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남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감독이라 할지라도, 단 한 번의 실패로 오랜 세월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곳이 할리우드이니 말이다. 안타깝지만 과거의 영광조차 이들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경우도 예상외로 상당히 많다. 유명한, 혹은 한때 유명했던 연출자들의 영화 인생에 크나큰 오점을 남긴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1. 배트맨 앤 로빈 – 조엘 슈마허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로튼토마토: 평단 11% / 관객 16%
메타스코어: 28
북미최종: $107,325,195
전세계최종: $238,207,122
제작비: $125,000,000

[배트맨 앤 로빈]은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조엘 슈마허의 감독 경력에 엄청난 타격을 준 작품이다. 당시 조엘 슈마허는 [타임 투 킬], [폴링 다운]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비주얼리스트라 호평받는 감독이었으나,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 앤 로빈]이 연이어 혹평을 면치 못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그나마 흥행은 했던 [배트맨 포에버]와 달리 후속작은 북미에서 제작비 1억 2,500만 달러 회수조차 실패하면서 말그대로 ‘망작’ 평가를 받았다. 캐릭터 설정은 원작과 다를지언정 원작처럼 어둡고 진지한 영화를 원했던 조엘 슈마허와 전작에 이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배트맨] 영화를 바랐던 워너브러더스 사이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고.

2. 갱스터 러버 – 마틴 브레스트

이미지: Sony Pictures Releasing

로튼토마토: 평단 6% / 관객 13%
메타스코어: 18
북미최종: $6,087,542
전세계최종: $7,266,209
제작비: $54,000,000

[갱스터 러버]는 ‘최악의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 ‘당대 최악의 영화’를 꼽을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조직폭력배와 냉혹한 암살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여인의 향기]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평가와 흥행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제작비 5,400만 달러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벌어들인 금액이 고작 726만 달러, 이정도면 말 다 했다. [갱스터 러버]의 실패로 당시 ‘베니퍼’ 커플이라 불리며 열애 중이었던 벤 애플렉과 제니퍼 로페즈가 이별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마틴 브레스트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가폰을 잡지 않고 있다.

3. 피노키오 – 로베르토 베니니

이미지: Miramax

로튼토마토: 평단 0% / 관객 32%
메타스코어: 11
북미최종: $3,684,305
전세계최종: $41,314,585
제작비: $45,000,000

아카데미 3관왕에 빛나는 [인생은 아름다워]와 로튼토마토 0%에 빛나는 [피노키오]. 놀랍게도 두 작품을 연출한 감독은 동일인물이다. 90년대에 이미 배우로 명망이 높았던 로베르토 베니니는 두 번째 연출작 [인생은 아름다워]로 감독으로서 역량을 증명했으나, 추후 행보에 많은 영화인들이 의문을 품었다. 본인이 연출한 [피노키오]의 주인공을 연기한 것인데,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에 가까웠다. 캐스팅만 의아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겠으나, 안타깝게도 연출, 유머, 스토리텔링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졸작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북미 368만 달러, 전 세계 4,130만 달러로 흥행을 마무리했다. 베니니는 2년 뒤 연출한 [호랑이와 눈]마저 평단으로부터 외면받은 이후 더 이상 메가폰을 쥐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건 2019년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피노키오]에서 제페토를 연기했다는 점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좋은 평가를 받았다.

4. 사우스랜드 테일 – 리처드 켈리

이미지: Samuel Goldwyn Films

로튼토마토: 평단 39% / 관객 41%
메타스코어: 44
북미최종: $275,380
전세계최종: $374,743
제작비: $17,000,000

리처드 켈리는 연출 데뷔작 [도니 다코]로 컬트적인 인기를 끈 감독이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속작 [사우스랜드 테일]이 제대로 망한 이후 제대로 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도니 다코]도 상영 당시 흥행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워낙 저예산(450만 달러)이었던 데에다가 VOD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반면 1,700만 달러가 투입된 [사우스랜드 테일]의 북미 성적은 고작 27만 5,000만 달러,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테러리스트의 핵공격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미국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관객과 다수의 평단에게 ‘욕심만 많은 괴작’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했고, 리처드 켈리는 이후 [더 박스] 정도를 제외하곤 제작자가 아닌 감독으로서는 딱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5. 플루토 내쉬 – 론 언더우드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로튼토마토: 평단 4% / 관객 19%
메타스코어: 12
북미최종: $4,420,080
전세계최종: $7,103,973
제작비: $100,000,000

지금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괴수 영화 [불가사리]의 감독, 론 언더우드는 더 이상 극장가에서 볼 수 없는 이름이다. 할리우드 리포터 등 여러 매체에서 ‘2000년대 최악의 영화’로 선정한 [플루토 내쉬] 때문이다. 에디 머피를 주연으로 내세운 우주 코미디 [플루토 내쉬]는 당시 잘 나가던 언더우드 감독을 믿고 1억 달러라는 거금이 투자됐으나, 돌아온 건 북미 442만 달러, 전 세계 710만 달러라는 초라한 성적표뿐이었다. ‘전혀 모험적이지도(원제: The Adventures of Pluto Nash), 웃기지도 않다’는 혹평과 함께 2003년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5개 부문 후보에도 올랐으나, 다행히(?) 수상에는 실패했다. 언더우드 감독은 [플루토 내쉬]의 처참한 실패 이후 TV 영화를 주로 연출 중이다.

6. 천국의 문 – 마이클 치미노

이미지: United Artists

로튼토마토: 평단 58% / 관객 54%
메타스코어: 57
북미최종: $3,484,331
전세계최종: $3,484,523
제작비: $44,000,000

마이클 치미노는 두 번째 연출작 [디어 헌터]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트로피를 거머쥐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연히 그의 후속작에도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는데, 기대와 달리 서부극 [천국의 문]은 잦은 재촬영 등으로 4,400만 달러까지 불어난 제작비로 고작 348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영화를 향한 평단과 관객의 혹평은 덤이었는데, 당시 시대상과 맞지 않아 ‘반미 영화’라 불리는 수모를 겪는 일도 빈번했다고.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재평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나, 마이클 치미노의 명성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뒤였다. 여담이지만 [천국의 문]의 큰 실패는 치미노의 감독 경력에만 영향을 주는 걸로 그치지 않고 제작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파산의 길로 이끌고 말았다.

7. 주피터 어센딩 – 라나 워쇼스키 & 릴리 워쇼스키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로튼토마토: 평단 27% / 관객 38%
메타스코어: 40
북미최종: $47,387,723
전세계최종: $183,887,723
제작비: $176,000,000

워쇼스키 자매가 여기 있는 것에 의아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센스8]로 좋은 평가를 받은 데 이어, 라나 워쇼스키가 [매트릭스 4]의 메가폰을 잡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매트릭스] 시리즈 이후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비와 배두나가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고, 지금 소개할 [주피터 어센딩]마저 ‘워쇼스키들의 최악 영화’라는 혹평과 함께 실망스러운 성적을 받았다. 제작비 1억 7,600만 달러로 벌어들인 금액은 전 세계 1억 8,380만 달러, 아무래도 제작사 입장에선 ‘쓰리 아웃’ 당한 이들에게 선뜻 기회를 주기 어려웠을 테다. 그래도 [매트릭스 4]가 2022년 개봉을 앞둔 만큼,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워쇼스키 자매 감독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8. 쇼 걸 – 폴 버호벤

이미지: 주식회사 풍경소리

로튼토마토: 평단 22% / 관객 37%
메타스코어: 16
북미최종: $20,350,754
전세계최종: $20,350,754
제작비: $45,000,000

영화계의 암묵적인 룰을 파괴하고 풍자할 줄 아는 폴 버호벤은 여전히 영화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감독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을 안긴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쇼 걸]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주인공이 라스베이거스로 떠나 최고의 ‘쇼 걸’이 되면서 벌어지는 암투와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당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원초적 본능]과 [로보캅], [토탈 리콜]에서 선보인 과장된 폭력 연출과 선정성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지만, 이러한 장기가 오히려 [쇼 걸]에선 독이 되고 말았다. 이후 짐 자무쉬와 쿠엔틴 타란티노 등 세계적인 영화 감독들이 [쇼 걸]을 지지하면서 재평가를 받았다. 폴 버호벤은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차기작 [스타쉽 트루퍼스]까지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할리우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9.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 조지 루카스

이미지: 이십세기폭스필름코퍼레이션

로튼토마토: 평단 65% / 관객 56%
메타스코어: 54
북미최종: $302,191,252
전세계최종: $645,256,452
제작비: $115,000,000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이 조지 루카스의 감독 역량에 의심을 품게 했다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물론 [스타워즈]인 만큼 흥행에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6억 4,500만 달러로는 조지 루카스의 감독 경력에 남은 오점을 지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 중 유일하게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한데, 본인이 정한 설정을 파괴하는 것은 기본, 이입할 수 없는 로맨스와 개연성이 부족한 각본 등 여러 문제점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은 팬들에게 역대 최악의 [스타워즈] 영화로 남고 말았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로 어느 정도 명예 회복에 성공했으나, 삼부작을 마무리한 뒤론 사실상 연출자 직함을 뗀 상황이다. 물론 제작자로서 역량은 여전해서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