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이미지: 넷플릭스

 

세상은 넓고 무섭고 위험한 사람은 많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섹션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독의 게임: 왕좌의 연대기(이하 ‘중독의 게임’)]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시즌 동안 8개의 에피소드를 선보인 [중독의 게임]은 세계 곳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마약으로 어둠의 제왕에 올라서서 부와 권력을 누렸던 범죄자를 소개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범죄자부터 현재도 진행형인 범죄자까지, 공권력을 예사로 무시하며 악명을 떨쳤던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40여 분의 길지 않은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부담 없는 분량의 에피소드는 [중독의 게임]을 선택하게 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흥망성쇠를 파고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면도 있다. 이를테면, 시험 전날 벼락치기용으로 딱 알맞은 핵심적인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된 요점 정리 노트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들이 어떻게 마약 제국을 건설하고 또 자멸했는지는 알겠는데, 솔직히 신문 기사나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넷플릭스

 

시즌 1 – 1~2화에 소개된 콜롬비아(메데인, 칼리) 카르텔로 그 이유를 말해보자. 단도직입적으로 픽션의 개입을 허용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나르코스]를 보는 게 훨씬 더 재밌고 흥미롭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르코스]의 광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중 가장 애착을 느끼고, 리플레이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탄탄한 서사에 푹 빠졌다. 특히 캐릭터에 부합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큰 매력을 느끼는데, 시즌 1~2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연기한 와그너 모라의 광기 어린 연기는 압권이다.

 

바로 그 기억 때문에 [중독의 게임]을 보게 됐지만, 긴 세월을 간략하게 압축하다 보니 연예 가십 뉴스를 보는 것 이상의 감흥은 없다. 인터뷰와 당시 영상을 재구성해 주요 사건을 나열하는데 그쳐 마약왕을 둘러싼 이야기에서 깊이감이나 치밀함이 전해지지 않는다. 실화 범죄 다큐를 찾게 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약하다고 할까. 그나마 실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가 신선한 호기심을 부른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나르코스]로 메데인, 칼리 카르텔을 접하다 보니 드라마 속 인물들이 실제 모습은 괜히 친숙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예를 들면, 드라마를 보면서 흠뻑 빠졌던 페드로 파스칼이 연기한 하비에르 페냐와 [나르코스] 시즌 3에서 칼리 카르텔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던 보안팀장 호르헤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는 드라마를 봤기에 더 흥미로웠다.

 

 

 

[중독의 게임]은 잘 알려진 콜롬비아 카르텔로 포문을 열어 시대와 대륙을 넘나들며 마약왕들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극적인 스토리와 명성(?) 때문인지 영화나 드라마에도 등장했으며 파블로 에스코바르 못지않게 무자비하고 난폭했다. 그들은 대체로 마약 제국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살인과 폭력을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범죄자 중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끝판왕이었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다면,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마약왕들은 또 누가 있을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7년작 [아메리칸 갱스터]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60-70년대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악명을 떨쳤던 ‘프랭크 루카스와 컨트리 보이들’, 영화 [애니멀 킹덤]의 모티브가 된 호주 멜버른의 범죄자 가족인 ‘어머니 캐스와 가학적인 아들들’, 그리고 넷플릭스에도 관련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있는 ‘터널 킹 엘 차포’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니 관련 작품을 봤다면 비교하며 보는 재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를 평범하게 나열한 다큐멘터리를 그다지 권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 범죄 다큐멘터리를 찾는 것은 평범한 우리와 다른 그들의 심연을 들여도 보고 싶기 때문이라 생각하기에 겉핥기 식에 그친 [중독의 게임]은 여러모로 아쉽다. 아니 나의 게으른 접근을 탓해야 하는 걸까. 실제 범죄자들에 관한 잡다한 정보를 쌓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중독의 게임]을 보기 전, 내 시간은 소중하고 넷플릭스에 실제 범죄를 보다 깊이 있는 시선으로 파고드는 좋은 작품이 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