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배후에는 비밀리에 은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있을까?

뚜렷한 실체가 없는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세계 주요 정치, 경제를 장악하고, 시대나 정권이 바뀌어도 초월적인 기득권을 유지한다. 이 같은 음모론에 귀를 열어두고 있다면,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단체와 그림자 정부, 딥 스테이트 같은 용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혼란을 부추기는 허무맹랑하고 과장된 논리 같아 보여도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각종 가설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호기심을 사로잡아왔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됐다. 지난 9일(금) 넷플릭스에 공개된 5부작 다큐멘터리 [더 패밀리]다.

이미지: 넷플릭스

수상한 기독교 모임

[더 패밀리]는 제프 샬렛이 쓴 동명 논픽션을 토대로 단순한 음모론을 넘어 수십 년간 베일에 싸인 채 워싱턴 D.C.에 깊숙이 침투한 비영리 기독교 단체의 실체를 추적한다. 펠로십(the Fellowship Foundation) 혹은 패밀리(The Family)라 불리는 종교 모임의 목표는 뚜렷하다.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 다만 그 과정이 보통의 종교 단체와 다르다. 그들의 영적인 목표는 오직 위로 향한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인맥을 쌓는 권력 네트워킹을 통해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한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의 지도층이 참석하는 미국의 국가조찬기도회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다.

선택받은 자, 늑대의 왕

워싱턴에서 가장 힘 있는 종교 집단이 되게 한 핵심 동력은 극단적인 엘리트주의다. 양 떼와 늑대의 이야기를 단적인 예로 들면, 관심 가져야 할 대상은 양 떼가 아닌 늑대다. 늑대를 다스리는 법을 알면 양 떼를 통솔하는 건 알아서 해결되기에, 양 떼를 걱정할 시간에 늑대의 왕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 권력 지향적인 모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들은 사악한 발상에 따라 일부 선택된 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등의 독재자의 리더십에 주목하기도 한다.

이들의 무시무시한 논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선택받는 소수 정예 리더십을 추구하는 그들에게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로, 밧세바와 불륜에 빠지고 살인을 교사한 다윗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하느님에게 선택받아 왕좌를 지킨 인물로 평가된다. 선택이란 소명 앞에 과정의 윤리적인 문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선택받은 자가 여성을 폭행하는 범죄를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모임에서 여성은 반려자가 되어 봉사하는 역할에 한정될 뿐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패밀리를 움직이는 힘

작가 제프 샬렛은 워싱턴에 뿌리를 두고 세계 전반에 영향력을 뻗어나가는, 이 믿을 수 없는 종교 단체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그의 청년 시절 경험담이 대거 반영된 1화는 [더 패밀리]가 다루고자 할 메시지를 함축해서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옛 친구의 소개로 청년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부조리한 감정과 의문은 시청자들이 실체 없는 권력에 가깝게 다가서게 이끌며 그들의 실질적인 지도자 더그 코를 소개하기에 이른다

더그 코는 ‘패밀리’로 아우르는 비영리 기독교 단체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조직과 구성원이 있는 게 아닌데도 중앙 권력에 뿌리를 내리게 한 핵심 인물이다. 냉전시대의 불안과 위기를 이용해 소수 정예 기도회를 설립한 에이브러헴 버레이드 사후, 조직을 해체하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전략으로 은밀하나 단단하게 결속된 모임으로 혁신하고, 그 자신도 권력의 배후라는 이미지를 배제하며 조직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비밀스럽고 모호한, 그래서 치명적인

겉으로 드러나는 뚜렷한 실체가 없다는 건 제작진의 입장에서 약점이 된다. [더 패밀리]는 5부작을 할애하며 은밀하게 검은 욕망을 실현하는 종교 단체를 탐구하나 방대한 자료가 하나로 귀결되는 응집력은 때때로 부족하다. 제프 샬렛뿐 아니라 모임의 전현직 구성원과 외부인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영상자료를 활용하지만, 어느 순간이면 이야기는 장황하게 반복되고 날카롭게 파고들어야 할 시점은 흐릿해진다.

그럼에도 궁극적인 의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트럼프가 집권한 현재의 미국 정치로 안착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의 정치 관련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트럼프 정권의 미국을 염려하는 시선으로 보듯이 [더 패밀리] 역시 극단적인 엘리트주의와 보수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을 가진 기독교 모임이 현재 향해 있는 곳을 비춘다. 여성, 성 소수자,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그들만의 방식으로 종교를 해석하는 무리가 더 강력하고 거침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안긴 낙태금지법이 하루아침에 발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득 가상의 현실을 다룬 [핸드메이즈 테일]이 떠오른다. 2017년 트럼프 시대가 시작됐을 때, 극단적인 기독교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 백인 남성 집단이 미국을 지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섬뜩한 충격이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어두운 이야기를 보는 내내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위안했지만, 독재자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만나 교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이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지 어떻게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