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베니스 영화제와 텔루라이드 영화제가 개막했다. 올해 두 영화제 모두 개막 전부터 국내 영화팬의 이목을 사로잡았는데,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최초로 슈퍼 히어로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하고, 텔루라이드 영화제 라인업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포함되어 북미 지역에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내년 아카데미 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개막 전부터 다양한 화젯거리가 있었던 두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는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이번 주 할리우드 말말말에서 살펴보자.

조커, 정의하기 힘든 인물로 그리려 노력했다 -호아킨 피닉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에 캐스팅됐을 당시 전 세계가 들썩였다. ‘믿고 보는 배우’와 DC 코믹스를 대표하는 빌런 ‘조커’라니,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베니스 영화제에 공개된 [조커]는 8분 간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관객 모두 호아킨 피닉스의 퍼포먼스에 찬사를 보냈다. 그렇다면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 플렉(a.k.a 조커)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에 임했을까? 호아킨 피닉스는 “아서가 한마디로 단정 짓기 힘든 인물이기에 이끌렸다”라며 운을 뗀 뒤, “마지막 날까지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아서를 연기할 때 ‘특정한 성격’을 가진 ‘특정한 인물’이라 규정하면서도 정의하기 힘든 인물로 묘사할 창작적 자유도 필요했다. 심리학자가 규정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라며 아서 플렉의 광기와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뒤이어 [다크 나이트] 등 다른 작품 속 조커를 참고했냐는 질문에는 “다른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다. 이 작품의 조커는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창조물이다”라고 답했는데, 그가 연기한 조커를 보기까지 한 달 이상 남았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출처: variety

과거는 과거일 뿐, 영화는 온전히 영화로만 평가받아야 한다 – 루카 바바레스치, ‘나는 고발한다’ 제작자


이미지: Gaumont

로만 폴란스키 신작 [나는 고발한다]가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순간부터 영화인들 사이에서 뜨거운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러나 영화제 상영을 앞두고는 예상외로 잠잠했는데,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막식 당시 심사위원장 루크레시아 마르텔이 “폴란스키에게 환영이나 축하의 인사를 건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베니스에서 상영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라며 입장을 밝혔던 정도였다. 이에 [나는 고발한다] 제작자 루카 바바레스치는 마르텔의 발언에 “경쟁부문 출품을 철회해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고발한다]는 과거에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영화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판단은 대중이 직접 할 것이다”라며 로만 폴란스키의 과거 아동 성범죄 사실을 떠나 영화는 작품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variety

아녜스 바르다는 ‘영화의 신’이었다 – 마틴 스콜세지

올해 텔루라이드 영화제는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회고전을 개최했다. 바르다의 두 자녀와 그를 존경한 많은 사람이 참석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 또한 참석해 고인을 추억했다. 1977년 처음 만난 바르다는 “영화의 신” 중 하나였으며 언제나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놀라운 존재”였다. 바르다는 스콜세지를 응원하지만, 그의 작품을 언제나 칭찬하지는 않았다. 스콜세지는 “아녜스에게 [쿤둔] 러프컷 버전을 보여줬는데 좋아하지 않았어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시사회에 왔는데, 영화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바르다는 [아이리시맨] 촬영장도 방문했는데,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 30분이란 걸 알고는 “그러면 안 돼요! 너무 버거울 거예요!”라고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스콜세지는 넷플릭스와 모험 같은 일에 도전하는 것은 바르다에게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녜스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규칙 따윈 없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출처: hollywoodreporter

권력을 가진 자들이 힘을 뺏기는 걸 좋아할 리 없다 –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미지: Amazon Studios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전기영화 [시버그]를 선보였다. 진 시버그는 숏컷 열풍을 불러온 패션 아이콘으로 알려졌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셀러브리티이기도 했다. 블랙 팬서 운동을 이끈 활동가 하킴 자말과의 관계 때문에 FBI의 감시를 받았고, 블랙 팬서 운동의 명성을 해하려는 음모의 희생양이 되었다. 스튜어트 또한 시버그처럼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 공개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스튜어트는 시버그의 삶과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과 비슷하며,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트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극단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억압적인 에너지가 우리 시대 정치의 근간이 되었다.”라고 지적하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을 빼앗기는 걸 좋아할 리가 없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를 쓰러뜨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지금 이 시대의 정치를 통렬히 비판했다.

출처: deadline

과거 혐의에 대한 무지한 발언, 진심으로 사과한다 – 네이트 파커

이미지: Tiny Giant Entertainment, Sterling Light Productions

네이트 파커가 [국가의 탄생]으로 201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후, 그가 대학생 때 데이트 강간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난 것과 피해자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할리우드 차세대 필름메이커로 주목받았던 그는 하루아침에 모두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그렇게 3년 동안 은둔하며 다음 작품을 만들었다. 신작 [아메리칸 스킨]이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파커는 제작자 스파이크 리와 함께 영화제에 참석했고, 공식 석상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3년 전엔 과거 상황의 실체에 대해 무지했다. 이후 많이 생각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내 반응에 상처받은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분들께 사과드린다.”라며 말했다. 파커가 과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베니스 영화제가 성범죄 혐의가 제기된 영화인들의 복귀를 돕는다는 비판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출처: var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