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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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 2]의 성공적인 흥행 기록과 더불어, 그 뒤를 이을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올 여름에 개봉한다. [명량]의 속편 [한산: 용의 출현], 작년 칸 영화제에 초청된 [비상선언] 등 8월까지 풍성한 극장가 라인업이 완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장르 영화 한 편이 수많은 관심 속에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바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마녀(磨女) Part 2. The Other One](이하 [마녀 2]). 지난 2018년, [마녀]를 통해 새로운 장르 영화를 선보이고 흥행에 성공했던 박훈정 감독은, [마녀] 이전에도 묵직한 한 방을 지닌 영화들을 연출해오며 관객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오늘은 그의 감독 데뷔작 [혈투]와 이번에 개봉한 [마녀 2]를 제외한, 다섯 편의 영화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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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는 2013년 2월에 개봉한 범죄, 느와르 장르로,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과 범죄 조직 내 잠입 수사 중인 ‘이자성’, 그리고 그런 자성과 8년간 친형제처럼 지내온 그룹의 실세 ‘정청’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신세계]의 묘미는 해당 그룹의 회장이 사망한 뒤, 본격적인 후계자 전쟁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특히 언제 어디에서 신분이 노출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이자성’이 자신을 형제로 대해준 ‘정청’과 원래 본분인 경찰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지 고민한다.

[신세계]는 [혈투]로 데뷔한 박훈정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468만 명이라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던 [7번 방의 선물]과 성공리에 상영 중이던 [베를린] 등의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니, 그 화제성은 대단했다. 특히 박훈정 감독은 누아르에 특화된 본인의 각본과 연출을 선보이면서 [신세계]의 성공 이후, 꾸준히 해당장르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대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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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는 2015년 12월에 개봉한 영화로,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떨치던 ‘천만덕’이지리산의 산군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이 개입되고,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호랑이를 잡아 나서면서 극은 긴장감은 최고조로 향해간다.

[대호]는 앞서 소개한 [신세계] 직후, 박훈정 감독이 선보인 작품이었다. 170억의 제작비를 들였지만 총 176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쳐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CG를 통해 만들어낸 호랑이 ‘대호’의 탄생은 꽤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CG로 탄생한 ‘대호’와 좋은 케미를 보여준 최민식의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그가 연기한 캐릭터 ‘만덕’과 ‘대호’의 서사는 극장에서 놓치고 뒤늦게 감상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건네기도 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대호]는 박훈정 감독이 느와르 외 다른 장르에서도 자신의 솜씨를 선보일 수 있음을 증명하며,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브이아이피(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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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북에서 데려온 ‘김광일’이 연쇄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 ‘채이도’가 그를 쫓지만, 국정원요원 ‘채혁’이 개입하면서 경찰과 국정원의 갈등은 커간다. 여기에 광일이 북에서 벌인 죄를 물으러 온 보안성 요원 ‘리대범’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브이아이피]는 잔혹한 범죄 장르 속에, 남과 북을 비롯한 수많은 이해 관계가 얽힌 정치 드라마의 묘미도 느낄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이를 은폐하려는 자 등 여러 인물이 대치하며 빚어지는 파열음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박훈정 감독이 원래 소설로 내려고 했던 만큼, 챕터로 구분한 전개도 인상적이다. 여기에 다양한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녹아낸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의 열연도 돋보인다.

마녀(2018)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2018년 6월에 개봉한 액션영화 [마녀]는, 자신의 나이와 이름도 모를 정도로 기억을 잃었으나 한 노부부에 의해 거두어져 평범한 시골 소녀로 자란 ‘자윤’에게 의문의 인물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윤은 어려운 집안사정을 돕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으나,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기분 나쁜 감시가 시작된다. 이들은 모두 자윤의 잃어버린 기억과 관계 있는데, 과연 자윤의 과거 속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박정훈 감독은 앞서 선보인 두 편의 영화와는 달리, 독특한 소재를 내세우며 새로운 장르 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마녀]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액션을 자아내며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순수한 고등학생의 이미지와 의문의 과거를 지닌 인물의 서사를 완벽히 구현한 배우 김다미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마녀]는 장르를 비롯해, 연출, 배우 모두 ‘새로운 발견’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영화로 다가왔다.

낙원의 밤(2021)

이미지: 넷플릭스

2021년 4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은 북성파의 위협으로 누나와 조카를 잃은 ‘태구’가 상대 조직의 보스에게 복수 한 뒤 제주도로 도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곳에서 태구는 조직의 일을 도와주던 ‘쿠토’의 조카이자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재연’을 만나면서 묘한 인연을 이어간다. 하지만 북성파 2인자 마상길의 위협이 시작되면서 쿠토가 살해되고, 순식간에 삼촌을 잃은 재연은 태구의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는 두 사람은 이제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여정으로 함께한다.

박훈정 감독이 다시 한 번 느와르 장르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답지 않은(?) 멜로 감성도 있기에 눈에 띈다. [낙원의 밤]은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분위기와 달리 생존과 복수를 위해 몸부림치는 두 남녀의 이야기에 집중한 작품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주인공과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인물이 만나 빚어내는 감성이 제주도의 배경과 맞물려 처연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물론 이쪽 장르하면 생각나는 거칠고 잔인한 액션씬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훈정 감독 작품 중 가장 여운이 깊다고 할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허스키한 목소리의 엄태구와 무표정 속에 슬픔을 가둔 전여빈의 멜로 케미가 느와르에 운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