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소 고지 Hacksaw Ridge, 압도적인 전투신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

 

By. Jacinta

 

 

<이미지: 판씨네마>

 

영화 내용이 어땠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폭풍 같은 감동으로 남아있는 영화 <브레이브하트> 이후 멜 깁슨의 연출작을 본 적이 없지만 (사실 내겐 시도도 할 수 없는 소재ㅠㅠ) 정말 오랜만에 다시 감독으로 나서 작품성도 인정받고 앤드류 가필드에겐 배우로서 필모도 넓혀줬다는 <핵소 고지(Hacksaw Ridge)>, 개봉 전부터 궁금하고 궁금했다. 특히나 전투신이 매우 궁금했던 영화 <핵소 고지>를 지난 주말 CGV에서 보고 이제야 짧은 감상을 남겨본다.
일단 시작에 앞서 멜 깁슨이 이를 악물고 만들었구나~ 강한 집념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장인정신으로 연출한 전투신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볼 의사가 있다면 꼭꼭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하길 권한다. (감상에 방해되는 스포가 있을지도… -.-)

 

 

<이미지: 판씨네마>

 

전투신은 볼만하지만 전투신이 나오기까지 영화의 전개는 평면적이다.
비폭력주의자가 되게 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청년이 된 후 여느 영화처럼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순수한 구애로 여인의 사랑을 쟁취한 순수남 데스몬드, 그리고 비폭력주의자면서도 자발적인 입대를 선택하기까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익숙한 전개 방식으로 펼쳐진다. 앤드류 가필드는 순박한 잘생김을 연기하고 테레사 팔머는 새롭지도 않은 첫사랑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진부하지만 선남선녀 배우들이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나오니 그럭저럭 볼만하다.
다만 데스몬드가 자발적 입대를 선택하는 동기가 좀 더 부각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첫사랑의 행복에 빠져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입대를 선언하는 모습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가 그의 신념과 상충될 수 있는 입대를 지원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조금만 곁들였어도 공감되지 않았을까.

 

 

<이미지: 판씨네마>

 

첫사랑의 초반부를 지난 영화는 데스몬드가 입대한 부대에서의 갈등이 부각되는 짧은 2부가 시작된다. 더불어 데스몬드가 가진 신념에 대한 나의 고민도 시작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데스몬드의 훈련소 생활은 뻔히 예상할 수 있듯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어도 총을 사용하는 제식 훈련을 거부하는 데스몬드를 두고 상관은 상관대로, 동료는 동료대로 당황스럽다. 곧 악명 높은 전투에 나가야 할 대원들을 군기 바짝 들도록 교육해도 모자랄 판국에 제식훈련을 거부하는 데스몬드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존재인지 의문스럽다.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르는 진짜 전투에서 아무리 의무병이래도 총을 거부하는 부하와 동료는 오히려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데스몬드와 주변인들은 당연히 격한 갈등을 겪으며 자원입대한 부대에서 군사재판의 위기까지 가져온다. 계급과 명령체계가 뚜렷한 세계에서 데스몬드의 신념은 철저한 고립과 위기로 내몰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입대를 신청(진주만 공격 이후 시간적 배경)하는 상황을 모른척할 수 없던 데스몬드의 이유가 전달되기도 한다.
데스몬드는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전쟁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영화를 보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던 부분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선택할 가치가 있고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그때의 상황을 유추해보면 누군가에겐 그 신념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참 묘하게도 이 부분에서 드러나는 잔인함이 없음에도 심리적인 압박감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를 지지할 수도 없으며, 심정적으로 양쪽 다 이해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대규모 전투신이 나오기 전 한차례 고통으로 쓸고 지나간다.

 

 

<이미지: 판씨네마>

 

심리적인 고통을 넘어 드디어 오키나와 전투로 파병된 이들에게 펼쳐진 세상은 데스몬드의 신념을 무력하게 할 지옥의 아비규환이다. 이들이 도착하는 장소부터 전쟁의 무시무시함을 빚어낸다. 깎아지르는듯한 해안절벽을 가까스로 기어올라가면 한바탕 포격이 휩쓸고 간 처참한 생지옥이 드러난다. 포격이 쓸고 간 대지는 희뿌연한 연기가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고 적은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다. 죽은 자들로 넘치는 이곳에서 일본군이 점령한 핵소 고지의 주도권을 쟁탈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들이 오기전부터 이곳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끝나지 않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세 차례쯤 등장하는 전투신에서 가장 먼저 데스몬드와 동료들이 임한 첫 전투는 숨을 쉴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와 무력감을 선사한다.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극악무도한 폭력의 세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계속 몰아치고 몰아치는 전투 현장을 이렇게 생생한 사실감으로 전달한 영화는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놀라운 장면들이 펼쳐진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날아들어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극한의 긴장이 전투신 내내 파고든다. 전투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도 지형적 불리함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이미지: 판씨네마>

 

무시무시한 전투가 흐르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계기, 데스몬드의 활약은 오히려 집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전투가 주는 충분한 공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먼저 체험한 극한의 두려움은 데스몬드의 신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감동의 여운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그의 신념이 담백하게 전달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실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두지 않았던 것도 영화의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
시작은 평범했지만 폭력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멜 깁슨의 장인장신을 느꼈고, 특히나 놀라운 촬영(위대한 개츠비, 300: 제국의 부활, 워크래프트 촬영을 맡은 시몬 더건이 맡음)에 감탄하며 마지막 거창하지 않아도 소박한 신념으로 놀라운 감동을 안겨준 데스몬드의 실화에 진정 감탄하게 되었다.
끝으로 이제 앤드류 가필드는 더이상 스파이더맨으로 기억하지 않아도 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