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개봉작 및 스트리밍 신작 후기

안티고네(Antigone) – 타협하지 않고 신념으로 전진하는 21C 영웅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에디터 현정: ★★★☆ 머리와 마음이 충돌하는 영화다. 이민자 가족의 막내 안티고네는 추방 위기에 놓인 오빠를 구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도발을 감행하면서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라고 외친다.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 희곡을 현재의 난민 문제와 접목하고, 차별적인 국가 권력의 부조리한 단면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나에마 리치의 단단한 연기로 완성된 안티고네는 단연 흥미롭다. 그는 누군가의 이해와 동의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신념과 가치가 우선이다. 가족의 비극을 초래한 가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결연한 의지가 담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 절박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끝까지 주장을 관철하는 집념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신화적 인물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인물로 완성하고, 현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끌어낸 소피 데라스페 감독의 연출력이 인상 깊다.

런(Run) – ‘아는 맛’이 더 무섭다
이미지: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에디터 영준: ★★★☆ [서치]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런]은 선천적인 장애로 세상과 단절된 채 엄마와 단둘이 지내던 소녀가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아니쉬 차간티의 전작 [서치]가 참신함으로 무장했다면, [런]은 반대로 정통 스릴러에 가깝다. 그만큼 소재가 친숙하다는 의미기도 한데, 차간티 감독의 탄탄한 기본기가 이를 보완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집’이란 한정된 공간의 치밀한 활용법, 그리고 몇몇 신선한 영화적 장치가 자칫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하는 큰 역할을 한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리즈부터 넷플릭스 [래치드]까지, 최근 호러 스릴러 장르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라 폴슨과 신예 키에라 앨런의 열연이 탄탄한 연출과 시너지를 이루어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결말부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이야기가 살짝 느슨해지는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지만, 영화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역시 아는 맛을 잘 활용하면 그만큼 무서운 게 없다.

얼론(Alone) – 살아있는 박진감, 살아있지 못한 메시지
이미지: ㈜안다미로

에디터 홍선: ★★☆ [#살아있다]의 할리우드 버전으로, 도시를 초토화시킨 원인불명 바이러스를 피해 홀로 집안에 고립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살아있다]와 여러모로 닮았다. 등장인물과 설정은 차이를 모를 정도로 흡사하고, 소소한 에피소드 역시 그대로 구현되었다. [얼론]만의 돋보이는 부분도 물론 있다.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부실한 흐름은 개연성을 갖추었고, [#살아있다]에는 없던 강렬한 액션씬도 많아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빠져든다. 반면, 유아인과 더불어 영화를 이끌어가던 박신혜의 존재를 [얼론]에서는 많이 볼 수 없어 아쉽다. 또한 [#살아있다]가 절박한 상황에서 희망을 건네며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많은 생각을 들게 한 것에 비해, [얼론]의 생존기는 어색한 로맨스 분위기가 끼어들어 다소 가벼워 보인다. 장르적 재미와 박진감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감정적인 부분이나 메시지의 호소력은 한국 버전이 낫다.

자기 앞의 생(The Life Ahead) – 잔잔한 파도처럼 다가오는 감동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혜란: ★★★☆ 좋은 이야기는 시대와 공간을 옮겨도 변함없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로맹 가리의 소설을 2010년대 이탈리아로 옮겨놓은 [자기 앞의 생]도 그렇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매춘부의 아이들을 돌보는 로사 아줌마는 어느 날 세네갈 출신의 12살 소년 모모를 억지로 맡는다. 살아남기 위해 마음의 벽을 쌓은 소년 모모는 처음엔 모두에게 공격적이지만, 로사 아줌마가 그의 상처를 이해하고, 모모 역시 로사 아줌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바뀐다. 그 과정 자체에 큰 사건은 없지만 감동은 크다. 러닝타임은 길지 않지만 주조연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하고 서사는 명확하며, 난민 문제 등 현대의 이슈도 놓치지 않는다. 대배우 소피아 로렌이 오랜만에 출연한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감독은 로렌의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 로렌은 그 기대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로렌은 물론, 세상의 풍파를 겪은 소년의 현신 같았던 이브라히마 게예에 감탄할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 연기는 훌륭하나 알맹이가 부실하다
이미지: 넷플릭스

에디터 원희: ★★★ 에이미 아담스, 글렌 클로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힐빌리의 노래]가 극장에 개봉하는 넷플릭스 영화 4편 중 가장 먼저 대형 스크린을 찾았다. 영화는 중요한 일을 앞둔 예일대 법대생이 가족의 부름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모습을 그린다. 약물 중독에 불같은 성격을 지닌 베브를 연기하는 에이미 아담스의 새로운 연기 변신이 인상적이고, 실존 인물을 그대로 데려온 듯한 비주얼로 섬세한 연기를 선보이는 글렌 클로즈 역시 강렬하게 스크린을 사로잡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기 그지없으나, 서사의 중심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빈약하다. 가정 속에서 겪은 폭력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모습은 괴로울 정도로 잘 묘사했지만 J.D.가 엄마 베스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퍼즐 조각이 빠진 것처럼 설득력이 부족하다. 가족의 용서와 포용 대신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향한 개인의 노력이 더 두드러지는 무난한 이야기가 되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