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 속 의상은 캐릭터와 작품 전체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야기의 전개 방향이나 캐릭터의 감정을 드러내는 작은 디테일이 작품의 퀄리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캐릭터의 심경이나 환경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좋은 장치다. 최근 해외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의 의상을 통해 이들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전하려는 시도가 눈길을 끈다. 각 시리즈를 담당한 의상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의상과 캐릭터 변화를 어떻게 연결했는지 살펴본다.

왕좌의 게임 –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이미지: HBO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대너리스는 처한 환경에 따라 의상이 바뀌었다.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에선 칼 드로고와 강제로 혼인해야 할 땐 연약하고 주눅 든 공주 이미지를 보여줄 드레스를 입었다. 도트라키를 직접 이끌 땐 칼 드로고를 기리기 위해 ‘도트라키 블루’로 만든 드레스와 가죽 바지와 부츠로 바뀐다. 미린을 정복하고 대너리스 ‘스톰본’으로 거듭나며 점점 자신의 뿌리인 타르가르옌에 가까운 의상을 선보인다. 의상 감독 미셸 클랩튼은 “대너리스가 북쪽으로 진군할수록 의상 실루엣과 컬러가 점점 타르가르옌 가문에 가까워진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시즌, 용을 다루는 타르가르옌 가문의 후예답게 드래곤 비늘이 무늬로 새겨진 검은 가죽옷을 입은 대너리스는 킹스 랜딩을 불바다로 만들며 ‘매드 퀸’으로 거듭난다.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즐 – 미지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즐]의 밋지는 드라마 속 최고의 패셔니스타일 것이다. 1950년대 부유한 유대인 중산층 출신답게 코트도 드레스도 시대 최고의 패션을 반영한다. 밋지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도전하면서 입은 블랙 칵테일 드레스는 그에게 일종의 ‘유니폼’이다. 평소엔 가볍고 컬러풀하며 플라워 패턴 등 큼직하고 예쁜 패턴이 있는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시즌 2 ‘우리는 캣스킬로 간다!’에선 직업 코미디언 미세스 메이즐과 평범한 주부 밋지의 삶을 의상의 과감한 대조로 표현한다. 의상 감독 도나 자코우스카는 밋지의 여름처럼 시원하고 컬러풀한 드레스는 “앞으로 직접 코미디언이 될 밋지가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일탈을 위한 의상”이라 설명했다.

글로우: 레슬링 여인천하 – 데비

이미지: 넷플릭스

[글로우: 레슬링 여인천하]의 데비는 자신의 친구와 바람피운 남편과 이혼하고 싱글맘이 되지만, ‘글로우’의 주인공으로서 남편과 아들에게 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맛본다. 의상 감독 베스 모건은 1980년대 패션 트렌드를 반영한 데비의 옷을 통해 변화를 보여주려 했다. 시즌 2, 취한 데비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걸 기억했을 때, 데비는 짧은 탱크톱에 오버사이즈 스웨터 등 정말 잡히는 대로 입은 듯한 패션으로 바닥을 친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 레슬링 세계에 입문 후 자신감을 찾은 데비는 사업가로 변신한다. 자신이 다른 일에도 능력이 있음을 깨달은 그는 핑크색으로 통일한 팬츠슈트와 모자를 착용한다. 모건은 이에 대해 “데비가 자신의 몸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는 법을 배운 것”이라 설명했다.

포즈 – 엘렉트라

이미지: FX

[포즈]는 1980년대 뉴욕 볼룸 신이 배경인 만큼 의상이 전부다. 의상 감독 루 이리치와 애나루시아 맥고티는 볼룸 패션으로 특정 시대와 특정 문화를, 젠더를 특정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재현하며 사회경제적 차이까지 드러내야 했다. [포즈]의 의상은 모두 과하면서도 아름답지만, 특히 신상에 큰 변화를 겪는 엘렉트라의 성장은 드라마틱한 패션 변화로 잘 드러난다. 첫 번째 시즌 초반, 엘렉트라는 볼룸에서 입는 드레스와 착용하는 소품에 거금을 들이며 볼룸 신의 퀴어들과 다른 처지임을 과시한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뒤엔 평범한 재킷, 팬츠, 치마를 입는다. 평범한 옷을 입고 힘을 뺏긴 듯한 엘렉트라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다. 역경을 딛고 볼룸에 복귀한 엘렉트라는 예전만큼 화려하거나 비싸진 않지만, 자신을 드러낼 의상으로 무도회장을 호령한다.

엘렉트라뿐 아니라 이 시대 무도회장에 왔던 LGBTQ 대다수는 비싼 옷을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리치와 맥코티의 다른 과제는 볼룸 위 여왕들이 구세군에 기부된 옷 가운데서 자신의 패션을 구축했듯 시대적 특성 가득한 옷을 무도회장 의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때 볼룸 문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조언을 받았다. 컨설턴트들이 “그때 느낌 그대로다!”라고 찬사를 보냈을 만큼 두 사람이 만든 의상은 볼룸 문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호평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