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안녕, 소중한 사람] 이미지: 티캐스트

룩셈부르크 출신, 그래서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는 미래가 주목되는 배우로 손꼽히는 이가 있다. 바로 빅키 크리엡스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는 비키 크립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연기에 관심을 가지고, 대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가 눈여겨보는 배우로 성장했다.

지난 2022년, [코르사주]로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최고의 연기상을 수상한 빅키 크리엡스. 그는 이전까지 어떤 연기들을 보여주었을까? 아직까지 큰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한 적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 빅키 크리엡스의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안녕, 소중한 사람]으로 관객과 만난 빅키 크리엡스, 그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들이 궁금하다면, 눈여겨 보시길 바란다.

팬텀 스레드(2017) – 알마 역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거장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이자 할리우드 대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으로 알려진 [팬텀 스레드]는 빅키 크리엡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세계 알리게 한 영화였다. 룩셈부르크 출신의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전까지 보기 드물었던 미국 영화에, 감독과 상대 배우 모두 유명한 영화인이었기 때문이다. [팬텀 스레드]는 1950년 런던에 위치한 의상실 우드콕의 디자이너 레이놀즈와 그의 뮤즈이자 연인인 알마가 벌이는 집착과 욕망 사이의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다뤄낸 작품이다.

빅키 크리엡스는 디자이너 레이놀즈의 뮤즈의자 연인이 된 여성 ‘알마’ 역을 맡았다. 사실 그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유명 감독과 유명 배우와 작업한 이유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레이놀즈의 마음을 얻기 위해 펼치는 그의 감정 연기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사랑은 물론 집착, 혹은 광기가 더해진 표현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덕분에 관객들에게도 임팩트를 안겨주었다.

청년 마르크스(2018) – 예니 역

이미지: 와이드 릴리즈(주)

실제로 사회를 뒤바꾸었던 인물의 삶을 서술한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지표가 되기도 한다. 세기의 사상가로 알려진 청년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다뤄낸 [청년 마르크스]도 그러한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를 마르크스와 그와 절친한 우정을 나누었던 엥겔스와 든든한 동료이자 아내 예니까지, 세 사람의 꿈과 이상을 그린다.

빅키 크리엡스는 마르크스의 부인으로 함께 프랑스 망명길에 올랐던 인물이자, 그의 든든한 동료였던 ‘예니’ 역을 맡았다. 역사적인 두 인물, 마르크스와 엥겔스 위주로 영화는 이야기를 다뤄내지만, 마르크스의 동반자였던 예니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빅키 크리엡스 해당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가문에서의 갈등 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에 잘 녹여내어, 실존 인물들의 진중한 드라마를 완성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드(2021) – 프리스카 역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빅키 크리옙스는 예술 영화, 독립 영화 등에 주로 출연했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 꽤 큰 전환점이 왔는데, 2021년 여름 시장을 겨냥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시간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독특한 전개를 보여주는 영화 [올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영화에서 주인공 가족 중 엄마이자 아내로 출연, 복합적인 사건의 중심을 맡았다. 영화 [올드]는 일반적인 시간보다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흘러가는 기이한 해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M. 나이트 샤말란 특유의 조용하고도 묵직한 스릴러로 풀어낸 작품이다.

빅키 크리엡스는 남편과 딸, 아들과 함께 휴가를 떠났다가 직원이 권해준 해변으로 향하게 된 ‘프리스카’ 역을 맡았다. 가족과의 휴가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점차 악몽으로 변질되면서, 프리스카는 자신의 뱃속에 자리한 종양으로 인해 끔찍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빅키 크리엡스는 그런 인물의 고통, 자녀들의 빠른 성장으로 인해 마주하는 혼란,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한다.

베르히만 아일랜드(2022) – 크리스

이미지: 찬란

영화인이 다른 영화인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빅키 크리옙스는 아마 이 작품으로 그 답을 알 듯하다.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위해, 전설적인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걸작이 탄생한 포뢰섬으로 떠나게 된 감독 커플의 이야기를 다뤄낸 작품이다. 배우인 빅키 크리옙스가 창작 때문에 고통받는 감독 역할을 소화해 자신은 물론,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빅키 크리엡스는 쉽게 시나리오를 쓰지 못하고, 결말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감독 ‘크리스’ 역을 맡았다. 크리스는 자신이 작성하는 시나리오에도 큰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다소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이다. 빅키 크리엡스는 그러한 인물의 심리를 시나리오 밖에 존재하는 크리스라는 인물로서 표현했다. 남자친구를 향한 시기나 질투 없이,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 능력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인물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드러내며 작품을 탄탄하게 이끌어간다.

코르사주(2022) – 엘리자베트 역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주)

실제로 세상에 존재했던 인물의 생애를 다뤄낸 영화는 분명 어렵다. 인물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영화적 재구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빅키 크리엡스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한 [코르사주]는 그러한 영화들 중 하나다. [코르사주]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가 숨이 막힐 듯한 황실의 통제를 벗어던진 뒤, 황실의 문턱을 뛰어넘고 자유를 찾으려 하는 내용이다.

빅키 크리엡스는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역을 맡았다. 엘리자베트는 시녀들을 비롯한 황실의 사람들과 어디를 가더라도 쫓아오는 언론의 존재 등 황후이기에 24시간 내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이였다. 때문에 영화는 그의 순탄치 않은 일상을 끊임없이 비춘다. 빅키 크리엡스는 더욱더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인물의 바람을 공감 가게 연기한다. 여기에 단발 스타일링, 타투처럼 현대에서 재해석한 표현들을 토대로 다양한 행동과 표정, 대사로 캐릭터의 내면을 의미 있게 그려낸다. 이 같은 열연 덕분에 빅키 크리엡스는 이 영화를 통해 제75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최우수 배우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