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에 다양한 매력을 담을 수 있는 멀티캐스팅이 영화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두 배우가 영화의 흐름을 주도했던 것과 달리, 여러 배우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각인하며 극을 보다 다채롭고 풍성하게 채운다는 장점이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스타 배우를 보는 즐거움과 이야기의 만족도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멀티캐스팅 영화라고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늘은 그중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보지 않아 아쉬운 영화부터 성공적인 영화까지 8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2019)

이미지: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소네 케이스케의 소설을 원작으로,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인 거액의 돈 가방을 쫓는 이야기를 그린다. 욕망에 눈이 멀어 피도 눈물도 없이 무감각해지는 인간군상을 블랙코미디를 가미한 범죄극으로 적나라하게 펼쳐낸다. 전도연, 정우성, 윤여정, 배성우, 진경, 정만식, 신현빈, 김준한, 정가람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희망을 이용하는 연희와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 빚에 허덕이는 태영, 치매 노모를 모시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중만-영선 부부, 악독한 고리대금업자, 빚 때문에 절망의 늪에 빠진 젊은 부부, 불법체류자로 분해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으려 할수록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1987 (2017)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1987년 1월, 한 대학생의 무고한 죽음이 용기를 낸 거대한 함성으로 이어지기까지 일련의 연쇄작용을 담아낸 영화다. 6월 항쟁으로 확산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영화의 발단이며, 서늘한 스릴러로 시작해 점차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로 향한다. 현대사의 중요했던 사건에 참여한 배우진은 그야말로 쟁쟁하다. 공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대공수사처장으로 분한 김윤석을 필두로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휘순, 이희준, 조우진, 설경구, 강동원, 문소리(목소리) 등이 릴레이를 하듯 자신의 위치에서 1987년의 드라마틱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배심원들 (2018)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2008년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으로 기록된 실제 사건에 영감을 얻은 영화다. 어쩌다 배심원이 된 8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증거, 증언, 자백 모두가 확실해 양형 결정만 남아있던 살해 사건을 맡아 처음에는 갈등을 벌이다 점차 행위의 무게감을 느끼고 숨어있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경쾌한 속도감으로 펼쳐낸다. 문소리가 강한 신념의 원칙주의자 재판장을, 박형식이 끈질긴 질문과 문제 제기로 재판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8번 배심원을 맡아, 개성 넘치는 배심원으로 분한 윤경호, 김홍파, 조한철, 김미경, 서정연, 백수장, 조수향과 함께 첫 국민참여재판을 이끈다.

도둑들 (2012)

이미지: ㈜쇼박스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도둑이 한 팀이 되어 작업에 착수하는 이야기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려한 범죄 세계 속 음모와 배신, 엇갈린 욕망을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스릴 넘치는 드라마로 펼쳐 보인다. 10인의 도둑으로 나서는 출연진의 위용도 만만찮다. 감독과 전작에서 함께한 김윤석, 김혜수를 비롯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김해숙, 그리고 임달화, 증국상, 이심결이 저마다 독특한 예명으로 활동하는 도둑들로 나선다.

관상 (2013)

이미지: ㈜쇼박스

왕의 자리가 위태로운 조선, 얼굴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역사적인 사건을 일상에서 친숙한 관상이라는 소재를 더해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상이라는 소재만큼이나 출연진도 눈길을 끈다. 송강호와 이종석이 부자지간으로 호흡을 맞추고, 조정석이 처남으로 가세해 감칠맛 나는 웃음을 더한다. 이정재와 김혜수, 백윤석은 각각 야망가 수양대군, 팔색조 매력의 기생 연홍, 왕을 지키려는 김종서 역을 맡아 관상가 내경을 권력암투로 소용돌이치는 조정에 끌어들인다.

해치지않아 (2019)

이미지: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대형 로펌에 입사했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수습 변호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인 동물원의 정상화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원장으로 부임한 변호사와 동물원 직원들이 다른 동물원으로 뿔뿔이 흩어진 동물들을 대신해 동물로 위장 근무한다는 황당한 설정을 아기자기한 무공해 유머로 담아낸다. 안재홍, 강소라, 박영규, 김성오, 전여빈이 각각 북극곰, 사자, 기린, 고릴라, 자이언트 나무늘보 동물 탈을 쓰고 연기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환상적인 호흡으로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완벽한 타인 (2018)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40년 지기 고향 친구들의 커플 동반 모임에서 핸드폰에 걸려오는 전화, 문자 등을 공유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을 다룬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임에도 신선한 설정과 예측불허의 전개로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자아내는데, 아찔한 긴장감이 팽배한 게임을 집중력 있게 끌고 가는 배우들의 노련함이 눈부시다. 염정아, 유해진, 조진웅, 김지수, 이서진, 송하윤, 윤경호가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로 꽉 찬 호흡을 맞춘다.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궁금해지는 수화기 넘어의 목소리 출연진도 다채롭다. 이순재, 라미란, 조정석, 조달환, 진선규가 핸드폰 주인을 난처하게 하는 전화 속 인물로 깜짝 출연한다.

기생충 (2019)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극과 극의 삶의 조건을 가진 가족이 의도치 않게 연결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져드는 희비극이다. [기생충]은 전원백수 기택 가족부터 부유한 박사장네 가족, 이들 사이에서 벼랑 끝에 내몰리는 가정부 문광과 지하실에 숨어 살던 근세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가족 구성원들의 개성을 보여주며 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완성한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이야기를 엉뚱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배우들의 합은 단연 최고다. 송강호, 장혜진, 최우식, 박소담은 진짜 가족 같은 케미를 뽐내고, 이선균, 조여정은 기존의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부유층 부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장르를 뒤바꾸며 반전을 몰고 온 이정은과 박명환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