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화씨 9/11’ 이전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는?

[화씨 9/11 Fahrenheit 9/11](마이클 무어, 2004)는 2004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그런데 영화가 다루는 정치적 이슈에 매몰된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영화사 또는 영화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화씨 9/11]을 정쟁의 도구로만 삼았다. 그 바람에 칸 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화씨 9/11]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영화를 좀 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말이다.

무관심에서 비롯한 오류를 오래 전부터 바로잡고 싶었다. 물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유독 다큐멘터리에 인색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는 지금까지 <화씨 9/11>을 포함해 단 두 편만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화씨 9/11] 이전에 다큐멘터리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사를 찾으려면 20세기 중반인 195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작품이 시기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칸 국제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침묵의 세계 Le monde du silence](자크 구스토, 루이 말, 1956)다. [화씨 9/11]이 아니다.

침묵의 세계

두 작품은 50년 가까이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양식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는 카메라 앞에서 종횡무진하기도 하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은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연출자와 촬영 대상간 소통과 상호작용을 인정하는 시네마 베리떼(Cinema verite)의 대표적인 유산이다. 반면 [침묵의 세계]는 내레이션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록영화다. 인물 인터뷰도 없다. 지극히 관찰자적 입장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따지자면 시네마 베리떼와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작품이라고 본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인위적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카메라 앞의 피사체를 관찰하려는 작가적 태도에서 비롯된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을 말한다.

잠수부의 시선에서 담아내는 해저 생태 다큐멘터리

침묵의 세계

영화는 바다 깊이 들어가는 잠수부들로부터 시작한다. 카메라는 잠수부 1인칭 시점을 유지하다가 3인칭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내레이션이 해양관측선 칼립스호에 타고 있는 잠수부들을 소개하고 나면 바다가재를 잡다가 곤경에 처한 잠수부 시퀀스가 이어진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를 단순히 해저 생태 다큐멘터리로만 볼 수 없도록 한다.

물론 영화는 바다 한복판에서 만난 돌고래를 오랫동안 보여주기도 하고, 영화에서 ‘sea squirt’라 소개하지만 그렇다고 ‘멍게’라 직역하기는 어려운 희귀 생명체로 해저 세계에 대한 신비함을 더하기도 한다. ‘율리시스’라고 부르는 거대 물고기와 잠수부가 친구가 되는 과정을 우아한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먹잇감을 이용해 물고기를 유인해 교감하는 이 장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피파 에를리쉬, 제임스 리드, 2020)을 잠시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의 세계]는 기본적으로는 해저 생태 다큐멘터리다.

그러나 [침묵의 세계]가 단지 카메라를 갖다 대기만 하면 그림이 나올 법한 바다 속 풍경 그 자체에만 작품의 성취를 온전히 의존하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는 해저 세계를 연구하고 탐험하려 애쓰는 잠수부들도 함께 조명한다. 바다가재와 돌고래를 오랫동안 보여주다가도 칼립스호에 탑승한 스쿠버들에게 종종 카메라를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쿠버들은 [침묵의 세계]에서 두 가지 포지션을 동시에 소화한다. 다큐멘터리 관찰 대상임과 동시에 [침묵의 세계] 영상미를 완성시키고 있는 스태프들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 크레딧은 [침묵의 세계]가 해저와 선상을 오가는 연출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침묵의 세계’가 후대 다큐멘터리와 수중 촬영 기술에 영향을 끼친 점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 작가로 누벨바그를 이끌던 루이 말(Louis Malle)과 함께 이 영화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자크 이브 쿠스토(Jaques Yves Cousteau)는 해양탐험 분야에서는 ‘스쿠버의 창시자’ 또는 ‘20세기 최고의 해저 탐험가’, ‘해양고고학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바다 전문가다. 특히 ‘스쿠버의 창시자’는 괜한 수식어가 아니다. 쿠스토는 해군학교 친구들과 수중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하고, 프랑스군 포병 장교로 복무하던 1943년 수중호흡기를 발명한 인물이다. 쉽게 말해 잠수부들이 해저에서 몇 시간이나 머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 선구자가 쿠스토라는 뜻이다. 그가 개척한 스쿠버는 이후 수중 촬영 기술의 토대를 제공하며 영화 촬영 기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남긴 작품들도 영화사에 길이 남았다. [침묵의 세계]에서 길이 24km가 넘는 필름을 촬영에 사용하고, 이 중 10분의 1만 편집에 사용할 정도로 해양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열성이었던 그는 1966년부터 30년 동안 그가 해저 세계를 탐험하며 찍은 영상을 TV 시리즈로 제작해 [자크 쿠스토의 해저세계 The Undersea World of Jacques Cousteau]를 내보였다. [자크 쿠스토의 해저세계]는 지금까지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1억 명 이상이 시청한 해양 다큐멘터리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침묵의 세계]에 이어 제작한 [태양이 비치지 않는 세계 World without Sun](1964)는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를 수상했다. 해저 생태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이끄는 데에 쿠스토는 대단히 큰 공을 세웠다.

그의 생애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 평가하는 어떤 글은, 해저 세계를 탐험하던 쿠스토가 이후엔 해양 생태계 보존 활동에 집중하는 환경운동가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바다가 곧 삶이었던 쿠스토의 삶을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바다 아래에 펼쳐진 세계는 물론 너무 아름답고 경이롭지만, 생애를 바쳐 바다를 탐험한 쿠스토와 그의 동료들의 삶 역시 시쳇말로 ‘천상계’에 속한다. [침묵의 세계]는 해저 생태계와 그를 관찰하는 탐험가들을 동시에 조명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주체가 마땅히 가져야 할 탐구 정신까지 생각해보게 하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