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설정, 애니메이션 실사화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과 유치한 대사까지. 상당한 ‘항마력’이 필요한 작품이란 걸 깨우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견디기 힘들 정도로 유치한데, 자꾸만 다음 에피소드에 손이 가는 이유가 뭘까. tvN [성스러운 아이돌] 이야기다.

이미지: tvN

이세계에서 ‘레드린’ 신을 모시는 대신관 램브러리(김민규)의 나날은 평화롭기만 했다. 완벽한 외모와 인품, 거기에 신실함까지 겸비한 그는 이세계인 모두를 사랑했고, 또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러나 램브러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100년 만에 부활한 마왕의 침공으로 무너진다. 힘겹게 마왕을 처치하려던 순간, 램브러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이내 의식을 되찾은 램브러리는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그가 눈을 뜬 장소가 대한민국의 한 방송국이며, 자신이 아이돌 그룹 와일드애니멀의‘우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 혼란스러운 와중에 ‘진짜’ 우연우와 연락이 닿았지만, 어째 상대 반응이 시큰둥하다. ‘망돌’로 살아갈 바에야 이세계의 삶이 훨씬 만족스럽다나 뭐라나. 결국 올해의 가수상 수상이라는 조건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에 성공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한가득이다. 과연 램브러리는 와일드애니멀을 정상급 아이돌로 성장시키고 무사히 이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이 드라마가 ‘수요 없는 공급’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웹툰과 웹소설 기반의 드라마들이 평가와는 별개로 큰 화제가 되었다고는 하나, ‘이세계’나 ‘마왕’이라는 지극히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영상화하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그리고 첫 에피소드 마왕군과의 전투 장면을 직접 봤을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성스러운 아이돌]이 풀어낼 이야기가 새롭거나 특별한 것도 아니다. 선과 악의 대립을 비롯해 치열한 엔터테인먼트 산업(혹은 ‘돌판’)에서 꿈을 좇는 청춘들, 언더독의 반란, 트라우마 극복, 직장 로맨스 등 충분히 예측 가능한 서사의 연속이다. 익숙한 맛이 무섭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작품 내에 또 다른 매력적인 요소가 있어야 그 익숙함이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내세울만한 매력적이고 강력한 무기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김민규의 퍼포먼스다. 전작 [사내맞선]에 이어 김민규는 [성스러운 아이돌]에서도 과장된 캐릭터를 뻔뻔하게 소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세계에서는 완전무결한 대신관이 우리 차원(?)에서 어딘가 모자라보이고 군것질에 환장하는 망돌로 살아가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응원해주고 싶은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찬란한 대사들도 김민규가 하면 왜인지 그럴듯하게 들린다. 상대적으로 극중 비중은 적은 편이나, 치열한 연예계 생활에 찌들어버린 ‘진짜’ 우연우의 사연은 무엇일지 궁금한 이유도 전적으로 김민규의 연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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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애니멀의 새로운 매니저 김달을 연기한 고보결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을 직접 목격한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린 암울한 과거, 그 기간 동안 유일하게 힘이 되어준 우연우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 팬심과 매니저의 본분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귀여운 모습 등등 다채로운 김달의 서사는 고보결의 연기로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민규와 고보결, 두 배우의 매력이 [성스러운 아이돌]을 이끄는 원동력인 셈이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한 유치함은 호불호의 영역을 넘어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평소 서브컬처와 가까이 지낸 이들에게는 나름의 볼거리와 즐거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닌 작품일지 몰라도, 반대의 경우에는 한 에피소드를 채 끝내지 못하고 중도하차를 할 여지가 다분하다. 김민규와 고보결, 예지원을 제외한 배우들의 연기에 ‘뻔뻔함’이 부족해 극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