적 호기심과 짝사랑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특히 보는 사람마저 오그라들고 부끄럽게 하는 대사와 설정이 압권이다. 이 드라마는 30살이 넘은 두 주연 배우가 아역을 쓰지 않고 직접 10대 연기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배우는 대부분 10대인데, 30대와 10대 배우가 어색함 없이 친구로 지내는 모습이 재미있다. 실없는 장난 같은 에피소드도 있지만, 때때로 여러 사회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뤄 깊이 있는 시선도 보여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아가고 성장해가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발칙하게 그린 [PEN15]는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고, 시청자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웨이브)

제너레이션 56K (Generation 56K)

이미지: 넷플릭스

영화 ‘터미네이터’의 광적인 팬인 30대 다니엘은 데이팅 앱에서 만난 여성들과의 데이트에서 늘 눈치 없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솔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드디어 자신처럼 터미네이터를 좋아하는 여성을 만나 성공적인 첫 데이트를 했는데, 다음날 그 여성이 앱으로 만나기로 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다니엘이 데이트 상대로 착각해 만났던 여성은 중학교 동창 마틸다였다. 학창 시절 톰보이 스타일이었던 마틸다의 변신을 다니엘이 눈치채지 못한 것인데, 어릴 적 다니엘을 짝사랑했던 마틸다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드라마 [제너레이션 56K]는 현재를 배경으로 하면서 두 주인공이 학생이었던 1998년의 과거 이야기가 함께 그려진다. 몇 안 되는 가정에만 있던 모뎀 컴퓨터를 이용해 용돈벌이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웃음을, 손글씨로 마음을 전하던 이들의 풋풋한 마음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둔 마틸다가 어릴 적 짝사랑했던 다니엘을 만나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것도 드라마의 놓칠 수 없는 관전포인트다. 이야기 내내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배경도 작품에 더욱 빠지게 한다.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