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달라진 하늘과 함께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사계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뉴스들이 보도되며, 만물이 성장하는 가을은 특히나 귀한 계절이 되어버렸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가을이 사라진다니, 상상할 수도 없다. 붉고 노란 가을 풍경을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가을 내음 짙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미술관 옆 동물원] (1998)

시네마 서비스

사랑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각자 짝사랑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춘희’(심은하)와 ‘철수’(이성재)는 얼떨결에 함께 살게 된다. 감정에 충실한 동물원 남자 철수는 소녀적인 미술관 여자 춘희의 시나리오에 핀잔을 주고, 둘은 서로가 사랑하는 인공과 다혜를 내세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시나리오 안에서 미술관 안내원 다혜와 동물원 수의사 인공의 관계가 발전할수록, 현실 속 철수와 춘희의 관계도 서서히 달라져간다.

한국 멜로 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미술관 옆 동물원]은 [집으로…], [오늘]은 연출한 이정향 감독의 작품이다. 심은하와 이성재가 주연을 맡았으며, 심은하의 귀엽고 사랑스럽고 풋풋한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제목이 상징하듯 대조적인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요한 미술관과 생기 있는 동물원 같은 주인공들은 풍덩 빠지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물들어가는 사랑을 경험하며 마치 가을을 닮은 사랑을 시작한다. 배경 또한 잔잔한 가을 풍경을 담고 있으며, 특히 단풍길과 연꽃으로 둘러싸인 촬영지는 가을 데이트 명소로 꼽힌다.

[가을 이야기] (1998)

Les Films du Losange, October Films

중년 여성의 일상과 삶, 선택의 문제를 그린 멜로 영화 [가을 이야기]. 남편을 잃고 아버지의 포도농장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마갈리'(베아트리체 로망)와 완벽한 가정에 직장까지 거머쥔 ‘이자벨'(마리 리비에르)는 모든 순간을 함께한 베스트 프렌즈다. 마갈리의 오랜 솔로 생활이 안타까웠던 이자벨은 그를 위한 특별한 소개팅을 주선해 주기로 마음먹으며, 몰래 신문에 구인광고를 낸다. 이들의 또 다른 친구 ‘로진’(알렉시아 포탈)은 자신의 철학교사였던 ‘에티엔’(디디에 상드레)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 에티엔과 마갈리를 맺어주려고 한다.

‘사계절 이야기’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인 [가을 이야기]는 제목부터 그러하듯 가을을 배경으로 하며, 시골마을과 농장을 비롯한 풍요로운 가을 풍경을 담아낸다. 소시민의 일상과 연애를 주로 다루며 ‘연애박사’라는 별명까지 얻은 프랑스 거장 감독 에릭 로메르의 작품답게,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섬세하고 사려 깊게 다룬다. 여기에 마리 리비에르, 베아트리체 로망 등 로메르의 영화 세계에서 성숙해온 배우들의 완숙한 연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

[뉴욕의 가을] (2000)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사랑으로 물든 뉴욕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영화 [뉴욕의 가을]. 뉴욕의 최대 레스토랑 경영자이자 모든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이며 최고의 바람둥이인 ‘윌 킨’(리처드 기어)은 22살의 맑고 순수한 ‘샬롯’(위노나 라이더)과 사랑에 빠진다. 윌은 여느 여자와 마찬가지로 샬롯과의 미래는 없음을 확실히 밝히고, 샬롯은 그에게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샬롯은 자신의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지만, 윌은 샬롯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며 그녀의 죽음을 막으려 노력한다.

남자의 첫사랑과 여자의 영원한 사랑을 그린 [뉴욕의 가을]은 리처드 기어의 중년미와 위노나 라이더의 사랑스러움이 담긴 영화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나이 차이와 죽음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진실을 사랑을 배우며,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잊지 못할 가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뉴욕의 늦가을 풍경까지 담아내며, 분주한 뉴욕에도 쓸쓸한 가을이 찾아온다는 것을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만추] (2011)

CJ ENM MOVIE, SBS콘텐츠허브

큰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은 여자와 선물 같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 영화 [만추]. ‘애나’(탕웨이)는 어머니의 부고로 7년 만에 교도소에서 특별 휴가를 받고, 장례식에 가기 위해  시애틀행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훈’(현빈)을 만나고, 두 사람은 함께 시애틀에서의 하루를 보낸다. 모든 것이 다른 두 남녀의 짧은 만남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사랑을 남긴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찰나의 기억이 평생 이어질 수도 있음을, 하루에 불과했더라도 그 사랑을 만나기 전과 후의 인생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고즈넉한 시애틀 거리에 내려앉은 쓸쓸함과 두 주인공의 옷차림, 무심한 표정마저 완연한 가을을 묘사한다. 이렇게 비와 안개가 자욱한 계절 속에서 피어나는 두 남녀의 러브스토리는 잔잔하고도 잔인해서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2014)

(주)영화사 진진

자연에서 펼쳐지는 슬로우 푸드 라이프를 그린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이치코’(하시모토 아이)는 도시에서 생활하다 쫓기듯 고향인 코모리로 돌아온다. 시내로 나가려면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작은 숲 속 같은 곳에서 자급자족하며 농촌 생활을 시작한다.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 그리고 제철마다 풍족하게 선물해주는 자연의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자연 속 사계절의 변화를 응시하는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의 여름과 가을 편이다. 원작 만화의 작가는 귀농한 후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재배해 하루하루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꼈던 것을 담백하게 만화로 그려냈다. ‘그동안 소홀했던 나에게 정직한 한끼를 대접합니다’라는 포스터 문구에 걸맞는 대표적인 요리영화이다. 극중 가을을 맞이한 주인공은 밤과 감을 수확하고, 밤조림과 곶감 등을 만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을을 맞이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연에 감사하게 되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법도 배운다. 영화는 자연과 음식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일본판 ‘삼시세끼’로도 불리며, 싱그러운 자연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관전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