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풀잎피리

안녕? 마틸다!
이미지: Sony Pictures Releasing

[마틸다]를 처음 만난 건 ‘책’이었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로얼드 달의 작품이라고 해서 찾아 읽었다. 삽화도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순식간에 읽었는데, 그 특유의 아기자기 재기발랄한 스토리 가운데 숨겨져 있는 날카로운 풍자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마틸다 자체가 엄청 매력적이란 느낌이기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마치 어른동화 같은 이야기. 미리 말하지만 이 작품은 결말 또한 무척이나 어른스럽다.

이미지: THE ROYAL SHAKESPEARE COMPANY

2015년 전에 뮤지컬 [마틸다]를 처음 보았다. 영어 대사를 오롯이 이해할 실력이 절대 되지 않는 터라, 원작 소설을 한번 더 챙겨 읽고 갔다. 물론 그랬다 한들, 뮤지컬로 옮기면서 바뀐 부분이 워낙에 많아 공연의 대사를 모두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공연장 안에 들어선 그 순간 보랏빛의 아름다운 무대를 본 순간의 감격, 아이들의 그네가 객석 위로 넘어올 때의 황홀감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손끝이 찌릿하게 울려온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도. 근데 불과 3년 후, 2018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상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거 진심 어깨춤을 출 일이 아니더냐.

어른이 되면서 이해되는 허니 선생님의 마음
이미지: Sony Pictures Releasing

휘둥그레 두리번거리면서 본 영국 공연과는 달리, 잘 들리고 이해되는 우리말로 보는 공연은 다른 맛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보면서 새롭게 보였던 건 ‘허니’ 선생님이었다. 이 작품의 말미에,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이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대사는 정말 뭉클했다. 아마도 내가 마틸다보다는 허니 선생님의 나이에 더 가깝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선택할 수 없는 관계들이 있다. 부모가 그렇고, 형제가 그렇다. 그렇기에 피붙이에게 받는 학대는 그래서 더 비참하고 슬프다. 내 의지대로 끊어내기 힘든 관계이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부모에게, 허니 선생님은 이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은 강압적인 힘에 학대받는 약하디 약한 존재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구원해 나가는가, 그 여정을 담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소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섬세하고 약한 존재다. 그런 마틸다가, 당당하게 하늘을 치켜보며 만드는 동작은 그래서 기특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뮤지컬 [마틸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어른이 되면’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그냥 애들이 사랑스러워서인가, 그네를 타는 그들의 모양새가 그 자체로 예뻐서인가, 아마도 그들의 그 티없는 천진함이 서글퍼서였던 것 같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은 사실 어른이 되어도 실제 할 수 있는 게 그닥 없기 때문이다. 결국 허니 선생님도 어른이 되었지만, 고작 집에서 나와 누추한 창고 쪽방에서 사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처럼.

결국 지금의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건, 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가 아닌, 바로 지금의 노력과 애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번쩍 손을 들 수 있는 용기, 부당한 대우나 학대를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자체로 좌절하지 않는 오기, 그리고 그걸 적어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똘기(?). 어쩌면 마틸다의 그런 당참 덕분에 그 아이는 자기 자신도, 그리고 허니 선생님도 구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표면적으로는 마틸다가 허니 선생님을 새 엄마로 맞아 새 출발하게 되는 것이지만, 허니 선생님 또한 새엄마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만든 건 결국 마틸다였으니까. 이제 남은 인생을 함께 나란히 걸어나가야 할 허니 선생님과 마틸다의 미래에 부디 평화로움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책과 뮤지컬, 그리고 영화 ‘마틸다’

이미지: Sony Pictures Releasing

뮤지컬과 책, 그리고 영화는 매체가 다르다 보니 각각이 확실한 차이가 있다. 일단 책이 좀더 동화 같은 느낌이 있다. 아무래도 뮤지컬은 실제 사람들이 구현하는 것이다 보니, 부모,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학대하는 현장을 목격할 때 좀더 움찔하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양갈래 머리를 잡고 빙빙 돌려 투포환처럼 아이를 던지는 장면이나 길게 귀를 잡아당기는 것, 대형 초코케이크를 먹이는 것 등은 정말 잘 구현했다. 직접 확인하시라. 영화는 뮤지컬보다 또 다르게 현실적이면서 좀더 판타지 같이 세계관을 그린다. 이 부분은 장치를 써서 구현해야 하는 뮤지컬과 달리 특수 효과를 쓸 수 있게 또 가능한 부분일 터. 그러나 단순히 기술 구현의 문제를 넘어 연출이 훌륭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투포환처럼 던져 날아가 울타리를 넘어 꽃밭에 떨어지며 미끄러지듯 꽃다발을 만드는 것 같은?

일단 책과 뮤지컬, 영화의 가장 큰 차이라면 탈출 마법사와 공중 곡예사의 이야기다. 책에도 영화에도 나오지 않고 오직 뮤지컬에만 나오는 부분이다. 세 장르를 모두 본 지인들과 이 장면을 넣은 것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물론 정답은 없다. 적어도 뮤지컬을 좀더 화려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정도? 확실한 건 이들의 이야기가 허니 선생님과 마틸다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된다는 것 정도다. 원작에서는 허니 선생님의 부모는 평범한 분이지만, 뮤지컬의 부모님은 탈출 마법사와 공중 곡예사이기 때문이다. 향후 나올 넷플릭스 뮤지컬 영화 [마틸다]에서 이 대목이 추가되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길 바란다.

이미지: Sony Pictures Releasing

세 버전에서 마틸다 캐릭터의 가장 큰 차이는, 펠프스 선생님이나 허니 선생님에게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교묘히 숨긴다는 것이다. 말을 돌리거나 물어보면 좀 우울해 하는 느낌으로 대답한달까. 영화에서는 나래이션이 있어서 그 부분을 좀 보완하기는 한다.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상황을 설명해 주는 기분이다. 그에 반해 책에서는 그냥 쿨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아마도 뮤지컬이 만들어지면서 마틸다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불어넣은 건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책을 가장 먼저 봤다 보니, 이 아이가 쿨하게 이야기하는 그 부분이 뭔가 서늘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부모의 문제를 그렇게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냉정하게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마틸다가 다시 돌아온다?!

이미지: 넷플릭스

원작 [마틸다]는 1988년, 영화 [마틸다]는 무려 25년 전인 1997년의 작품이다. 그러나 지금 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뮤지컬 [마틸다]는 2022년에 현재 재연이 상연 중이다. 역시 좋은 작품을 바탕으로 만드는 변용작들은 정말 그대로 잘 재현만 할 수 있다면,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물론 각각의 연출이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세계와 뮤지컬의 세계, 그리고 영화의 세계는 분명히 다르다. 여러 작품을 두드려 보다 보니, 모든 작품이 그 모든 세계가 아름답기는 쉽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안다. 그러나 이 [마틸다]의 경우는 그 세 개의 세계가 모두 훌륭한 고로, 이 작품은 정말 모든 장르를 챙겨 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여담으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뮤지컬 공연을 바탕으로 한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가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이다. 이것도 정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