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 곁을 떠난 음악가의 삶을 담은 영화

 

By. Jacinta

 

4월의 시작부터 잔인하다.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가득한 세월호, 천부적인 재능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한 프린스, 그리고 9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의 아이콘이자 얼터너티브 록의 바이블로 추앙받는 록 밴드 ‘너바나’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커트 코베인’까지 우리를 슬프게 한 죽음.
차디찬 바다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는 1073일 만에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영원히 27살로 남은 커트 코베인이 떠난 지도 벌써 23년이 되었다. 오늘은 갑작스러운 혹은 이른 죽음으로 일찍 떠난 음악가부터 오래도록 음악 활동을 하다 떠난 음악가의 삶을 다룬 영화를 장르별로 모아봤다.

 

<이미지: 스폰지>

 

커트 코베인: 라스트 데이즈 Last Days, 2005, 구스 반 산트 & 마이클 피트

커트 코베인의 삶과 죽음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지만 흔히 알고 있는 전기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라스트 데이즈>. 등장인물조차 커트 코베인으로 불리지 않는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커트 코베인을 연상시키는 인물로 커트 코베인이 죽기 전, 고독과 우울, 상실감에 빠져 부유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마저 너바나의 음악이 아니다. 영화에서 블레이크가 부르는 곡 ‘Death to Birth’는 ‘블레이크’ 역을 맡은 마이클 피트가 활동하는 밴드 ‘Pagoda’의 곡으로 피트가 직접 작곡한 곡이다.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순간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이야기 흐름도 일관되지 않고 뒤죽박죽 혼재되었다. 너무도 유명한 음악가의 죽음 직전을 그린 이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와 같다. 전형적인 전기영화를 기대했다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으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는 커트 코베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듯한 경험을 안긴다.

 

 

 

 

짐 모리슨: 도어즈 The Doors, 1991, 올리버 스톤 & 발 킬머

너바나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그룹이라면, 60년대 후반에는 짧은 활동기간에도 당시의 청춘 문화를 대변하는 록밴드 ‘도어즈’가 있다. 몽환적인 멜로디와 음울한 가사가 인상적인 사이키델릭 록을 선보인 도어즈는 히피 문화와 반문화에 빠진 청춘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고, 작사·작곡 및 보컬을 맡은 짐 모리슨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처럼 27세에 갑작스럽게 죽은 짐 모리슨. 생전 파격적인 행동을 일삼었던 짐 모리슨이 있던 도어즈는 누구든 영화로 담고 싶었을 것이다. <플래툰>, <7월 4일생>으로 할리우드에 자리매김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짐 모리슨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어즈를 소재로 영화를 연출하기에 이른다. 발 킬머는 놀라운 싱크로율로 짐 모리슨을 재현했고, 90년대 로맨틱 영화의 대명사 멕 라이언은 풋풋한 매력을 선보이며 모리슨의 연인 파멜라를 연기한다.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자기 파괴적인 짐 모리슨의 우울함과 기이한 행보를 한껏 드러냈던 영화는 뮤지션을 모델로 한 전기영화의 대표적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이미지: 위드시네마>

 

이안 커티스: 컨트롤 Control, 2007, 안톤 코르빈 & 샘 라일리

신스팝의 전설적인 밴드 ‘뉴 오더’의 전신, 포스트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의 짧았던 생을 담은 영화 <컨트롤>은 안톤 코르빈 감독이 특유의 건조한 화법으로 23세의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이안 커티스의 극적인 삶을 흑백 화면으로 옮긴 작품이다. 19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고 천재적인 재능으로 고향인 맨체스터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래의 삶에서 멀어지고 그를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간질까지 더해져 결국 미국 진출을 앞두고 죽음을 택한 뮤지션(이안 커티스)의 삶을 그의 음울한 노래처럼 어두운 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냈다. 이 작품으로 첫 장편영화에 도전한 안톤 코르빈 감독과 샘 라일리는 런던 비평가 협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

 

투팍 & 노토리어스 B.I.G: 노토리어스 Notorious, 2009

지금은 힙합의 흐름을 동서로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지만, 90년대 만해도 힙합은 동서로 분리되었고, 그 중심에 서부 힙합의 대부 ‘투팍’과 동부 힙합의 전설 ‘노토리어스 B.I.G’가 대표적인 뮤지션으로 힙합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90년대 힙합 음악을 이끈 전설적인 두 뮤지션은 짧은 활동기간과 총격 사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영화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먼저 2009년 조지 틸만 주니어 감독이 연출한 <노토리어스>는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비기’의 유년시절부터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힙합계의 양대 산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성공한 뮤지션으로서 겪는 남모를 아픔과 고뇌를 담아냈다.
영화에서 비기 스몰즈를 연기한 ‘자말 우라드’는 투팍의 삶을 다룬 영화 <올 아이즈 온 미>에도 출연해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드미트리 쉽 주니어’가 투팍으로 분한 <올 아이즈 온 미>는 그가 살아있다면 46번째 생일이 될 올해 6월 16일 개봉할 예정이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쳇 베이커: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2015, 에단 호크

지난해 재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거장 뮤지션의 삶을 그린 영화가 개봉했다. 먼저 선보인 영화는 낭만적인 감성의 트럼펫 연주로 흑인 뮤지션이 중심이었던 재즈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쳇 베이커’의 삶을 다룬 <본 투 비 블루>이다. 영화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지만 실화를 쫓아가기보다 그의 음악과 삶에 영감을 받은 허구의 이야기에 가깝다. 쳇 베이커가 뜻밖의 사건으로 트럼펫을 연주할 수 없었던 암울한 시기, 196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가상의 연인의 도움으로 그가 다시 재즈 연주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평소 쳇 베이커를 좋아했다는 ‘에단 호크’는 그의 연기 생애에서 손꼽히는 인생 연기를 선보이며 애틋한 감성을 더했다. 생전 마약중독과 여성 편력 등으로 사생활 논란은 많았지만 재즈를 향한 열정만큼은 남달랐던 쳇 베이커를 만날 수 있다.

 

 

 

<이미지: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 (주)영화사 빅>

 

마일스 데이비스: 마일스 Miles Ahead, 2015, 돈 치들

재즈란 장르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친 마일스 데이비스. 배우 ‘돈 치들’의 마일스와 재즈 사랑이 엿보이는 영화 <마일스> 역시 허구적 상상력이 결합된 작품이다. 평생 재즈를 위해 살아온 그의 인생 중 유일하게 대중 앞에서 사라진 5년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영화는 가상인물 롤링 스톤즈 기자(이완 맥그리거)를 등장시켜 그의 개인적인 삶에 다가간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도난당한 미발표곡을 되찾기 위한 모험극 같기도 하고, 아련한 사랑의 기억이 흐르는 로맨스 영화의 정서도 녹아들어 있다. 마일스에게 재즈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채 찾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뮤지션 영화 형식에서 빗겨나가 신선하기도 하다. 또한 마지막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등장하는 공연 장면은 돈 치들이 평소 얼마나 재즈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글렌 굴드: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
Thirty-Two Short Films About Glenn Gould, 1993 단편 영화

클래식 음악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고 하면, 베토벤의 삶을 그린 <불멸의 연인>과 <카핑 베토벤>, 모차르트의 인생을 담아낸 <아마데우스>를 쉽게 떠올리곤 한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들의 영화 대신, 현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글렌 굴드’의 인생을 다룬 영화를 소개한다. 총 32개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된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는 그의 대표적 음반 <골든 베르크 변주곡>을 연상시키는 묘한 영화이다. 유년시절부터 시작한 영화는 다큐와 드라마를 오가는 실험적인 형식으로 전개되며 생전 괴짜 음악가로 알려진 그의 삶과 음악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