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잘 만드는 채널 JTBC’는 최근 몇 년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성 면에서 인정받은 드라마는 있었지만 시청자를 기대감과 재미로 들썩이게 할 만큼의 화제작은 없었다. 확실한 히트작 하나가 절실했던 수난의 시간은 아마 이 드라마로 종결될 듯하다. 주 3회 방영이라는 파격 편성으로 선보인 [재벌집 막내아들]은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냈으며, 매 회차마다 높은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며 대세 드라마가 될 준비를 마쳤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동명의 인기 웹소설에 바탕한 드라마로, 재벌 순양그룹의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던 직원 윤현우가 재벌가의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40대 중반의 어른이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 상태로 1987년을 사는 10살 소년의 몸에 깃든 것이다.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현우, 아니 도준의 목표는 명확하다. 자신을 죽게 만든 진씨 가문 사람이 누구인지 찾고,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순양의 미래를 흔드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가장 위험한 적은 도준의 할아버지이자 순양 그룹의 총수, 돈이 전부인 냉정한 사업가 진양철이다.

이미지: JTBC

[재벌집 막내아들]는 2022년 대한민국의 시청자의 취향에 맞춘 대하드라마이다. 우리가 아는 대하드라마와 형식은 다르지만, 야심 찬 규모와 작품 전반의 분위기는 근현대 대한민국 배경의 잘 만든 시대극과 견줄 만하다. 처음엔 회귀, 빙의, 환생 (이하 회빙환 장르)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이 시선을 끌었어도, 이 드라마의 핵심은 격동의 한국 사회와 재벌 일가 내부의 권력다툼이다. 차별점이라면 시대극 단골인 70~80년대가 아니라 20세기 말~21세기 초의 전례 없던 풍요의 시기와 이후 닥친 외환위기와 경제 불황 등이 배경이란 점이다. 도준은 재벌 회장의 손자라는 지위 덕분에 손에 쥔 돈과 권력으로 영민하고 여유롭게 위기를 헤쳐나간다. 그의 활약은 그 시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감정을 끌어내고 당시 느낀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시킨다. 분당 땅 증여, 영화 [나 홀로 집에] 수입하기 등 미래를 알기 때문에 한 선택들도 웃음을 준다.

회빙환 장르의 주인공들은 보통 인생 2회차에는 마치 신적 존재 같다. 남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를 알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충분히 대비해 여유로운 승자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오히려 진도준에게 한계를 부여함으로써 그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만들었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드라마의 갈등을 만들고 스토리를 움직인다. 이것이 잘 드러난 게 바로 5회 아진자동차 인수 스토리다. 도준이 아진자동차를 인수하려 한 건 자신의 유일한 불행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도준은 더 많은 돈을 탐내는 인간의 욕망, 돈으로 고착된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진양철의 생각을 간과했다. 게다가 그 모든 장애물을 넘었지만 그의 불행은 바뀌지 않았고, 기억과 지식에 기대어 운명을 바꾸려 한 시도는 장렬히 실패했다. 앞으로 도준이 아는 미래만으로는 모든 것을 바꾸기 어려운 순간이 계속 도래할 테고, 그걸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드라마의 큰 매력이 될 것이다.

이미지: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은 판타지 설정에 기대고 있지만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이는 스토리의 힘 외에 다양한 요소의 덕이 크다. 그중 의상, 분장, 미술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중후반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여 그 시대에 몰입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대한민국에서 연기 잘 하는 배우는 다 모아놓은 듯한 캐스트의 힘도 있다. 송중기는 40대의 영혼을 지닌 20대 청년, 진도준이 보이는 모든 감정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달라진 위치에서 부와 권력의 잔인함을 목격할 때나 할아버지 앞에선 순진한 손자처럼 굴 때도, 송중기는 연기로 모든 상황을 이해시킨다. 이성민은 진양철 회장으로 다시 한번 인생 연기를 보여준다. 순양이라는 거대 기업을 건설하고 이를 후대에 물려주려는 욕망은 분장으로 만든 주름살 하나, 노인의 눈빛 하나에 깃들어 있다. 송중기와 이성민이 한 화면에 등장할 때 화면을 지배하는 팽팽한 분위기는 이 작품의 또다른 매력이다.

이야기 전개 속도 면에선 저세상 빠름을 보여주는 드라마답게, [재벌집 막내아들]의 갈등은 6회를 기점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도준에겐 순양을 무너뜨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생겼고, 이를 위해 정치에 개입해 양철이 만든 판을 흔든다. 양철은 똑똑하고 어른스러운 막내 손자가 지금까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주인공이었음을 알게 된다. 과연 도준과 양철의 대결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도준은 순양을 놓고 진씨 일가와 대립하면서 그 스스로 괴물이 될까? 온갖 예상과 기대를 품에 가득 안고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