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을 선사한다. 특히 사람들을 놀라게 한 범죄 실화는 원초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며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극악무도한 범죄는 때때로 고통스러운 인내와 소름 끼치는 섬뜩함을 안기기도 하지만, TV라는 매체를 통해 안전하면서도 가깝게 접근할 수 있어 감상의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다. 넷플릭스는 명확한 결말이 없어 더욱 극적인 범죄 실화를 여러 에피소드로 재단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선보이며 대중의 열망을 자극한다. 앤솔로지 형식이라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시리즈부터 특정 사건을 뚝심 있게 파고드는 시리즈까지, 폭넓게 소개해본다.

 

 

 

리얼 디텍티브(Real Detective)
이미지: 넷플릭스

[크리미널 마인드]처럼 난해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물을 좋아한다면, [리얼 디텍티브]는 충분히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범죄 다큐 시리즈다. 구성은 단순하다. 매 에피소드마다 실제 형사들이 인터뷰어로 나서 형사 생활을 하는 동안 유난히도 무거운 잔상을 남겼던 사건을 소개하고, 이를 언젠가 미드에서 봤을 법한 배우들이 진지한 드라마로 재현한다. 실제 형사가 출연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범죄 드라마와 유사하지만, 사건을 접했던 형사들이 직접 전하는 고통과 어려움이 진짜라는 점에서 드라마와 다른 감상을 전한다. 총 두 시즌이 공개됐으며, 시즌당 43분 분량의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중독된 도시(Dope)
이미지: 넷플릭스

21세기에도 마약과의 전쟁은 여전하다. [<중독된 도시]는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도시를 이동하며 범죄자와 중독자, 이를 막으려는 경찰의 모습을 다각도로 담아낸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나르코스]가 마약 조직의 최상위 계층을 소탕하려는 전쟁을 보여준다면, [중독된 도시]는 마약의 폐해로 물든 거리의 전쟁에 밀착한다. 각각의 시선에서 움직이는 카메라는 마약이 어떻게 유통되고 사람들을 중독의 나락에 빠뜨리며, 이를 막으려는 경찰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총 두 시즌이 공개됐으며, 시즌당 45분 분량의 4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검은 돈(Dirty Money)
이미지: 넷플릭스

시사 경제에 관심이 많다면 [검은 돈]은 지나칠 수 없는 매혹적인 다큐시리즈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포문을 열어 경제 분야에 깊숙이 자리한 탐욕과 부패를 고발 형식으로 담아낸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앞세워 기만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자행하는 거대 기업과 기업인들, 이를 눈감아주는 정부의 부도덕함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총 6개의 흥미로운 주제를 담아낸 [검은 돈]은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탐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위대한 거짓말쟁이”라는 부제로 트럼프 제국의 날조된 신화를 해부하며, 한국 기업이 깜짝 등장한다.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Conversations with a Killer: The Ted Bundy Tapes)
이미지: 넷플릭스

1970년대 미국 여성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의 뒤틀린 행적과 내면을 탐구한다. 1980년 옥중에서 진행된 100시간에 달하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시애틀에서 저질렀던 첫 사건부터 1978년 두 번째 체포 이후 사형 집행이 확정된 재판에 이르는 여정을 4부작으로 담아냈다. 테드 번디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잔혹한 살인마의 이상심리는 흔히 연쇄살인범의 유형에서 벗어난 범죄자로 소개되는 이 인물이 가진 반사회적인 인격과 여성 혐오, 기만적인 성향을 똑바로 직시하게 해 준다. 이 시리즈를 연출한 조 벌링거는 여자친구의 시점에서 본 테드 번디 영화 [Extremely Wicked, Shockingly Evil and Vile]을 만들었으며,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넷플릭스가 배급권을 획득했다.

 

 

 

이노센트 맨(The Innocent Man)
이미지: 넷플릭스

법정 소설로 유명한 존 그리샴이 유일하게 실화를 토대로 쓴 소설 『이노센트 맨』을 6부작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했다. 넷플릭스의 가장 논쟁적인 다큐멘터리 [살인자 만들기]처럼 매우 의문스러운 수사 과정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을 다룬다. 1982년과 1984년 작은 마을에서 2년 간격으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역추적하며 수사과정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되짚는다. 첫 번째 사건은 DNA 검사를 통해 12년 만에 판결이 뒤집어졌고, 두 번째 사건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무죄를 호소하며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사건의 진실은 수사 체계와 집행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기 충분하다.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살인자 만들기]가 버겁다면, 소프트한 버전의 [이노센트 맨]으로 먼저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성역의 범죄(Examen de Conciencia)
이미지: 넷플릭스

전체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종교의 어두운 이면을 추적한다. [성역의 범죄]는 수십 년간 은폐됐던 사제들의 아동 성폭력을 중년이 된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고발한다. 3부작으로 짧게 구성됐지만, 마침내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톨릭 내에 만연한 소아성애는 직접적인 재연 대신 인터뷰를 통해 드러남에도 추악하고 끔찍한 악행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교구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처럼 사건을 알고도 진실을 묵인하고 은폐했으며, 심지어 가해자 중 한 명은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궤변 같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스페인의 가톨릭 시스템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천사들의 증언(The Keepers)
이미지: 넷플릭스

아직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은 수녀 캐시 세스닉의 죽음을 추적하는 7부작 다큐멘터리. 1969년 11월,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던 젊은 수녀 캐스 세스닉이 실종된 후 두 달 만에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으며, 같은 시기 조이스 말레츠키라는 젊은 여성도 살해됐다. [천사들의 증언]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사건의 진실과 여기에 얽힌 어둡고 추악한 진실을 파헤친다. 안타까운 죽음 뒤에는 순진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신부의 끔찍한 성폭력이 자리한다.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생존자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며 조직적으로 무시되고 은폐된 참혹한 진실을 고백한다. 진상 규명과 예방을 위한 생존자들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Wild Wild Country)
이미지: 넷플릭스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리건의 작은 마을에 붉은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서구의 부유한 지성인을 사로잡은 오쇼 라즈니쉬의 공동체가 그들의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실현하고자 발을 내딛으면서 좁은 지역사회는 공분에 휩싸인다. 지난해 공개된 6부작 다큐멘터리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는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방인 영적 지도자와 추종자들, 지역 사회 간의 대립과 내분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담아낸다. 부흥기를 맞는 동시에 안팎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과정에는 라즈니쉬의 비서이자 공동체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문제적 인물 마 아난드 쉴라가 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흥미로운 인물의 거침없는 행동은 뜻밖의 감정을 안겨줄 것이다. 최근 인도 출신 배우 프리양카 초프라가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제작하기로 했다.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나(Evil Genius: The True Story of America’s Most Diabolical Bank Heist)
이미지: 넷플릭스

유별나게 긴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2003년 미국에서 발생한 피자 배달부의 죽음을 다룬다. 뒤틀린 내면을 다루는 이야기를 즐겨본다 해도 초반부터 멘탈을 산산조각내는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범죄 전문가들조차 기이하다고 일컫는 사건에 자리한 사악함은 상상을 초월하며 호흡곤란을 유발할지 모른다. [이블 지니어스]는 뉴스 자료와 용의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정황을 4부작으로 재구성하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섬뜩하고 기괴한 사건을 추적한다. 왠만한 영화나 드라마 못지않게 강렬한 흡인력으로 휘몰아치며, 무섭고 음침한 사건에 빠져들게 한다.

 

 

 

계단: 아내가 죽었다(The Staircase)
이미지: 넷플릭스

2001년 12월 9일, 캐슬린 피터슨이 계단 밑에서 사체로 발견되고 남편 마이클 피터슨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다큐멘터리는 용의자로 지목된 후 2017년 유죄협상으로 마무리하기까지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지속된 재판 과정을 13부작이라는 긴 호흡으로 담아낸다.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다큐멘터리 감독 장 자비에 드 레스트라드가 연출을 맡아 완성한 최초의 시리즈에 두 차례 추가 제작한 에피소드 5편을 더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기나긴 법정 공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마이클 피터슨의 결백을 끊임없이 암시하며, 승소에 집착하는 법 집행기관의 모습을 비추고 공정성이 훼손된 사법제도의 결함을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