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풀잎피리

영화 ‘영웅’ 이미지: CJ ENM

요즘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000 생가’라는 식의 정류장 이름을 종종 보게 된다. 과거사 회복 작업으로,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이 밝혀지면서 생겨난 변화이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운동가 자손들의 스산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이와 대조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의 후손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소식도 여전하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태평하게 흘려 살고 있는 이 삶을 가능하게 해준 수많은 희생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독립운동가들의 일면을 자세히 모를지언정, ‘독립운동가’라는 존재를 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삶을 추적하고 밝히는 노력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삶을 보다 예술적으로 흥미롭게 다루는 일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역사책을 챙겨보는 것보다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대중에게는 더 익숙하고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영웅]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이 아닐까 싶다. ‘안중근’이라는 이름 자체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겠지만, 그의 삶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되새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다룬다는 그 자체보다도 그의 삶과 의지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게 했다는 것이 사실은 더 의미있는 일일 터. 이미 언론에서도 수차례 다뤘지만, 이 작품은 이미 2009년에 초연을 올리고 여전히 성황리에 무대에 올라가고 있는 동명 창작 뮤지컬 [영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결국 그 공의 시초는 이 뮤지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뮤지컬 [영웅]은?

뮤지컬 [영웅]

뮤지컬 [영웅]이 처음 막이 올랐던 당시 많은 뮤지컬 팬들은 반신반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결말이 너무나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의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거니와 국내 창작 대형 뮤지컬 자체도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즉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증 받고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과 대등하게 경쟁할 만한 대형 창작품이 딱히 없는 시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영웅]의 제작은 여러모로 모험적인 시도였다.

근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과연 이 작품이 스토리적으로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안중근의 삶을 다룬다고 하면,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이 클라이 막스가 되고, 그가 일제에 처형되면서 끝날 것이란 게 뻔히 예측되니까. 결국 이러한 작품이 수작이 되려면, 장면장면의 만듦새가 그만큼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위키드]의 ‘디파잉 그래비티’, [맨 오브 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을 여전히 기대하듯이 말이다. 알면서도 보러 가는, 알고 있기에 또 보러 가는 쾌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뮤지컬 [영웅]은 그런 점에서 꽤 성공적인 작품이다. 개막 당시 쏟아졌던 찬사는 물론, 그해 열린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온갖 상을 휩쓸어 갔다. 주인공 정성화의 주가 역시 함께 솟구쳤다. [맨 오브 라만차]의 주연 배우로 비상한 정성화는 이 작품을 통해 소위 ‘믿고 보는 배우’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영화 [영웅]의 주인공까지 꿰어 찼다. 그에게는 ‘인생작’이라 할만하다.

무대를 스크린에 옮긴 ‘영웅’의 명과 암

이미지: CJ ENM

사실 영화 [영웅]에는 정성화를 제외하고는 뮤지컬 출연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뮤지컬 배우와 영화 배우가 가진 활동 범위의 특성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영화화되면서 일부 주요 배역의 역할에 변화가 왔기 때문도 있겠다. 어쨌거나 영화를 보면 무대가 보고 싶고, 무대를 보면 영화가 궁금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 건 확실해 보인다. 이번에 영화 개봉과 뮤지컬 개막을 동시에 했는데, 아마도 이를 노린 전략인 듯. 다만 무대 팬으로서 영화는 몇몇 부분 아쉬운 지점이 있었다.

이미지: CJ ENM

뮤지컬 [영웅]의 장점은 당시 생소했던 LED 화면을 적소에 사용했을 뿐 아니라, 뮤지컬의 기본 역시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앙상블의 놀라운 합과 잘 짜인 안무, 그리고 준수한 넘버들은 이 작품의 저력이라 할 것이다. 사실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면, 한정된 장소와 한정된 시간에서 이루어지는 무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 것은 새로 추가된 전쟁 씬, 조마리아 여사의 넘버 씬 이외에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추격씬 등이 다른 모양새로 바뀌었지만, 뮤지컬 무대의 추격씬이 워낙에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줬던 (무려 지금도) 장면이라 그런지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다. 게다가 시상식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누가 죄인인가’나 안중근의 최후에 등장하는 ‘장부가’는 영화가 뮤지컬의 감동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다소 허전한 연출에 감정은 과잉된 느낌이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이토의 암살을 결심하며 부르는 ‘영웅’ 씬은 난데없이 교회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확 트인 설산으로 나가는 순간 갑자기 ‘헉’하는 느낌이 들었다. 절제미와 함께 집중도가 상당한 뮤지컬과는 아주 대조적인 지점이다.

소위 ‘국뽕’이 가득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우리나라를 싫어하거나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낯간지러움을 견디지 못할 뿐이다. 그런 작품을 볼 때면, 정수리 한 가운데가 간질간질하면서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만 같다. 영화를 윤제균 감독이 이 작품의 연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건 그래서다. 이제까지 윤 감독이 만들었던 필모를 미루어볼 때, 다소 과잉된 느낌의 국뽕 안중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작품을 보고 난 순간, 그런 걱정은 일부 현실화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다 보니 인물 구현 자체보다는 장면의 국뽕들이 흘러 넘친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연출이 뮤지컬 영화와 일반 영화가 어떠한 차이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장르적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니, 이것이 부디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 타산지석 삼은 작품들이 차차 더 만들어지길 바라는 수밖에.

 이미지: CJ ENM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영웅]의 기저에는 좋은 의지와 시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을 칭찬할 때는 그 자체가 가진 작품성과 완성도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작품이 가진 사적인 가치를 두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법이다. 적어도 이 작품은 뮤지컬로서도 영화로서도 그런 의미를 충분히 갖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정성화 배우의 잠재력을 아주 오래 전부터 굳세게 믿어온 팬으로서 그가 이렇게 다각도로 조명받을 기회를 맞게 된 것도 더불어 기쁘다. 그러니 한번은 꼭 [영웅]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무대 위의 정성화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