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배우 천우희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얼굴까지 가진 그는 매번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관객을 놀라게 했다. 또한 강하늘, 한효주, 한예리, 안재홍, 전여빈, 이다윗 등 수많은 또래 배우들이 천우희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사랑받는 배우임이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2023년 5월 방영 예정인 tvN 드라마 [이로운 사기]에서는 ‘공감 불능 사기꾼’으로 분하여 복수극을 펼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스크린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놀라움을 선사하지만, 일상에서는 엄마의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시간을 보낸다는 천우희의 변화무쌍한 캐릭터 변천사를 살펴보자.

써니(2011) / 이상미 역

이미지: CJ ENM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함께 보낸 7공주 ‘써니’의 추억 찾기를 그린 [써니]. 천우희는 써니를 해체시킨 장본인이자 과거 시점(1980년대)의 히든 빌런 ‘이상미’를 연기했다. 불량소녀 상미는 몸을 덜덜 떨며 본드를 흡입하고, 유리병 조각으로 상대를 위협하며, 섬뜩한 표정으로 기괴한 언행들을 일삼는다. 태연하게 험악한 욕설을 내뱉는 장면은 극장판에서 삭제될 정도였다고 한다. 천우희의 역할은 적은 비중이었지만 한낱 스쳐 지나가는 조연이 아니었다. 천우희는 이 캐릭터를 통해 무시무시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써니]의 연출을 맡은 강형철 감독은 천우희를 향해 ‘너는 내 자존심’이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한공주(2013) / 한공주 역

이미지: 무비꼴라쥬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은 소녀가 상처를 치유하고, 감내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한공주]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다. 천우희는 주인공 ‘한공주’ 역할로 강렬하고 과감한 연기 변신을 보여준 것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주들에게 희망과 응원까지 전했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공주의 복잡한 내면을 진지하고 섬세하게 연기하며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국내외 영화인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는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휩쓰는 쾌거로 이어진다. 그의 수상소감처럼, 이렇게 작은 영화에서 유명하지 않은 배우가 큰 상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유의미한 작품이었다. 천우희의 잠재력이 깨어나기 시작한 [한공주]는 오래도록 그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이다.

해어화(2015) / 서연희 역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1943년 비운의 시대, 가수를 꿈꾸는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해어화]. 천우희는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경성의 모던 걸 ‘연희’로 등장한다. 연희는 가무와 풍류는 물론이고 문학과 예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예술사에 공헌한 일패 기생이다. 발랄한 사랑스러움부터 극한 상황에 처한 처절함까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천우희의 다채로운 매력이 담긴 작품이다. 특히나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부르며 보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장면은 우아하고도 애절한 여운을 남긴다. [뷰티 인사이드]에서 짧게 호흡을 맞춘 한효주와 재회해,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모던 걸들의 특별한 우정을 보여준다. 한효주는 작은 체구로 파워풀한 에너지를 내뿜는 천우희를 보며, 또래이고 친구지만 배우 입장에서 팬이 되었다고 말했다.

곡성(2016) / 무명 역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낯선 외지인의 등장과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발칵 뒤집힌 마을의 이야기를 그린 [곡성]. 천우희가 연기한 미스터리한 여인 ‘무명’은 연쇄 살인사건의 목격자로, 현장에 소리소문 없이 나타나 주변을 맴돌며 내내 미스터리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무수한 해석이 난무하던 [곡성] 안에서도 가장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 인물일 것이다. ‘집에 가’, ‘돌아가’라는 짧은 대사만으로 거대한 존재감을 보여준 천우희는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목되었다.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은 천우희가 보여준 여유에 매우 놀랐고, 여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다는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다.

앵커(2022) / 정세라 역

이미지: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방송국 간판 앵커에게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제보 전화가 걸려온 후, 그에게 벌어진 기묘한 사건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앵커]. 천우희가 연기한 ‘정세라’는 생방송 직전 죽음의 제보 전화를 받은 방송국 간판 앵커로, 이후 지속적으로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냉철하고 완벽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점차 불안과 초조에 휩싸이는 정세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다. 영화는 증폭되는 긴장감과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며, 티끌 한 점 없어 보이는 삶이라도 깊숙한 곳에 어두운 이면을 가졌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의미심장하게 전한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3) / 이나미 역

이미지: 넷플릭스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분실한 뒤, 일상 전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며 발생하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현실 밀착 스릴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2023년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일본의 추리 소설 신인상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히든카드상을 받은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익숙한 소재를 참신하게 풀어낸 원작 소설은 2018년 일본에서 먼저 영화로 제작되었다. 한국판에서 천우희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후 일상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평범한 직장인 ‘이나미’ 역할을 맡았다. 원작의 이나바 아사미 역할이며, 일본판에서는 일본 대표 배우 키타가와 케이코가 연기했다. 강렬한 제목을 가진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스마트폰과 하나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일상을 배경으로, 섬뜩하고도 스릴 넘치는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최대한 현실감을 전달하기 위해서 천우희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게 일상을 지배당한 우리가 ‘당신의 스마트폰으로 누군가 당신인 척하고 있다’라는 영화의 문구를 지나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