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이미지: 외유내강

*본문에는 [사바하]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사바하]는 신흥 종교의 비리를 쫓는 목사와 의문의 인물들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다. ‘원만하게 성취한다’는 뜻을 가진 ‘사바하’는 불교 천수경에 등장하는 용어로, 기독교의 ‘아멘’과 같이 주문 끝에 붙이는 말로 쓰인다. [검은 사제들]을 통해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장재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오컬트 장르다운 서늘한 분위기와 독창적인 세계관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바하]에는 기독교, 불교, 불교계 신흥 종파가 등장한다. 영화는 신흥 종파의 비리를 찾아내려는 목사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박웅재’는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단체 ‘극동 종교 문제 연구소’의 대표 겸 목사이며, 과거 하나의 사건을 겪은 후 신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신흥 종교 단체의 비리를 추적하기 위해 영월 ‘사슴 동산’에 잠입하던 중, 예상치 못한 의문사와 자살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탐욕스러운 신흥 종파의 사기극’ 정도로 요약될 줄 알았던 이 사건이 결코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분투한다.

신을 삼킨 인간

이미지: 외유내강

돈에 눈이 멀어 종교 비리를 쫓는 것처럼 보이는 박 목사에게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과거 가족과 함께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이슬람 광신도들에 의해 가족을 잃은 것이다. 그때 가해자들의 입에서는 ‘신의 뜻’이라는 말이 나왔고, 그 후로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살아왔다. 어쩌면 그는 이 의심을 멈추고 싶어서,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신을 찾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종교 단체를 추적해도 신의 탈을 쓴 인간만 즐비했을 뿐, 진짜 신은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살아 있는 미륵’이라 불리는 ‘김제석’을 만난다.

1899년에 태어난 김제석은 불사의 몸을 얻은 인물이다. 늙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며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만 헌신해왔다. 이렇게 기적적인 존재가 사슴 동산을 만든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불교에서 사천왕이 미륵을 지켰듯이 자신에게도 수호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제석은 자신을 맹신할 만한, 아주 외로운 인간을 찾아간다.

생을 춥고 외롭게 살아온 ‘나한’은 그의 든든한 수호신이다. 나한은 김제석의 양아들로 살아가며 그의 뜻대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면서까지 말이다. 신을 삼킨 존재가 다가와 구원과 희망의 손길을 내미니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신도들에게 김제석은 진흙 속의 연꽃이자 어둠 속의 빛이었다.

하지만 김제석은 초월적인 육체를 가졌음에도 죽음에 대한 번뇌를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예언가 대승으로부터 ‘당신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 시점에, 당신을 죽일 존재가 당신의 고향에서 태어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9년, 그의 고향의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영생을 상징하는 사슴 동산의 사슴인 듯 보였지만, 결국 김제석도 뱀과 용 사이에 서 있는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결국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그 존재를 제거하려 한다. 영화는 그 존재를 ‘그것’이라고 부른다.

구원과 희망이 ‘그것’에게 있었다

이미지: 외유내강

‘사람들은 말했다. 그때 ‘그것’을 바로 죽였어야 한다고’. 영화는 시작부터 ‘그것’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뱃속에서부터 쌍둥이 동생의 다리를 갉아먹던 ‘그것’은 예언이 예고된 1999년, 악의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탄생과 동시에 마을에 재앙을 몰고 왔고, 부모는 곧 사망했으며, 사람들은 뒤늦게 악의 뿌리를 뽑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줄 알았던 ‘그것’은 그렇게 16년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제 손으로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당하는 ‘그것’은 자신이 원치 않는 악행을 그저 목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고행을 해온 ‘그것’은 마침내, 그토록 기다려온 제자 나한을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김제석을 아버지로 섬기며 아이들을 죽여온 나한은 처음에 ‘그것’의 존재를 의심하지만, ‘그것’이 부르는 자장가를 듣고 위로와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김제석을 향해 마지막 예언을 읊으며, 제자로서 ‘그것’의 뜻을 대신 이룬다.

‘그것’은 ‘짐승 역시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을 설명하는 존재로, 박 목사가 찾던 진짜 미륵인 셈이다. ‘그것’이 악의 본성을 억누르고 깨달음을 얻어 미륵이 된 것인지, 본래 예고된 미륵의 탄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래전부터 구원과 희망이 ‘그것’에게 있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 그러나 박 목사는 그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영월을 떠난다. 역시나 신은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신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이미지: 외유내강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당신의 얼굴을 가리시고 그렇게 울고만 계시나이까. 깨어나소서. 저희의 울음과 탄식을 들어주소서. 일어나소서. 당신의 인자함으로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하시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박 목사의 나지막한 기도 끝에 ‘사바하’라는 자막이 올라간다. 신의 존재를 끝없이 의심하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일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 불완전함은 우리의 나약함이 아닌 절박함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불안한 세상에서 무엇이라도 믿고 싶은데, 무얼 믿어야 할지 모를 때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을 안다. 누구도 그 절박함을 이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신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는 많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 영화들이 관객을 얼마나 부드럽게 설득하려 했는지 알게 되었다. 현실의 민낯은 더욱 끔찍하고 충격적이니 말이다. 현실에서도 인간이 신이 되고, 뱀이 용이 되고, 어둠은 빛이 되고, ‘그것’은 미륵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무언가가 자신의 순리를 거부할 때, 본래 그것으로 태어난 것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영화 [사바하]는 ‘신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비극이 넘치는 세상을 왜 보고만 있는지, 그곳에 계시는 것은 맞는지. 나약한 인간이 신에게 보내는 원망이며 한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