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코로나19 시국에 지쳐서일까. 최근 들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힐링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의 탁 트인 전경과 바다 내음, 그리고 제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들에게 위안을 전해주고자 한다.

이미지: tvN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한지민, 김우빈, 엄정화, 그리고 김혜자와 고두심까지. 대작 영화 한 편을 제작해도 될법한 배우들의 출연 소식에 기대가 크면서도, 한편으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엮어내는 옴니버스 구성을 통해 우려를 덜었다. 모든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에피소드별로 이들의 서사를 다루니, 작품이 표방하는 ‘우리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전편의 주인공이 다음 에피소드에선 마치 ‘친구 1’처럼 쓱 지나가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드라마가 담아낸 제주도의 풍경도 특별하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제주도를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여행지’라 소개했다면,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를 ‘사람 사는 동네’로 그린다. 제주 방언과 활기가 넘치는 경매장과 수산물 시장, 5일장의 모습이나 극중 인물들이 머물고 있는 푸릉시의 일상 등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화면 너머 보이는 제주도의 탁 트인 아름다운 풍광은 코로나19 여파로 답답했던 우리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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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은희(이정은)와 한수(차승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수는 몹시 지친 채로 오랜만에 고향 제주도 푸릉으로 돌아온다. 딸의 골프 유학으로 벌써 몇 년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데다, 비용은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수준이니 그럴 만도 하다. 우연한 기회에 고향 친구 은희가 상당한 자산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이 은희의 첫사랑이었고, 또 여전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돈을 빌려보기로 한다. 하지만 계획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이 위태로워질 위기에 직면한다.

혹여나 ‘막장 드라마’의 행보를 걸을까 조마조마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마무리됐다. 아마 양쪽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꿈을 포기했던 상처를 딸에게 대물림하기 싫어서 그릇된 방법으로라도 돈을 빌리려던 한수의 행동을 보며 화도 났지만,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도 컸다. 첫사랑의 설렘과 추억이 한순간에 무너진 은희의 눈물을 보며 마치 내 첫사랑이 끝난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둘을 연기한 차승원과 이정은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여운이 느껴지진 않았을 테다. “잘 지내”라는 진심 어린 문자, 한잔의 술과 함께 ‘위스키 온 더 락’을 부르며 감정을 정리하는 은희의 담담한 모습이 담긴 결말은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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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수와 은희” 이후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은 ‘아직까지는’ 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영옥(한지민)과 정준(김우빈)의 로맨스나 동석(이병헌)과 선아(신민아)의 과거사가 그렇고, 한 사건을 계기로 틀어진 친구 관계나 모자지간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다루는 소재에 따라 편차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영주와 현” 에피소드는 그간 봐온 임신한 10대들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심지어 불편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임신 중절을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초음파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여기 임산부가 있어요. 전 아기 아빠예요”라며 소리치는 장면은 상당히 작위적이다. 설상가상 영주(노윤서)가 현(배현성)의 의견에 따라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자 감성적인 노래와 함께 키스신이 등장하니, 임신 중절에 대한 죄의식을 은근히 심어주고 ‘청소년 임신’을 너무 낭만적으로 포장한 게 아닌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다.

물론 이제 겨우 전체 20회 중 6회까지만 방영됐을 뿐이다. 앞으로 14회가 남았으니, 영주와 현을 비롯해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앞으로 흥미로워질 여지는 충분하다(아직 시작조차 안한 이야기들도 많으니 말이다). 모두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한수와 은희” 에피소드만큼의 감동과 여운, 그리고 위안을 줄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