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빈상자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영화에 등급을 매겨 관객의 관람을 제한하는 제도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는 관람할 수 있는 나이 이전에 영화를 미리 접하는 ‘선행학습’을 하며 성장하지만, 적어도 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 극장에게는 상당히 중요하고 또 엄격하게 지켜지는 제도다.

흔히 한국에서 18세 미만은 관람할 수 없는 ‘18세 관람가(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은 미국에서 17세 미만의 관람을 제한하는 ‘R(Restricted)’ 등급과 비교된다. 다만, 미국은 17세 미만이라고 하여도 부모나 성인이 동반하면 관람이 가능한 반면, 한국은 철없는 삼촌을 꼬셔서 어찌어찌 같이 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이미지: MPAA

그럼 미국이든 한국이든 18세만 넘으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볼 수 있을까? 정답은 그럴 수는 있지만, 기회는 심각하게 제한될 수 있다. 그 기회를 제한하는 역할을 한국에선 ‘제한상영가’ 등급이, 미국에서는 ‘NC-17(No One 17 and Under Admitted)’ 등급이 한다. NC-17등급은 1990년에 새로 생긴 등급으로 이전의 ‘X’ 등급을 대체했다.

X등급과 NC-17등급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1990년에 굳이 X등급을 NC-17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꾼 이유는 X등급 영화라고 하면, 흔히 포르노그래피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존 슐래진저의 [미드나잇 카우보이 (1969)],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1971)],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1981)],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1983)]와 같은 작품들이 X등급이라는 이유만으로 포르노그래피와 동급이 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1.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1989

 

이미지: Palace Pictures, Miramax

 

1980년대 말,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존 맥노튼의 [헨리: 연쇄 살인자의 초상 (1986)],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욕망의 낮과 밤 (1989)]과 함께 X등급 폐지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영화다. X등급을 받은 수작들은 X등급 제도를 시험에 들게 하였으며, 결국 1990년 X등급은 NC-17등급으로 대체되었다. X등급을 받은 이 영화는, 이후 DVD를 출시하면서 NC-17등급을 새로 받았다.

르네상스나 바로크의 회화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듯한 일련의 영화들로 유명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이 영화는 오감을 자극하는 듯한 미학으로 가득하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사샤 비에니 촬영에 [피아노]의 마이클 니먼의 음악이 더해지고, 영화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식은 스크린 너머로 맛과 향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또한 프란스 할스의 회화를 보는 듯하다가 어린 소년의 성가를 들으며 무대와 무대 사이를 미끄러지듯 트래킹을 하는 카메라를 따라가는 순간에는 뮤지컬이나 연극의 무대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이처럼 다양한 면에서 미학적 성취를 이룬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식욕과 성욕을 연계하며 끊임없이 먹는 만큼 끊임없이 섹스를 하는 탓에 MPAA(미국영화협회)로부터 X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남녀의 나체 전신이 자주 나온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섹스 장면은 무난한 편이다. 등급판정 이유와 상관없이 실제로 관객들을 더 불편하게 했을 장면들은 ‘도둑(마이클 갬본)’의 폭력,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메뉴였을 터였다.

 

 

 

2. 헨리밀러의 북회귀선 Henry & June 1990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NC-17등급이 생긴 이후로 NC-17등급을 최초로 부여받은 영화는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헨리밀러의 북회귀선]이었다.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함께 외설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문학으로 손꼽히며, 출간 후 자국인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금서로 묶인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의 명성에 걸맞은 대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헨리밀러의 북회귀선]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이 영화의 원제는 [Tropic of Cancer]가 아닌 [Henry & June]이며, 영화의 원작도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이 아닌 헨리 밀러의 연인이었던 아나이스 닌의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했다. 영화도 줄곧 아나이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다만, 아나이스의 일기 형식의 책 또한 헨리와의 격정적인 정사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으며, 헨리의 부인이었던 준과의 동성애 관계도 담겨 있다. 아나이스는 보수적인 은행가 남편인 휴고를 배려하여 그의 사후에나 이 책을 출간하도록 했다.

아나이스 닌은 헨리 밀러가 파리에 머물며 [북회귀선]을 집필하던 당시 헨리의 연인이자 후견인이었다. 당시 아나이스도 헨리에게도 각각 배우자가 있는 불륜 관계였지만, 둘은 문학적·성적 교감을 나누었다. 아나이스는 헨리의 ‘둘째’ 부인이었던 준과도 깊은 사이를 유지했고 이 이야기는 원작에도 담겨 있지만, 영화에는 동성애인 준과의 이야기는 크게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헨리 밀러와 아나이스 닌의 명성 덕분일까, 혹은 아나이스가 가지고 있던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그림엽서 덕분일까, 일면 필립 카우프만의 전작으로 R등급을 받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최고 수위보다 낮아 보이는 이 영화는 NC-17등급을 피할 수 없었다.

 

 

 

 

3. 악질경찰 Bad Lieutenant 1992

 

이미지: Aries Films

 

LA 다저스의 승리를 박찬호보다 간절히 원했던 뉴욕의 형사(하비 키이텔). 자신의 어린 자녀들 앞에서도 욕설을 멈추지 않는 그는 아이들이 내리자마자 차 안에서 마약을 한다. 아이들의 학교 앞에서도 그럴 수 있다면 뉴욕의 어두운 골목과 계단, 집안으로 숨어들어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할 수 밖에 없다. 섹스, 마약, 도박에 빠져 서서히 몰락해 가는 그의 모습은 범죄율이 치솟던 80년대의 뉴욕을 닮은 듯 하다.

[복수의 립스틱(1981)], [위험한 게임(1993)], [어딕션(1995)] 등 자신의 여러 영화들을 NC-17의 범주 안에 넣은 아벨 페라라 감독의 [악질경찰]은 NC-17등급을 받은 만한 이유를 골고루 갖췄다. 항상 분노한 표정의 형사는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고, 밥보다 마약을 더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기어이 자신의 남성을 자랑스럽게 노출하기도 한다. 또한 경찰이라는 지위를 악용하여 젊은 여성들 앞에서 음란행위를 하는 장면, 수녀를 성폭행하는 장면,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NC-17등급의 해당 사유는 되지 않겠지만 신성모독의 장면도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즈음은 예술영화들이 X등급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한다며 NC-17등급이 소개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고 기대는 점차 실망이 되었다. X등급처럼 NC-17등급 영화도 신문과 TV에서 광고하기 어려웠고, 상영하겠다고 나서는 극장도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당시에 너무나도 큰 시장이었던 ‘블록버스터’와 ‘할리우드 비디오’와 같은 대형 비디오대여 체인은 X등급과 마찬가지로 NC-17등급 영화를 취급하지 않았다. NC-17등급 판정은 거의 흥행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았다. NC-17등급을 포기하거나 피하기 위해 ‘Unrated’으로 개봉해도 운명은 비슷했다.

 

 

 

4. 크래쉬 Crash 1996

 

이미지: (주)스튜디오2.0

 

영화 전체가 성적 쾌락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는 어쩌면 NC-17를 받은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MPAA나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것은 전신 누드도 성행위 장면도, 혹은 아내가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와 몸을 섞는 장면도 아니었다.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난 제임스(제임스 스페이더)와 헬렌(홀리 헌터)은 큰 부상을 입으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성적 자극을 느낀다. 이후 본이라는 이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함께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재현하고, 하다못해 다시 사고를 당하는 과정을 통해 성적 쾌락의 한계를 시험하고 기계와의 교감에 나선다.

영화 [크래쉬]의 원작인 영국의 SF작가 J.G. 밸러드의 동명의 소설은 1973년 출간 직후부터 같은 이유로 큰 논란에 휩싸였다. 출간 후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관객들은 기계와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교감하는 밸러드의 뉴웨이브 SF적 발상을 여전히 부담스러워했으며, 다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그 기괴함은 여전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과연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의 관객들은 [크래쉬]를 거리감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5. 몽상가들 The Dreamers 2003

 

이미지: 오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은 여러 겹으로 영화광들을 끌어들이는 영화이다. [몽상가들] 영화 자체는 물론, 이사벨(에바 그린)과 테오(루이스 가렐)의 영화 속 영화 퀴즈들,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처럼 루브르 박물관을 달려가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 속 시네마떼끄의 독립투쟁까지 옮겨지며 영화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우면서 혁명적이었던 시대로 영화광들을 데리고 간다.

1968년 봄, 혼란에 빠진 시대와 파리의 모습은 쌍둥이 남매 이사벨과 테오에게도 그대로 남았다. 파리에 있는 부모님의 부유한 저택을 떠날 줄 모르는 남매는 영화와 모택동, 음악과 철학, 회의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마약과 섹스에 빠져 지낸다. 이들의 일상에 합류하게 된 미국인 교환학생 매튜(마이클 피트)의 당황하고 놀란 시선은 유럽보다 보수적인 미국의 시선이기도 했고, 근친상간과 동성애의 암시에 놀란 MPAA의 시선이기도 했으며, 또 30년 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관객의 시선이기도 했다.

[몽상가들]의 각본을 쓴 길버트 아데어는 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원작에서 테오와 매튜 사이의 동성애 묘사가 지나치다 생각해서 거의 덜어냈다며 마치 청소년 성장영화를 만든 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결론은 이 영화도 NC-17등급을 받았다. 사실, 원작에 비해 많이 순화되어 덜 파격적이고 덜 충격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완충지대인 미국인이 극을 이끌어가고 있음에도 미국의 MPAA가 유럽의 성에 대한 인식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듯하다.

 

 

 

6. 셰임 Shame, 2011

 

이미지: ㈜영화사 백두대간

 

부유한 뉴요커의 일상이 담긴 [셰임]은 [악질경찰]이나 [크래쉬]에 비한다면, 극단적이라거나 자극적이라고 할 수 없다. 남녀 주인공인 마이클 패스빈더와 캐리 멀리건의 전면 누드 장면도 그들이 너무도 편안하게 있기에 오히려 의식하는 순간이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야동, 자위행위, 원나잇스탠드, 집단성행위, 콜걸, 음란채팅 등 종합세트를 개봉한 듯한 브랜든(마이클 패스빈더)의 다채로운 성생활이 MPAA에게는 부담이었나 보다.

하지만 MPAA가 부유한 뉴욕의 히피 브랜든의 분주한 성생활보다 그를 더 잠식하고 있는 공허한 일상과 차가운 공기에 집중했다면 NC-17등급을 결정하기 전에 고민했을 것이다. 아카데미위원회가 스티브 맥퀸 감독의 다음 영화인 [노예 12년]를 이 영화보다 훨씬 더 좋아한 것도 비슷한 방식으로 [셰임]의 본질을 보지 못한 이유에서였다.

 

 

 

7. 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이미지: 판씨네마㈜

 

NC-17등급이 등장한 이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누드나 성행위 묘사에 대한 관객들의 포용력은 확실히 예전보다 커졌다. 이에는 아저씨의 엉덩이가 반짝거렸던 [NYPD블루(1993~2005)]나 성형외과 의사들의 여성편력과 성생활을 확인할 수 있었던 [닙턱(2003~2010)] 등, 안방에서 방영된 TV 드라마들의 공헌도 컸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MPAA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며 특히 이중잣대가 드러나는 목록들이 유지되고 있다. MPAA는 전통적으로 목이 잘려나가는 폭력보다 살색이 드러나는 나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성보다 남성의 누드를 더 가리고 싶어 하고, 같은 성행위라도 동성 간의 성행위 묘사를 더 경계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최근에는 물론 역사상 가장 세밀하게 레즈비언의 성행위가 묘사된 영화다. 가짜 성기까지 동원되어 촬영된 장면들은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동시에 세세하면서도 노골적이다. 더구나 동성애인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이 MPAA를 당황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영화에 MPAA는 NC-17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15세 소녀인 아델(아델 엑사르쇼폴로스)이 남자친구 토마스를 거쳐 미대생 엠마(레이 세아두)를 만나 사랑하고 관계하고 또 이별하고 아파하면서 자아를 탐구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은 성은 물론 다양한 면에서 혼란과 고민, 실험과 실패를 겪는 우리 모두의 성장기를 닮아 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동성애가 특별히 다른 사랑이 아닌 여느 사랑과 똑같은 모습과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지: 스폰지

 

2000년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과 이안 감독의 [색, 계]에 이어 2010년대의 [셰임]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같은 영화의 예술적·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NC-17등급을 애초에 기피하려는 제작사, 배급사, 극장의 기본 입장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몽상가들]과 [셰임]을 미국 내에서 배급했던 폭스서치라이트의 회장인 스티브 길루라는 ‘NC-17등급은 낙인이 아니라 영광의 배지’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몽상가들]과 [셰임] 같은 영화들이 NC-17등급에 명예를 가져다주어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하지만, NC-17등급이 소개된 이후 거의 3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실패한’ NC-17등급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럼 로저 에버트의 의견처럼 등급을 더 세분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까? 혹은 R등급과 NC-17등급을 통합해야 할까? 아니면 관객들이 NC-17등급 영화를 더 열심히 봐줘야 할까? 분명한 것은 예술과 외설, 폭력이나 마약 묘사의 불가피함과 지나침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