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친구와 멀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크게 싸운 것도 아닌데, 사소한 아쉬움이 쌓여서 혹은 가치관이 변하면서 연락이 끊기는 경우. 끊긴 매듭을 다시 봉합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종종 생각이 나는 그런 우정. 영화 [소울메이트]의 중심에도 그런 우정이 있다. [소울메이트]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알아본 미소와 하은이 기쁨과 슬픔, 그리움을 공유하면서 진정한 친구 사이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동화 같은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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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초등학교로 한 아이가 전학을 온다. ‘안미소.’ 아이는 그저 짧게 이름만 내뱉고는 교실에서 도망쳐 버린다. 그런 아이의 가방을 들고 쫓아온 ‘고하은’. 둘은 그날 함께 그림을 그리고 목욕도 하고 저녁을 먹으며 가까워진다. 당근을 싫어하는 하은을 위해 미소는 당근을 골라 먹고 반대로 하은은 미소를 위해 열심히 브로콜리를 먹는다. 나날이 덧대어 가는 추억 속에 미소와 하은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성장한다.

서로가 너무 소중해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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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미소와 하은은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다. 야자를 빠지라는 미소의 문자에 하은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퇴를 감행한다. 환경이 갈라지면서 이전처럼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은 굳건하다. 하지만 때로는 가까운 사이기에 조심스럽고,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단단하던 둘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진우가 나타나면서다.

하은은 과팅에서 진우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내 하은이 수줍게 용기를 내면서 풋풋한 첫사랑이 시작되고, 여기에 미소까지 끼어 싱그러운 청춘이 펼쳐진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미소와 진우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이를 숨기는 미소와 진우. 하지만 미소가 제주를 떠나던 날, 하은은 미소의 목에 걸린 진우의 목걸이를 보고 비밀을 눈치챈다.

어른이 된 미소와 하은은 금이 간 우정을 고이 간직한 채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지쳐가는 몸과 마음탓에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툭 터놓고 감정을 표현하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서로를 잘 알고 또한 서로가 너무 소중하기에 하은과 미소는 마음의 밑바닥을 보여주지 못한다.

반짝이는 유리 구슬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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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제주도에서 펼쳐지는 전반부는 청춘 영화의 정석이라 불러도 좋다. 에메랄드 같은 바다와 녹음이 짙어 신비로운 느낌을 조성하는 숲속 동굴, 거기에 포근한 가정집과 귀여운 고양이까지. 마치 한 폭의 엽서처럼, 제주도의 자연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하은은 자연스레 미소의 스쿠터에 올라타고, 미소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귀를 뚫는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틀 앞에서 케이크의 촛불을 불며 생일을 축하하고, 하은은 미소에게 수줍게 첫사랑을 공유한다. 제주의 푸른 자연경관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때묻지 않은 둘의 우정이 몽글몽글한 감정을 피우며 그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90년대 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테일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미소와 하은이 완벽 호흡으로 ‘올 퍼펙트’를 선보이는 DDR 펌프부터 진우가 처음으로 하은을 인식한 과팅과 하은이 진우에게 당돌히 사랑을 고백한 캔모아 카페가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줄 이어폰이 꽂힌 mp3, 은근슬쩍 속마음을 내비치던 싸이월드 미니미까지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대중문화가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여기에 극의 귀염둥이 마스코트인 고양이 마루를 빼놓을 수 없다. 마루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미소와 하은이 구조한 고양이로, 둘의 우정을 상징하는 존재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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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본격화하는 중반부부터 극의 분위기가 전환된다. 생동감이 가득했던 제주와 대조되는 차갑고 고요한 서울이 극을 채우고, 대학에 진학한 하은과 홀로서기를 택한 미소의 현실이 번갈아 그려진다. 특히 미소의 고난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먹먹함을 느끼게 한다. 찬란한 청춘이 진 자리에는 공허함과 그리움, 씁쓸함이 채워진다. 시각적인 톤은 무채색에 가까워지지만 감정선은 오히려 다채로워지면서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미로 같은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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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좋았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 말은 미소와 하은의 관계뿐 아니라 연출에도 적용된다. 후반부에 사건들이 몰아치는데 그중 몇 개는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 변화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 같지만 그 탓에 주인공들의 행동이 모호하게 다가온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반전도 조금 아쉽다. 반전을 표현하는 연출 기법이 일관적이라 진부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후반 30분을 덜어내거나 다르게 전개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해당 부분이 원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이긴 하지만 리메이크에도 똑같이 적용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스토리의 굵은 줄기가 이미 원작을 따라갔다. 따라서 굳이 유사한 결말을 고수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영화 [소울메이트]는 미소, 하은, 진우 세 사람의 청춘을 담아낸 중반부까지는 힘차게 나아갔지만, 갈등이 본격화하는 중반 이후부터 조금씩 헤매기 시작한다. 원작을 차용한 반전과 결말이 결과적으로는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자충수가 됐다.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 풀지 모르는 건 하은과 미소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닌 셈.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소울메이트]는 매력이 분명하다. 청량한 제주도 풍광과 폭넓은 감정선, 주연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영화를 완성시킨다. 소설이 매개체로 작동한 원작과 달리 하은과 미소를 연결하는 건 그림이다. 영화의 명대사 중 그림과 관련된 구절을 소개한다. “이젠 니 얼굴을 그리고 싶어. 사랑없인 그릴 수조차 없는 그림 말이야.” 너무 사랑했기에 두려움과 미움도 컸던 하은과 미소. 영화는 지켜보는 관객에게 부디 이러한 실수를 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