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글로리] 파트 2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길고도 길었던 2개월의 기다림이었다. 지난 12월 공개 직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더 글로리],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과연 문동은(송혜교)이 오랜 세월 계획한 복수의 끝은 우리가 기다린 ‘사이다 엔딩’일까, 아님 모두의 파멸과 몰락일까.

이미지: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 2에서 동은은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박연진(임지연)을 무너뜨릴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해 나간다. 궁지에 몰린 연진이 동은의 모친을 ‘새로운 고데기’ 삼아 그를 압박하는 것도 잠시, 평생을 몸 바친 동은의 복수극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제 가해자들에게 남은 건 철저하게 응징당하는 것뿐이다.

동은에게 학폭을 가했던 이들은 자신들이 저질러온 악행들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연진은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고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됐고, 이사라(김히어라) 역시 살인미수로 징역을 살고 화가로서의 커리어도 완전히 끝나버렸다. 최혜정(차주영)은 평생을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가야 하고, 전재준(박성훈)과 손명오(김건우)는 목숨으로 죗값을 치렀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최후에 동은이 ‘직접’ 가담한 부분은 사실상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판은 동은이 짰지만, 그의 복수를 완성시킨 건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눈 가해자들 스스로다. 동은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연진 무리가 어렸을 때와 ‘변한 게 없었기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건 아니었을까. 반대로 동은과 조력자들은 서로 의지하며 연대한 결과 저마다의 구원을 얻어낸 것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권선징악의 쾌감이 상당하다.

전작에서 좋았던 부분들은 파트 2에서도 빛이 난다. 우선 후반부 이야기가 악역의 몰락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인지, 이들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특히 송혜교의 연기 변신과 낯섦에 다소 가려진(그럼에도 여전히 놀라웠던) 임지연의 존재감은 파트 2 내내 압도적이다. 특히 눈은 울고 있지만 입은 웃고 있던 교도소 내의 마지막 일기예보 장면은 보는 내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박성훈과 김히어라, 차주영, 김건우, 그리고 ‘문동은 엄마’ 박지아 배우 역시 현실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들을 짜증이 날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 몰입감을 더한다.

이미지: 넷플릭스

김은숙 작가만 특유의 ‘말맛’과 개그 코드도 여전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유머는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조금은 오그라드는 듯하면서도 맛깔난 대사들은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작에서 돋보였던 차분하고 서늘한 화면연출 역시 파트 2에서도 돋보이는 요소다.

전반부에서 다소 아쉬웠던 동은과 여정의 서사에 대해선 여전히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인생의 전부였던 복수가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허무함을 새로운 감정 덕에 극복한다는 서사는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동은을 향한 주여정(이도현)의 헌신이 너무나 맹목적인 게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이다. 여정이 ‘왜’ 그토록 동은의 망나니를 자처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나 할까.

동은의 복수가 실현되는 과정도 평가가 엇갈릴만한 지점이다. 증거 수집은 물론이고 가해자의 결혼 상대까지 계획에 포함시킬 정도로 치밀하게 짠 복수가 우연에 의해 완성된 셈이니 말이다. 물론 가해자들이 스스로 무너진 덕에 동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잘 풀린 것이긴 하나, ‘동은이 직접 완성시킨 통쾌한 복수극’을 기대했을 이들에겐 다소 심심하고 작위적인 엔딩으로 다가올 여지도 충분하다.

창대했던 시작에 비해 뒷심이 다소 부족한 듯한 인상도 있지만, [더 글로리]는 분명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드라마다. 재미와 완성도를 떠나 이 작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부디 학교폭력 문제 공론화와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관심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피해자들이 숨고 가해자들이 떳떳한 세상은 하나도 신나지 않으니까. 그렇지, 연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