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혜연

서울특별시 서부에 위치한 마포구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인디 문화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매년 꽃 피는 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이 개최되어 왔다. 생명력 있고 참신한 인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쏟아지던 행사였지만, 현재는 팬데믹 상황 및 근본적 변화를 주기 위해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현실의 민낯까지 열렬히 응시하는 감독들의 시선을 엿볼 장이 없어진 것은 아쉽지만, 그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을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이토록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마포구는 어떤 어제들을 지나왔을까? 아래 5편의 다큐멘터리가 그 답을 대신한다. 이 작품들은 2008년부터 2022년까지의 마포구를 배경으로 한다. 분주하고 번잡한 서울 중심에서, 우리 이웃들은 어떤 평범하고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살펴본다.

[샘터분식] (2008)

이미지: 시네마달

화려한 화장을 지운 홍대 거리의 민낯을 담아낸 [샘터분식]. 유행과 패션이 빠르게 변하는 홍대 앞 대신, 그 속도에 묻혀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골목을 느리고 섬세한 속도로 조명한다. 그 속에는 ‘불안해, 불안해’를 외치는 힙합 뮤지션, ‘돈 안 되는 고민’만 하는 열혈 지역 활동가, ‘백반 값보다 비싼 커피값’에 경악하는 분식집 사장님이 등장한다. 서로 다른 듯 닮아있는 이들은 달콤 쌉쌀한 삶의 맛을 함께 음미하며, 조금 더 살맛 나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또한 꿈과 좌절, 용기와 희망이 얽혀있는 홍대 앞 교차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세 주인공의 삶과 닮아 있기도 하다.

2009년 개봉 당시 ‘젊은 감성’으로 빚어졌던 이 영화도 이제는 모든 면에서 바래졌다. 20대였던 힙합 뮤지션 제리케이가 40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식당들이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을까. 어느 동네에나 있지만 언제나 위기에 처한 노포들은 갈수록 소중해진다. 느긋함을 허락하지 않는 홍대 앞에서 조그마한 분식집 ‘샘터분식’은 가벼운 주머니로, 모두가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필요하다. 어느 맛집보다 내 입맛에 맞고, 어느 이웃보다 나를 반겨주는 단골집을 찾고 싶어진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2009)

이미지: siff

친근한 노랫말과 서정적이고 포근한 멜로디의 음악으로 사랑받아온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원조 홍대 여신이었던 ‘요조’의 일상을 담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데뷔 앨범부터 홍대 인디 신의 기대주였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편안하면서 참신한 음악으로 음악성을 인정받았고, 솔직하고도 엉뚱한 매력으로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음악을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던 민환기 감독이 그들의 앨범 작업기와 즉흥 여행, 진솔한 술자리를 포함한 일상에 밀착 동행하였다.

영화는 그들의 음악처럼 무심한 듯 나른하게 흘러간다. 흔들리는 나무와 바닷가 마을 같은 고즈넉한 풍경들은 힐링 영화 [카모메 식당]을 연상케 하는데, 숨길 수 없는 이들의 유쾌함 때문에 리얼 버라이어티 쇼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갈등만은 소소하거나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여전히 앨범을 발매하고 있고, 요조는 책과 제주도를 사랑하는 뮤지션이 되었다. 그 시절의 치열했던 고민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파티51] (2013)

이미지: 51+ 필름

잉여력 충만한 홍대 언저리 뮤지션들과 철거 직전에 놓인 칼국수 집 ‘두리반’의 투쟁을 그린 [파티51]. 2009년 겨울, GS건설 측은 두리반 강제 철거를 시도했다. 갑작스럽게 철거민이 된 두리반 사장은 농성에 돌입했고, 공연할 장소를 구하지 못해 밀려나고 있던 뮤지션들이 그곳에서 자립음악회를 열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농성은 531일간 이어졌고, 그들의 마지막 공연은 ‘뉴타운컬쳐파티 51+’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었다.

무력한 이들이 자본, 경쟁, 분열에 맞서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실험이었으며, 위기에 처한 예술가들의 생태계를 고찰하려는 시도였다.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밥’이라는 뜻을 가진 두리반 식당은 서교호텔 뒤편으로 이전 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인디 음악의 메카로 알려진 홍대 앞 거리는 예전보다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생동감 넘치는 풍경들이 남아 있다. 51회의 공연에 참여했던 수많은 인디밴드들의 행보는 다 알 수 없지만, 모두 각자의 경쾌한 파티를 이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망원동 인공위성] (2013)

이미지: siff

망원동 지하 작업실에서 우주정복을 꿈꾼 아티스트 송호준의 파란만장 스토리를 담은 [망원동 인공위성]. 겁 없는 아티스트 송호준은 자신이 만든 인공위성을 우주로 띄우기 위해, 우선 티셔츠 1만 장을 팔아 1억 원을 벌기로 한다. 일명 ‘우주정복 스타트업 지침서’이다. 자신만의 별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동떨어진 일에 소모해야 한다니, 참으로 씁쓸하지만 이 방법이 최선이란다.

서울의 중심이 늘 소란스럽고 분주한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용히, 차분히, 홀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간다. 아름다운 한강 야경을 품은 망원동이지만, 그의 지하 작업실은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그는 ‘희망은 모르겠지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패배감 속에서도 끝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무모한 아티스트는 우리에게 ‘끝까지 돌파하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2022)

이미지: 스튜디오 그레인풀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 자리 잡은 25년 차 공동체 마을 속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일상을 담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이곳은 60명의 초등학생들과 5명의 교사들이 먹고, 놀고, 배우며 생활하는 곳이다. 팬데믹이 닥쳐 학교가 문을 닫자 이곳의 운영시간은 늘어났고,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주려는 마을 방과후 교사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교사라 부르지 않는다.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으로 불리는 이들의 ‘돌봄 노동’은 사회적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부모만큼 아이들에게 진심인 어른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결국 이들의 존재와 수고를 사회적으로 호명하고자 한다. 더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돌봄 노동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