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주)쇼박스

설렘으로 가득한 비행기에 테러리스트가 탔다. 정부는 탑승객을 구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고, 국민은 무사귀환을 염원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가 하늘에서 끝나지 않고 지상에도 뻗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존 항공 재난 영화들과 차별화를 이루면서 긍정적인 요소도 분명 있지만 아쉬운 지점이 여럿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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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들이 많이 타는 비행기가 뭐예요?” 진석(임시완)은 공항 데스크에 묻지만, 직원은 개인 정보 유출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한다. 발권에 실패한 진석은 방향을 틀어 화장실로 향한다. 진석은 겨드랑이를 절개해 무언가를 삽입하고 피 묻은 손을 씻는다. 그런데 수민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아버지 재혁에게 전한다. 이를 눈치챈 진석은 부녀의 행선지를 확인하고 데스크로 가서 말한다. “하와이행 티켓 주세요. 원 웨이(편도)로.”

영화는 중반까지 높은 긴장감과 몰입감을 유지한다. 특히 임시완의 사이코 연기가 일품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반듯한 미청년 임시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탁한 눈빛과 무례한 말투를 지닌 꺼림칙한 인물만이 존재한다. 멀끔한 양복과 호감형 외모로 다가오지만 말을 섞어보면 곧바로 수상쩍다는 인상을 받는다. 영화는 진석이 테러범이라는 사실을 감출 생각이 없다. 이 또한 [비상선언]이 여타 항공 테러 영화와 다른 점이다.

영화는 첫번째 희생자가 나올 때 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했으나, 상공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서히 동력을 잃는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연거푸 시련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길어진 러닝타임과 거듭된 반전은 피로감을 유발한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후반부에 탑승객들은 의외의 선택을 한다. 뜬금없다는 지적도 있으나, 여기서 영화가 끝났다면 여운이 더 깊게 남았을 듯하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의 메시지가 보다 극적으로 다가오고, 클리셰가 섞인 스토리에 의외성이 더해졌을 듯싶다. 위기와 갈등이 풀릴 듯 지속되면서 지쳐있던 것도 이유다. 아쉽게도 영화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신파를 이어간다. 결말에 도달하는 동안 희생된 개연성과 늘어진 러닝타임이 아쉬움을 남긴다.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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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의 기폭제는 항공 테러이나 영화는 결코 탑승객들만 비추지 않는다. 영화는 지상에 머문 사람들에게도 균등하게 포커스를 맞춘다. 일이 바빠 아내만 비행기에 태워 보낸 형사팀장 인호(송강호),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실장 태수(박해준)이 각자의 역할을 치열하게 수행한다.

먼저 인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나중에는 무모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인호는 재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족애를 담당한다. 공포를 느끼면서도 국민을 지키려는 숙희는 책임감과 죄책감을, 이성적인 판단을 강조하는 태수는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 이기심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약자 도태, 갈라치기, 자국 우선주의 등이 영화를 채운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다큐멘터리처럼 접근했다는 한재림 감독의 말처럼 [비상선언]은 재난을 맞닥뜨린 우리 사회를 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선인과 악인이 대립하는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난 시도는 [비상선언]의 작품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악역에 당위성이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자움 콜렛 세라 감독의 [논스톱]은 범인이 명확한 사유를 갖고 비행기 테러를 자행했다. 쉬이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반면 [비상선언]의 진석은 신념 따위 볼 수 없고, 광기만 가득하다. 물론 이 점은 신선함으로 다가오며, 보는 시각에 따라 작품의 긴장감을 더할 수도 있다.

[비상선언]은 범죄 행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자 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말에 도달하는 후반 과정이 신파로 덮였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2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감염과 바이러스 전파는 상식이 됐다. 이로 인해 상당수 관객이 극이 진행되는 양상에 섬뜩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듯하다. 12세 관람가. 1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