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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극장가를 점령했던 영화 [교섭]에서 황정민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황정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연기의 강약 조절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했고, 이를 통해 캐릭터 무비로서 [교섭]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렇듯 황정민은 이전 출연작에서도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여 ‘천만 배우’의 반열에도 올라섰다. 워낙 많은 작품에서 인생 연기를 펼쳤기에 이 포스팅에서 다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 천만 영화를 비롯한 흥행작들 중심으로 ‘믿보배’이자 ‘1억 배우’ 황정민의 활약상을 정리해본다.

신세계 (2013) – 정청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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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에 개봉한 [신세계]는 4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갱스터 누아르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훈정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최대 기업형 폭력조직에 언더커버로 잠입한 형사가 장기간의 임무로 조직과 경찰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으로 최민식, 이정재와 더불어 황정민, 박성웅의 치열한 열연이 돋보인다.

황정민은 여기서 골드문의 2인자 정청 역을 맡았다. 감정의 기복이 많고 과장된 행동을 하는 캐릭터로 황정민은 자신의 연기력으로 인물을 극에 입체감 넘치게 녹여냈다. 특히 이자성(이정재)과 펼치는 브로맨스는 재미와 함께 많은 명대사를 남겼다. [신세계]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황정민은 34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입지를 더욱 넓혔다.

국제시장 (2014) – 덕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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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을 평범한 소시민인 ‘덕수’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1950년대의 한국전쟁부터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을 거쳐 이산가족 찾기까지, 격변기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몸소 겪은 산업화 세대를 조명하며 현재의 평범한 아버지들을 위한 헌사로 다가온다.

주인공 ‘덕수’ 역을 맡은 황정민은 20대에서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캐릭터의 일생을 연기하기 위해 분장을 비롯하여 노인들의 생활 모습을 분석하고 숙지하여 이 시대의 가장 평범한 아버지를 표현했다. 이런 황정민의 노력은 [국제시장]이 1,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영화는 그해 겨울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고, 그를 천만 배우에 이름을 올리게 했다. 흥행과 더불어 2015년 대종상을 비롯한 유수의 영화 관련 시상식에서 황정민은 많은 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충무로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다.

베테랑 (2015) – 서도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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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의 9번째 장편영화로, 실제 재벌들의 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베테랑 광역 수사대 형사와 유아독존 재벌 3세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그린 통쾌한 액션으로 그린다. 2015년에 개봉하여 1,300만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고, 류승완 감독 작품 중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황정민에게는 [국제시장]에 이어서 2편 연속 천만 배우의 그랜드슬램을 달성케 했다.

[베테랑]은 형사가 범인을 잡는다는 평범하고 단순한 스토리라인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명연기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캐릭터와 류승완의 재치 있고 촘촘한 연출이 작품에 힘을 보탠다. 황정민은 여기서 광역수사대 에이스 서도철 역을 맡았는데, 류승완 감독은 이 캐릭터가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이 모티브라고 밝혔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드는 저돌적인 스타일이 관객에게 짜릿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점이 비슷하다. 전편의 성공으로 [베테랑]은 현재 후속편 촬영을 진행 중이다. 서도철을 맡은 황정민의 사이다 가득한 액션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나길 기대한다.

곡성 (2016) – 일광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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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은 외지인이 마을에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에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장르적 특성이나 결말 등으로 인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은유와 상징적인 요소들로 인해 많은 해석과 논쟁을 낳았다. 

배우들 역시 주/조연 할 것 없이 소름 돋는 연기력을 보였다. 이중 황정민은 미스터리한 무속인 ‘일광’을 연기하여 기존 정형화되었던 캐릭터에서 벗어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펼쳤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굿 장면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무려 15분간의 롱테이크 촬영을 소화하여 관객들에게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최근 황정민과 나홍진 감독이 SF 영화 [호프]로 다시 호흡을 맞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곡성]이후 새롭게 선보일 두 사람의 시너지가 더욱 기대된다.

공작 (2018) – 박석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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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금성 사건을 바탕으로 한 [공작]은 2018년 여름에 개봉한 첩보영화로 그해 칸 영화제에 초청되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황정민은 극중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북한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스파이 박석영(흑금성) 역을 맡았다.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걸며 스파이로 활동했지만 여러 사건으로 혼란과 갈등에 휩싸이는 역할을 탄탄한 연기로 설득력 있게 담았다. 특히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흑금성과 대립되는 북한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 과 케미는 우정과 의심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다. 덕분에 55회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두 사람이 공동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황정민은 [공작]을 촬영하면서 신념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그 같은 모습을 캐릭터에 완전히 녹여내며 작품의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또한 이 작품으로 ‘누적관객 수 1억 명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 – 인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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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상영된 한국 영화 중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황정민, 이정재가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재회한 영화다. 작품은 마지막 청부살인 임무를 끝낸 암살자가 딸을 찾기 위해 떠난 태국에서 그에게 형제를 잃은 복수자와 목숨을 건 추격전을 그린다. 스타일리시한 카메라 워킹과 화려한 액션이 완성도를 다지고, 평면적인 캐릭터를 살린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는 평을 많이 받은 영화다. 

황정민은 극중 암살자 인남 역을 맡았다. 자신이 했던 일이 목숨을 위협하지만, 그럼에도 딸을 지켜야 하는 절박한 부성애를 흡입력 있게 보여준다. 황정민은 많은 영화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말 감탄이 나오는 액션을 펼쳐내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여기에 [신세계]와 다르게 적으로 만난 이정재와 피 튀기는 대결과 박정민과 티격태격 케미를 잘 이끌어가며 극의 중심을 굳건하게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