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와 부하로 만난 두 남녀가 일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흔한 레퍼토리가 이렇게 설레고 즐거울 줄이야. [월간 집]은 오랜만에 만난 로맨스와 코미디의 균형이 잘 잡힌 드라마다. 크고 작은 오해 속에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달달하고, 이들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회사는 개성 있는 직장 동료들 덕분에 소소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면서 현대인의 관심사인 ‘내 집 마련’이란 화두를 던져 현실적인 공감대를 마련한다.

이미지: JTBC

집은 사는(live) 곳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와 집은 사는(buy)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월간 집]은 여느 로맨스 드라마처럼 대조적인 남녀를 내세우는데, 그 초점을 부동산에 맞춘다. 나영원에게 집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공간이고, 유자성에게 집은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 대상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계기도 부동산이다. 대출 많은 집의 세입자 영원은 보증금을 날리고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새로운 집주인 자성은 구구절절 속사정에는 관심이 없다. 이 불편했던 만남은 ‘월간 집’이라는 리빙 잡지사의 에디터와 대표로 이어진다.

두 사람 사이에 부동산이 끼어들긴 했지만, [월간 집]은 로맨스 공식에 충실한 드라마다. 자성 TV를 열심히 보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영원은 어려운 여건에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고 밝고 씩씩하게 나아가려는 캔디형 여자 주인공과 겹친다. 까칠한 성격의 부동산 재벌 자성이 따스한 마음을 지닌 영원을 만나 감화되고 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뻔히 짐작되는 익숙함이 진부하기보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캐릭터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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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은 근로자 평균 임금 상승액이 집 한 채가 벌어다 주는 돈을 따라갈 수 없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이다. 보증금을 날린 후에야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등바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이 현실과 멀지 않다. 반면 자성은 그 스스로 이 시대 마지막 개룡이라고 하듯 현실과 거리를 둔 인물이다. 대신 과장된 츤데레 매력으로 극을 유쾌하게 이끄는데, 영원에 대한 그의 반응이 유치하면서도 순수해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영원의 칭찬에 뜰 뜬 자성이 헬스장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압권이다.

[월간 집]은 두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캐릭터에도 공을 들여 서사를 풍성하게 채운다. 잡지사 직원들 역시 저마다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영원을 보자마자 합격시킨 편집장 최고는 재건축 호재만 바라보다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고, 13년 차 에디터 남상순은 여자친구와 결혼을 위해 청약 당첨만 기다리다 ‘청약 조울증’을 얻었다. 영원을 잡지사에 소개한 여의주는 현재를 즐기는 비싼 월세를 사는 부동산 하락론자다. 적당히 속물적이면서 별난 개성이 가득한 세 사람은 영원과 자성의 로맨스에 튀지 않게 얽히면서 시트콤을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주·조연 캐릭터들이 분량에 상관없이 고르게 활약하느라 상대적으로 서브남 신겸의 존재감이 아쉽다. 초반만 해도 영원과 편의점 메이트로 관계를 쌓아가 나름의 역할이 기대됐는데, 금수저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는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다. 아무래도 그만의 서사가 부족하니 캐릭터의 매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청약에 당첨되고도 여자친구와 헤어진 남상순이 더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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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호연은 몇몇 아쉬움을 상쇄하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정소민은 짠 내 나는 캐릭터에 친근감을 입히는 재능이 탁월하다. 너무 착해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물에 그만의 자연스러움으로 설득력을 부여한다. 편안한 연기 덕분에 김지석의 유자성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김지석은 냉정한 첫인상 때문에 비호감이었던 자성을 보면 볼수록 인간미가 있는 인물로 밉지 않게 완성해간다. 이기적이고 쪼잔한 모습부터 사랑에 서툴고 어색한 모습까지, 인물의 부족한 면면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잡지사 3인방으로 분한 김원해, 채정안, 안창환의 가족 같은 동료 케미스트리도 뛰어나다. 현실 어디에선가 그와 같은 직장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김원해는 그간 많은 작품에서 봤던 감초 역할을 정확히 해내고, 채정안과 안창환은 기존 이미지에서 한 발짝 나아간 모습으로 새로움을 선사한다.

[월간 집]은 이제 반환점을 돌고 종방으로 향한다. 드라마의 인물들은 모두 적정한 선에서 해피엔딩을 맞을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 영원의 내 집 마련 프로젝트는 어떻게 될까.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지켜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선 영원이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