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살다보면 여러 가지 시련에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쉽게 포기하지만 굳은 의지와 인내심으로 이를 이겨내는 사람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런 사례들로부터 교훈과 감명을 받으므로, 따라서 대중문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모름지기 ‘영웅’이라면 버거울 정도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기본 소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히어로들도 각자의 처한 사정이 달라서 좋은 조건에서 활약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유독 더 힘들게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적 문제나 집안사정 같은 일도 있겠지만,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경우에는 얼마나 힘들까?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괴로워도, 이런 역경을 딛고 위험을 무릅써가며 꿋꿋이 행하는 히어로들이 꽤 있다. 이런 설정은 실제 장애를 가진 어린 독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므로, 꾸준히 나와 주는 것이 좋은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술독에 빠진 히어로

토니 스타크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던 토니 스타크에게도 힘든 시련을 안겨준 시기가 있었다. 재벌 플레이보이의 모험이라는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결함을 드러낸 알콜 중독에 빠진 일이다. 아이언맨의 정체가 토니 스타크라는 것이 아직 비밀이던 시기에, 아이언맨 슈트가 오작동을 반복하던 끝에 외국의 대사를 공격해 죽이는 사고가 일어난다. 대중의 비난과 의심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스타크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결국 어벤저스 리더의 자리까지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점점 술의 양이 늘어간 그는 만취 상태에서 집사인 자비스에게 폭언을 하는 등 주변 사람들을 다 밀어내며 밑바닥까지 추락했으나, 당시 여자친구인 베서니 케이브의 도움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술을 끊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아이언맨 슈트의 오작동은 스타크사의 명성을 망치려는 경쟁사의 짓이었다.

<병 속의 악마>

“병 속의 악마”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이 이야기는 1970년대 가장 중요한 슈퍼히어로 만화로 꼽히며 상을 받기도 했고, 이후 토니 스타크의 인물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 뒤로부터 시련이 닥치면 습관적으로 술을 찾게 되면서 다시 과음하는 바람에 친구 로디에게 아이언맨의 역할을 넘기기도 했다. 반면, 알콜 중독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기에, 극복을 위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훗날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된 캐럴 댄버스(캡틴 마블이 되기 전 미즈 마블이던 시절)가 술을 끊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히어로

문나이트

다중인격을 갖고 있는 해리성정체감장애를 앓고 있는 히어로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마블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라고 일컫는 센트리는 ‘보이드’라는 자신의 사악한 인격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달의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전사인 문나이트는 다양한 측면을 가진 달의 특징을 반영한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용병 마크 스펙터, 택시기사 제이크 로클리, 부자인 스티븐 그랜트, 달의 아바타인 문나이트, 탐정 미스터 나이트 등등, 줄어들지는 않고 점점 늘어가고 있는 이 인격들로 인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프로페서 X의 아들인 리전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흡수한 탓에 수백 가지 인격을 얻게 되었는데, 초능력자나 범죄자, 또는 초능력을 가진 범죄자 등 위험한 인격들을 다소 보유한 탓에 아주 위험한 존재로 분류된다. DC의 크레이지 제인 역시 리전과 유사하게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인격들을 여럿 갖고 있다. 얌전한 숙녀인 로즈 포레스트에겐 거칠고 위험한 ‘쏜’이라는 인격이 하나 더 있다. 쏜의 인격이 지배하게 되면, 배트맨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범죄자들을 사냥하고 다닌다. 이런 정체성의 문제는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만들지만 가장 힘든 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데드풀

데드풀은 ‘힐링 팩터’라는 뛰어난 성능의 재생력을 얻은 동시에 정신에도 악영향을 얻었다. 앤트맨인 행크 핌은 양극성 장애를 앓으며 감정이 오락가락 한다. 특히 폭력적 성향의 옐로우재킷 인격이 별도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브루스 배너는 때때로 분노가 폭발하며, 제시카 존스는 퍼플맨으로부터 받은 지속적 학대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었다. 아무리 강인한 초인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문제는 혼자서는 극복하지 못했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준 가족과 동료, 연인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히어로

데어데블

시각장애 가진 슈퍼히어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눈이 안 보이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보는 것이다.
코믹스 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인 슈퍼히어로는 1941년에 DC에서 등장한 닥터 미드나잇이다. 역대 모든 닥터 미드나잇은 각자의 이유로 눈이 보이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밤에는 잘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히어로는 데어데블이다. 그나마 레이더 같은 감각을 얻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기도 하다. 주변 인물들이 불행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마블의 마담 웹이나 블라인드폴드는 빛을 잃은 대신에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히어로

에코

에코는 청각장애를 가진 채로 태어났지만 귀의 기능이 없는 대신에 눈이 발달했다고 할까, 한 번 본 것을 똑같이 따라하는 능력이 있다. MCU에서 에코 역할을 맡은 배우 알라콰 콕스는 실제 청각장애인인 동시에 한쪽 다리까지 의족을 사용한다. 본체가 불굴의 의지력을 지닌 인물인 것이다. 호크아이도 청력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적의 초음파무기에 당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보청기를 껴야만 했던 그는 나중에 청력이 돌아왔으나, 완전히 회복되진 않아서 지금도 때때로 보청기의 도움을 받는다.

다리가 불편한 히어로

이미지: 프로페서 X

엑스맨 교수님인 프로페서 X도 젊은 시절에 싸우다 하반신이 마비되어버렸다. 이후 외계의 기술로 회복되었는데, 역시 휠체어가 그의 상징물이 된 탓인지 나았다가 다시 손상을 입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해서 겪었다.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 실루엣과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인 선 스파이더는 다리가 마비되었지만 지팡이를 이용해 히어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배트걸은 조커의 총에 맞아 휠체어 신세가 되었지만 그 기개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컴퓨터 특기를 살려 슈퍼히어로를 위한 해커인 오라클로 활동했고, 나노 기술을 이용한 척추 수술을 받고 다시 배트걸로 돌아왔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시티즌 스틸은 사고로 다리를 절단했지만 액체금속을 뒤집어쓰고 온몸이 금속으로 덮이면서 강력한 두 다리를 얻게 되었다.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샤잠 주니어와 두 다리를 잃은 마블의 코모도는 평소엔 거동이 불편하지만 히어로로 변신하면 건강해진다.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히어로

이미지: 로봇맨

격렬한 전투를 자주 치르는 슈퍼히어로 중엔 몸의 일부를 잃은 이들이 많다. 마블의 토르, 윈터 솔저, 미스티 나이트는 모두 한 팔을 잃어 의수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 저스티스 리그의 사이보그와 마블의 데스록은 몸의 상당 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대표적 기계인간이다.

둠 패트롤 팀의 로봇맨의 경우는 심각하게도 아예 신체 전체를 잃었다. 원래 카레이서였던 그는 경주 도중 큰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신체를 포기하고 의식만 로봇의 몸에 이식해야 했다. 이 수술을 집도한 나일스 콜더 박사부터 휠체어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입장으로, 앞서 소개한 크레이지 제인 등 멤버 모두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다.

엑스맨의 케이블은 부상 때문이 아니라, 몸이 기계로 바뀌는 질병을 앓고 있어서 신체의 일부가 기계인 상태이다. 보통이라면 전신이 다 기계화가 되어야 하는 병이지만, 뛰어난 염력으로 질병의 진행을 막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