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일 강의 죽음]에 이은 ‘에르큘 포와로’의 3번째 시리즈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이 그 베일을 벗었다. 탐정 생활을 은퇴하고 베니스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포와로'(케네스 브래너)에게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티나 페이)가 찾아와 심령술사의 실체를 밝혀달라 부탁한다.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방문한 저택에서 갑자기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에 포와로의 탐정 본능이 꿈틀댄다.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인공 ‘포와로’역을 맡아 영매, 유령 등 기존 추리극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의 초자연 스릴러의 색채를 띤 추리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케네스 브래너 이외에도 제9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이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변신에 나선다.

핼러윈 밤, 1년 전 사랑하는 딸을 잃고 깊은 상실에 빠진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의 초대로 저택의 교령회에 참석한 이들은 미스터리한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양자경)가 죽은 영혼의 목소리를 전하는 광경을 보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날 밤, 레이놀즈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실체 없는 용의자를 쫓던 포와로는 충격적인 진실을 밝혀낸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기존 추리극에 초자연적인 요소가 추가되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킨다. 그러나 ‘유령’이 주는 긴장감을 빌드업 하기 위해 인물들에 얽혀있는 드라마에 치중한 스토리는 추리극으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호러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공포와 추리가 결합된 이번 작품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저택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한정적 공간의 축소된 스케일과 그로 인해 떨어지는 역동성은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등장인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배우들은 캐릭터의 몫을 충분히 수행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레이놀즈’역의 양자경은 독특한 비주얼과 안정적인 연기로 극초반 강력한 흡입력으로 극을 이끈다. 적은 비중과 분량에도 미스터리한 동양 심령술사의 존재감을 어필하며 강렬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전작을 뛰어넘는 강력한 추리를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실망을 안길 수 있지만, 기존 추리극에 식상한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약한 반전과 트릭은 고전소설 원작의 한계를 보여주며, 포와로의 추리가 21세기 관객들에게는 클리셰와 같이 익숙한 풀이로 느껴지게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심령 공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래도 정통 추리극이 전무한 요즘, 포와로 시리즈는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다음 시리즈를 여전히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