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풀잎피리

제기랄 벌써 서른 살이라니….
이미지: 넷플릭스

이 작품의 첫 곡에선 “제기랄, 90년에 서른 살이라니.”란 가사가 등장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1990년, 무려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것도 29살이 만들어 낸. 극중 화자인 조나단은 지금도 여전히 위세를 높이고 있는 뮤지컬 [렌트]의 창조자(!) 조나단 라슨이다. 이 작품에 꾸준히 등장하는 [슈퍼비아]가 바로 그 [렌트]의 또 다른 이름. 실제 조나단 라슨은 [렌트]가 무대에 올라가는 첫 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극적인 죽음이라 사람들에게 더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 [틱, 틱… 붐!] (이하 [틱틱붐])은 그 작품을 만들던 당시 그의 상황과 마음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그래서 [렌트]를 알고 이 [틱틱붐]을 본다면 더 혼란한 마음이 된다. 록 뮤지컬의 시작이라고 일컫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을 만든 한 젊은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은 그의 30살 생일을 담은 이야기다.

영화 ‘틱, 틱… 붐!’은?

이미지: 넷플릭스

미국의 작곡가, 작사가 극작가, 뮤지컬 배우까지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여준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다. 단순히 그의 일대기를 열거하는 것이 아닌, 여러모로 힘든 과정에서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뮤지컬 [해밀턴]의 극본가이자, 배우, 음악가인 린마누엘 미란다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이며, 앤드류 가필드가 주인공 조나단 라슨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에 골든 글로브, 오스카, 크리틱스 초이스 등 많은 시상식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뮤지컬의 여백을 채운 영화화

이미지: 넷플릭스

 ‘째깍 째깍 펑!’ 한국어로 번역한 ‘틱틱붐’이다. 귀에서 들려오는 환청을 담은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정도에 따라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는 목으로 다가오는 칼로, 누군가는 눈을 향해 다가오는 화살로 표현하더라만 조나단은 귀에 들리는 시계소리로 그 쫓김을 표현했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건 31살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여기 나오는 모든 대사들이 귀에 때려 박혔던 기억이 난다. 뮤지컬 무대와 영화의 스크린은 질감이 매우 다른 매체다 보니,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더 많고 장소의 변화도 훨씬 더 입체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진 메시지는 여전했고, 곡은 여전히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뭔가 영화로 바뀌니 뮤지컬의 빈 공간이 메워지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좋기도 했다. [렌트]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틱틱붐]을 더 애정하는데, 그래서 인지 이 작품의 결말을 볼 때는 그냥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는. 하지만 31살 때 흘렸던 눈물과 한참이 지나고 나서 지금 울컥한 습기는 역시 달랐다.

영화가 묻는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

이미지: 넷플릭스

나이는 그저 숫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마음먹기에 따라 젊게 살 수 있다’는 뭐, 그런 건 아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그 나이에 맞는 사회적 역할이 있고, 나이가 먹을수록 그 짐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0년 전의 서른 살이 갖는 무게감과 30년 전의 서른 살이 갖는 무게감과 지금의 서른 살이 갖는 무게감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아주 간단한 것만 생각해 봐도, 요즘 20대들은 결혼을 거의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6-70살이 완전히 인생의 말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환갑잔치가 없어지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해서). 혹자가 이야기하길, 30년 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적정 나이’에서 0.7-8을 곱해야 지금의 적정 나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 조나단 라슨의 고민은 지금 35살 정도가 하는 고민과 비슷할지도.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관통하는 고민은 결국 ‘나’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걷는 길이 맞는가, 나는 그에 적합한 사람인가.

 ‘당신의 감각을 믿어봐요’ 이 작품에서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가사지만 … 사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남을 믿는 편이 어쩌면 훨씬 더 쉽고, 의미 없는 나무막대기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훨씬 더 맘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 믿고, 그리고 그 믿음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다. 어딘가 도박 같은 무리수가 나 자신에, 그리고 나를 둘러싼 현실에 가득한 걸 잘 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다. 내가 가진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도, 그것을 이 현실이 받쳐줄 수 있을까 걱정되고, 내가 가진 능력이 없다면, 그 부족함을 어떻게 메꿔야하나 걱정되고, 심지어는 당최 능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때도 많고.

30대의 고민을 경쾌한 뮤지컬로 풀어낸 수작

이미지: 넷플릭스

그나마 조나단은 자신이 아침에 눈뜨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람은 살아가기 힘들다. 물론 그것을 찾아 그 길 선상에 있다는 건 나름 다행하고 행복한 일이겠지만,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 한없이 즐겁지 못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만큼 처참한 것도 없다. 존이 가진 딜레마도 그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는 그 일에서 인정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간간히 드는 회의, 나는 과연 재능이 있는 것일까. 지금 이러고 있는게 맞기는 한걸까. 그것이 주는 공포와 불안의 깊이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알기 힘들다.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언제나 닥쳐오는 고민이기에, [틱틱붐]은 아름답다. 잔잔하고 작은 뮤지컬이다 보니, 무대에 자주 올라오는 건 아니지만 –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작품은 무대에서 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30대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가 [틱틱붐]을 통해 만들어 낸 [렌트]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한 불안한 젊은이가 자신의 불안한 젊음을 불태워 만든 작품을 눈앞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는 그 젊음을 바꿔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지만, 그 별이 여전히 우리에겐 남아있다. 그러니 누리자. 영상화된 [틱틱붐]은 그래서 나에겐 더 의미 있고 좋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만 알고 있었던 앤드류 가필드가 이렇게 다재다능한 친구인지 새삼 알게 된 건 또한 이 작품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