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린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제 몸을 태워 빛을 내듯, 수많은 이들의 우상이 된 스타들 또한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작품들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는지 살펴보자.

박정민 –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 명필름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배우 박정민. 얼마 전, 그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이 배우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밝혔다. 때는 중학교 3학년. 친구의 별장에 3박 4일 여행을 가게 된 그는, 그곳에서 배우 박원상을 우연히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나중에 커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고. 배우 박원상은 당시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박정민은 2016년 발간한 자신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서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자신의 인생 영화이자 배우를 꿈꾸게 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게다가 영화 속 배경이 된 충주는 박정민의 고향이기도 하여, 영화와 그의 연결고리를 더욱더 운명적으로 묶어주고 있다.

그에게 배우의 꿈을 꾸게 한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창 시절에 밴드의 꿈을 꾸던 4명의 친구가 현실을 마주하면서 꿈을 포기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꿈의 상실을 그린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새로운 열정을 품었다. 재밌지 않은가? 지금은 충무로를 주름잡는 배우 황정민과 류승범, 박해일 등의 풋풋한 신인 시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송지효 – 약속 (1998)

이미지: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신씨네

올해로 데뷔 20년에 접어든 배우 송지효. 긴 세월 동안 각종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다양한 이미지를 구축해 온 그는 어떤 계기로 배우가 되었을까? 배우 송지효의 역사는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멜로 영화 [약속]을 통해 1998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친구들과 신촌 극장 나들이를 갔다가 우연히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많은 울림을 받았다고 한다.

[약속]은 조직의 우두머리인 공상두와 의사 채희주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멜로 영화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한국 멜로 영화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 중이다. 특히 성당 앞에서 전도연을 향한 박신양의 고백 장면은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송지효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수많은 관객 중 하나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10번도 넘게 봤다고 말했다. 덧붙여 영화 [약속]과 같은 가슴 시린 멜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 목표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배우 송지효를 비롯하여 수많은 배우들의 롤 모델로 군림하고 있는 전도연과 박신양이 그려내는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보자.

김대명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이미지: CJ ENM/싸이더스

김대명은 드라마 [미생]의 곱슬머리 김동식 대리부터 [슬기로운 의사 생활] 속의 산부의과 의사 양석형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었다고 한다. 남달리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그의 마음을 흔든 건 한국 멜로 영화의 레전드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석규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TV 리모컨 작동법을 알려주는 씬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덧붙여 그는 자신이 죽은 뒤 혼자 남겨질 아버지를 걱정하며 화를 내는 한석규의 연기를 극장에서 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지금의 배우 김대명을 있게 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남자의 가슴 절절한 사랑과 삶을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송강 – 타이타닉 (1997)

이미지: tvN/20세기폭스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소위 ‘만찢남’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며,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송강. 놀랍게도 그는 20살 이전까지 배우라는 직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를 배우의 길로 이끌었을까?

송강에게 배우의 꿈을 가져다 준 영화는 [타이타닉]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TV를 켠 순간 우연히 TV 속의 영화 채널에서 [타이타닉]의 명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인 잭과 로즈가 갑판 위에 서 있는 순간이다. 꿈이 없던 스무 살의 송강은 작품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눈빛에 매료된 뒤 그때부터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개봉 당시, 전 세계인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타이타닉]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멜로 영화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명연기 때문이 아닐까. 2021년, 대한민국 대표 얼굴 천재를 홀린 원조 얼굴 천재의 눈빛에 우리도 다시 빠져보도록 하자.

원빈 – 테러리스트 (1995)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선익필름

어린 시절의 원빈은 자신의 수려한 외모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낸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정비 일을 하던 그의 삶을 바꾼 건 다름 아닌 영화 한 편이었다. 그 영화가 바로 최민수 주연의 누아르 영화 [테러리스트]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특히 액션 영화는 장르 특성상 환경이 아주 척박했다. 이미 수많은 홍콩의 액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던 터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김영빈 감독은 한국 액션 영화의 자존심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가진 미학을 이 작품에 전부 불태워냈다. 더불어 정두홍 무술 감독 또한 홍콩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색이 짙은 액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냈다고 한다.

법이 아닌 주먹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전직 경찰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당시 드라마 [모래시계]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배우 최민수를 대한민국 대표 터프가이로 만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그는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원빈의 대표작 [아저씨]를 있게 한 건 영화 [테러리스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