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tvN

로맨틱 코미디란 장르가 무색하게 설레지 않는다. 16부 중 반환점을 돌아 10회까지 흘러왔건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지루함만 안긴다. 구미호와 인간의 사랑이 반복해서 다뤄졌다 해도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인데, 안타깝게도 신우여와 이담의 로맨스는 시청자를 이입시키지 못하고 그들만의 애틋하고 설레는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방영 전 예비 시청자로부터 큰 기대감을 모았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실시화한 데다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은 장기용과 혜리가 주연으로 발탁돼 화제가 됐다. 특히 방영 전 공개된 두 배우의 커플 화보는 진짜 연인 같은 달달한 분위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김비서는 왜 그럴까]를 공동 집필한 백선우, 최보림 작가와 [백일의 낭군님], [꼰대인턴]을 연출한 남성우 감독의 만남도 작품에 믿음을 주기 충분했다.

이미지: tvN

드라마는 999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세상사에 통달하고 무심해진 구미호 신우여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솔직한 성격의 요즘 대학생 이담이 만들어가는 로맨스를 그린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담이 신우여의 구슬을 삼키면서 두 사람의 한집살이가 시작되고, 마주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단순했던 계약 관계에 점차 핑크빛 무드가 조성된다. 구미호와 동거란 소재가 기시감이 있고 익히 예상되는 전개로 진행된다 해도 설렐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그러나 이 흥미로운 설정은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다. 텍스트상에 존재하는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호기심이 들지만, 영상으로 구체화되면서 1차원적인 모습에 머무른다.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들의 비주얼에 기대기만 할 뿐 구미를 당길 만한 입체적인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999살 신우여에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참거나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는 이담은 솔직함보다 귀여운 매력이 더 부각된다. 설정상의 구미호 어르신과 쿨 내 나는 요즘 대학생의 로맨스라는 게 무색할 정도다. 캐릭터를 풍부하게 끌어내지 못한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력도 아쉽지만, 연출과 각색도 안일하다.

이미지: tvN

느슨한 전개 속에 연출은 작위적이고 유치하게 오글거려 몰입을 방해한다. 가볍게 즐기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감안해도 두 사람의 감정선을 서사가 아닌 이미지로 구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면 장면은 멋지고 근사한 순간을 만들어내지만, 충분한 설득력 없이 인물의 감정선을 강요하는 것 같아 당혹감이 앞선다. 소위 말하는 항마력이 요구되는 부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들의 비주얼과 영상미로 설렘을 느끼기에 이야기로서 재미가 너무나 부족하다.

10회까지 전개됐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는 것도 시청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9-10회 방송에서 신우여와 이담이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나 이전까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신우여의 입덕부정기, 이담의 짝사랑 아닌 짝사랑에 가깝다. 가뜩이나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 극 전개가 밋밋한데, 초반 이후 진행 속도가 더뎌지니 답답함이 쌓인다. 특히 두 사람과 관계가 정체되면서 이담의 솔직한 매력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그렇다고 이담을 전전긍긍하게 할 만큼 신우여가 매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 tvN

드라마의 메인 커플이 실망을 거듭하는 가운데, 구미호에서 인간으로 거듭난 양혜선이 단연 빛나는 존재감을 보인다. 캐릭터를 맛깔나게 해석한 강한나의 탁월한 연기력과 도도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캐릭터의 매력이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양혜선이 등장하는 순간에는 심심했던 극에 활기가 돌고, 이담의 절친 도재진과의 관계는 풋풋하게 다가온다. 도재진의 순진함에 감화돼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기대하는 설렘을 유발한다.

이제 이야기는 신우여와 이담이 구미호와 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완성해 갈 로맨스를 보여주는 것만 남았다. 신우여는 이담을 만날수록 인간의 정기를 탐하는 구미호의 본성이 강해지고, 이담은 산신에 의해 계선우와 운명의 붉은 실로 묶여버린 상황. 물론 두 사람은 난관을 극복하고 알콩달콩 사랑을 이루겠지만, 남은 에피소드에서는 충분히 몰입할 만한 여지를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