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어쩌다 사장2]에서 마트 알바로 활약했던 이광수가 드라마에서도 마트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4년 만의 안방 복귀작으로 택한 tvN 수목드라마 [살인자의 쇼핑목록]이다. 이번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마트 캐셔로 분해 동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미지: tvN

몇 년째 공무원 시험 낙방을 거듭하고 있는 안대성(이광수)은 어렸을 때만 해도 천재 소리를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일련번호를 외워서 위조지폐범을 잡을 만큼 똑똑했고, 대성슈퍼 사장 한명숙 여사(진희경)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현재는 출중한 능력보다 의욕 없고 소심한 성격만 두드러져 보인다. 대성을 대견하게 여겼던 명숙은 시험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옥탑방으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대성은 겨우 마트 캐셔 수습 자리를 얻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 손님이었던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시체를 발견한 게 대성이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이광수와 이언희 감독이 두 번째 합을 맞추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강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지만, 두 사람의 전작 [탐정: 리턴즈]가 겹쳐 보인다. 코미디와 스릴러를 적절히 오가며, 일상생활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의문스러운 사건 앞에서 제 능력을 펼치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아무래도 닮았다. 드라마는 영화처럼 코믹 수사극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보여주면서 안대성의 주변 캐릭터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사람 간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둔다. 

첫회에 노골적으로 등장한 초코파이는 ‘정’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초코파이의 쓰임새는 그와 다르다. 어린 대성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위조지폐범은 초코파이를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고, 경쟁 업체에 밀려 고전하는 명숙은 초코파이처럼 가족(정)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자는 대성의 말에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정이라는 말이 어쩐지 거추장스럽고 더 이상 예전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이웃보다 재개발에 더 관심을 갖고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일상에 ‘살인사건’이라는 균열을 내고,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 풍경의 숨겨진 모습을 드러낸다. 쌍절곤 할아버지가 10년째 신분을 속여온 위조지폐범이었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 더 불안한 긴장감이 밀려온다. 

이미지: tvN

대성은 영수증을 단서로 삼고 추리의 촉을 세운다. 영수증에 담긴 쇼핑목록에서 범인을 특정할 정보를 찾을 수 있다니 흥미로운 발상이다. 게다가 남다른 관찰력과 기억력으로 고객의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으니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대성의 유별난 기억력은 여자친구 도아희(설현)가 말했듯이 하찮고 쓸모없는 데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수상해 보일 수 있다. 코믹 수사극의 묘미는 대성의 과한 오지랖과 능력이 주변과 부조화를 이루는데서 발생한다. 

다만 아쉽게도 캐릭터의 힘 조절이 매끄럽지 않다. 대성이 아마추어 탐정이고 극적인 재미를 위해 과장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할 만큼 지나칠 때가 있다. 특히 생선 코너 직원을 의심하고 뒤쫓는 모습은 스토킹 범죄에 가까워 불쾌감을 안긴다.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지랖도 피로감을 더한다. 사건을 단서로 추적하는 과정보다 캐릭터의 성격적인 면을 더 부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는 대성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형사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영수증으로 범인을 찾는다’는 신선한 설정이 돋보이는 수사극이다. 더욱이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범인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성의 의심을 사는 MS마트 직원들과 나우동 주민들의 숨은 사연이 중심 사건과 어떻게 맞물리며 전개될지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오지랖을 줄이고 사건에 집중한다면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