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inta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괴물과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언어장애가 있는 여성과 실험체로 끌려온 괴생명체의 로맨스 판타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영화는 설정만 놓고 보면 [미녀와 야수]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 그렇다고 익히 알고 있는 기괴한 어둠이 넘쳐흐르는 로맨스는 아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낭만과 낙천적인 열정을 품은 아름다운 로맨스다. 그래도 감독의 영화라는 걸 상기하듯 서로에게 이끌리고 빠져드는 모습은 솔직하고 대담하며 관능적이다. 흔하디흔한 로맨스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황홀함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신비롭고 몽환적인 수면 아래를 비추는 오프닝은 어느 영화보다 솔직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평온한 잠에서 깨어난 엘라이자의 하루는 순수한 욕망을 품고 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일부일 뿐이다. 물이 가득 채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있는 그대로 욕구를 소비하는 모습은 그동안 보아왔던 여주인공과 확실히 다르다. 감독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계란 뒤로 엘라이자의 매일 아침 유희를 은밀하게 드러내 보인다. 스스럼없는 엘라이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괴생명체에게 끌리는 것은 필연이란 생각도 든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가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도 로맨스의 흔한 꽃길을 걷지 않는다. 같은 언어로 교류할 수 없는 그들은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 그들을 이어주는 것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관심이다. 엘라이자는 호감을 얻기 위해 애써 호사를 부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들어와 뜨거운 물에 삶은 계란을 건네고, 이웃집 화가와 즐겨 듣는 음악을 들려준다. 이 단순한 교감으로 그들은 어떠한 편견 없이 보이는 모습 그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며 서로의 외로움을 공유한다. 또한 눈빛과 수화만이 오가는 교감이 비밀리에 행해진다는 사실은 지켜보는 이에게 아찔하고 짜릿한 긴장과 흥분을 안긴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속 두 인물은 그동안의 로맨스 주인공과 다르다. 그들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며, 황홀하고 극적인 만남의 순간도 없다. (그들의 첫 만남은 설렘보다 긴장에 가깝다) 그들은 사회 시스템에서 배제된, 편견의 시선이 개입되기 쉬운 약자다. 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게 서로에게 빠져들며 고전적인 낭만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이념에 따른 흑백 논리와 인종과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편견이 극심했던 냉전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무시하고 억압하는 시선이 강해질수록 그들의 사랑은 더욱 순수하게 빛나고 연대의 힘은 강해진다.

 

옛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순수한 사랑은 영상과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판타지의 구분이 모호한 빈티지 색감의 비주얼은 매혹적이며, 곳곳에 흐르는 추억의 음악은 감미롭다. 무엇보다 음악은 언어를 사용할 수 없는 두 인물의 감정을 포착하는 두 번째 언어의 역할을 한다. 후반부 엘라이자가 상상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클래식한 흑백 장면은 영화에서 영상과 음악이 발휘하는 환상적인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로맨스에서 다소 낯선 인물을 내세워 보편적인 사랑의 힘을 역설하는 영화다. 그들의 사랑은 시대의 편협함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로맨스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아마 이 마지막 장면 때문에 영화가 남긴 여운이 길게 남는 게 아닐까. 특히 감탄을 부르는 마지막 상상력은 놀라울 뿐 아니라 상처를 보듬는 따스한 시선에 입 밖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다. 상상력과 감정의 부재를 느끼고 있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전하는 마법 같은 로맨스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