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이미지: CJ ENM

위험천만한 괴물과의 사투를 그린 [괴물]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신궁의 [최종병기 활]처럼 액션은 물론,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시인의 이야기를 그린 [은교]와 다소 높은 수위의 도발적인 농담을 건네는 로맨스 [연애의 목적]과 같은 로맨스까지. 배우 생활만 이십 여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소화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배우가 있다. 최근 [헤어질 결심]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즐겁게 붕괴시킨 배우 박해일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박해일은 단순히 로맨스로 결론지을 수 없는, 은근한 서스펜스가 매력적인 [헤어질 결심]으로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보여주며 칸 영화제를 비롯한 국내 관객들에게까지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가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결의 미스터리, 서스펜스 장르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며 보는 이를 사로잡고 있다. ‘마침내 빠져드는 그의 매력’, 오늘 이 시간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 박해일의 영화들을 살펴보자.

살인의 추억 – 박현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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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흔들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둔 [살인의 추억].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한국 영화로 관심을 받아온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살인의 추억]은 1986년, 경기도의 어느 지역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젊은 여성들을 연이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수사를 그려낸 영화다. 개봉 당시에는 물론, 이후 10여년이 지나도록 진범이 잡히지 않은 (다행히 지금은 진범이 밝혀진) 영구 미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라, 이야기 내내 미스터리의 분위기 가득하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은 극의 핵심이 되는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작품의 재미와 메시지를 모두 빚어낸다. 해당 영화에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세 번째 인물이자,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혐의로 체포된 ‘박현규’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전 용의자들과 비교해 본인의 결백을 당당히 주장하며, 그렇기에 그에 대한 진실을 미궁 속으로 빠뜨려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짧은 출연이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인 박해일은 이 작품에서의 좋은 연기를 통해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새로운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극락도 살인사건 – 제우성 역

이미지: MK픽처스

앞서 [살인의 추억]이 실제있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극락도살인사건]은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장르적 매력을 선사한다. 김한민 감독의 실질적인 상업영화 데뷔작인 [극락도 살인사건]은 1986년, 고립된 섬에서 17명의 주민 전원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며 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17명의 섬 주민 전원이 용의자 혹은 피해자 일수도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마지막까지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박해일은 해당 영화에서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인 동시에 깊게 연루된 인물을 연기했다. 바로 섬에서 벌어진 해당 살인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나서고 범인을 추적하는 보건소장 ‘제우성’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인물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꽤 거대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보여준 박해일의 포커페이스의 연기는 작품을 더욱 묵직하고 아찔하게 이끌어간다. 탄탄한 이야기와 박해일의 열연 덕분에 작품은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 김한민 감독과 박해일은 [최종병기 활] 그리고 최근 개봉작인 [한산]까지 세 작품을 함께 하며 좋은 케미를 이어가고 있다.

모던 보이 – 이해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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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경성의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서구적인 외향과 취미, 언어와 의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남자들을 의미하는 ‘모던 보이’를 아는가?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모던 보이]는 1937년 일제강점기, 사랑했던 여자가 사라지고 정체가 묘연한 그를 만나기 위한 추적을 그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당시 ‘모던 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캐릭터의 비주얼과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대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박해일은 첫 눈에 반한 ‘난실’을 찾아 나서는 ‘이해명’ 역을 연기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1급 서기관으로,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이름부터 직업, 심지어 만나는 남자가 여럿이라는 의문스러운 사실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박해일은 격변의 시대에서 자신이 보고 겪는 것들에 깨달음을 얻어가고, 사랑하는 여인의 진실을 통해 큰 감정적 변화를 겪는 인물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 작품에서의 열연으로 박해일은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끼 – 유해국 역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아직까지 어떠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이 기분 나쁨이 오히려 어디로 전개될 지 모르는 긴장감으로 전환되어 미스터리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 [이끼]가 그렇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유명 웹툰을 영화화한 [이끼]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어느 시골 마을을 찾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을 이유 없이 경계하고 불편하게 여기던 이들과 함께 마을 생활을 이어가면서 밝혀지는 비밀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 그 자체로 다가온다.

박해일은 주인공 유해국 역을 맡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을에 정착하기로 결심,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수상한 기운에 의심하며 꽁꽁 숨겨둔 이야기의 베일을 하나씩 벗겨나간다. 이 작품은 박해일의 단독 플레이도 좋지만 비밀을 감춘 마을 사람들과의 마찰음에서 빚어지는 호흡이 더 인상적이다. 포스터 공개 당시 많은 영화팬들을 경악하게 만든 이장 역의 정재영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덕천 역의 유해진, 원수이자 든든한 파트너 민욱 역의 유준상까지, 박해일은 여러 캐릭터와 배우들과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며 이야기의 판을 점점 넓힌다. 극중 박해일의 연기가 흡입력있게 펼쳐지면서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묘한 공감대까지 불러일으킨다.

제보자 – 윤민철 PD 역

이미지: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도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지 예측 불가능할 때가 있다. 지금 소개할 [제보자]가 그렇다. 한때 수많은 의견 충돌을 낳을 정도로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건을 모티브로 두고 있는 작품이다.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는 어느 박사의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제보를 들은 방송 PD가 사건에 중심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음모와 논쟁을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리틀 포레스트] [남쪽으로 튀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패기 넘치는 연출을 보여주고,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이 출연해 작품의 힘을 불어넣는다.

박해일은 해당 영화에서 제보자의 증언 하나만을 믿고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 PD ‘윤민철’ 역을 맡았다. 그저 제보에 의해 시작했지만 악전고툰 속에서도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는 캐릭터의 모습을 박해일은 치열하게 담아낸다. 무엇보다 방송국 PD라는 주인공의 직업 덕분에 진정한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묵직하게 표현해 작품의 여운을 건넨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14년 만에 임순례 감독과 만난 박해일의 연기력에 사건의 재현 그 이상으로 작품의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