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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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1997)을 비롯해 [내 마음의 풍금](1999), [해피엔드](1999)처럼 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있다. ‘칸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 전도연이다. 전도연은 영화 [밀양](2007)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에도 [멋진 하루] [카운트다운] [남과 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같이 다양한 소재, 장르에 도전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배우로 거듭났다.

그러던 그가 이전까지 선보여온 영화와는 다소 다른 결의 영화 [비상선언]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국토부 장관’ 역을 맡아 당차고 국민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공무원으로 공감대 넘치는 연기를 펼친다. 매 작품마다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전도연, 오늘은 그의 매력이 빛나는 영화들을 모아보았다.

너는 내 운명(2005) – 은하 역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여운과 감동을 더욱 깊게 전한다. 2002년 에이즈와 관련된 성추문 사건이 발생했는데, [너는 내 운명]이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박진표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과 황정민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목장 경영을 꿈꾸던 노총각 ‘석중’이 동네 다방에서 일하는 ‘은하’에게 첫눈에 반해, 그에게 진심을 고백하고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도연은 극중에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면서도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은 모르는 여인 ‘전은하’ 역을 맡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하는 여인의 절절한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내며 극의 몰임감을 높였다. 덕분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305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전도연은 대종상영화제와 대한민국영화대상을 포함하여 국내 수많은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밀양(2007) – 신애 역

이미지: 시네마서비스

영화의 제목은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첫 번째 요소 인만큼, 어떻게 짓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밀양]은 다소 직관적인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예다. 실제로 국내 경상남도 밀양시를 의미하는 제목을 가져와, 한자 표기까지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전도연과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밀양]은 남편을 잃은 채,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온 33살의 여인 ‘신애’와 그런 그에게 첫눈에 반한 카센터 사장 ‘종찬’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아낸다.

전도연은 해당 영화에서 남편과 사별 후, 이전까진 큰 연결고리가 없었던 밀양에 아들과 함께 오게 된 주부 ‘이신애’ 역을 맡았다. 극중 신애는 자신의 아들이 유괴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인물인데,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 곁에서도 꽤 깊은 감정 변화를 보여주며 보는 이를 극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전도연은 암울한 상황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서사를 섬세한 감정 연기로 빚어내며 극의 비극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 결과 칸영화제를 비롯하여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수많은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밀양]은 여러모로 전도연의 필모그래피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하녀(2010) – 은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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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작품들이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이야기를 다뤄낸 작품이라면, [하녀]는 도발적이고 거침 없다. 물론 전도연은 [하녀]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다. 동명 영화를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 한 [하녀]는 상류층 대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 ‘은이’가 주인집 남자 ‘훈’과 안주인 ‘해라’, 그리고 집안 일을 총괄하고 있는 하녀 ‘병식’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전도연은 해당 영화에서 상류층 가족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되는 ‘은이’ 역을 연기했다. 극 중 인물들 중에서 가장 높은 권력과 지위, 부를 자랑하는 인물인 ‘훈’의 유혹으로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전도연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인물의 파격적이면서도 위태로운 서사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같은 하녀로 출연한 윤여정 배우와의 대립이 도드라지는데, 전도연은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캐릭터를 완성해 깊은 여운의 엔딩을 선사했다.

집으로 가는 길(2013) – 정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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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은 재미는 물론 그 사건이 세월에 묻히지 않고 세상에 다시 주목하도록 해야 한다. 2004년에 있었던 ‘장미정 사건’을 극화한 [집으로 가는 길]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다. 방은진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전도연, 고수가 주연을 맡은 [집으로 가는 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선택한 일이 자신의 뜻과 달리 마약 운반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낯선 나라의 교도소에 수감된 ‘정연’과 그런 그를 되찾기 위해 애쓰는 남편 ‘종배’의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준다.

전도연은 극중에서 남편 친구의 부탁으로 받았던 짐 때문에 마약사범으로 오인 받아 타국의 감옥에 수감되는 ‘송정연’ 역을 맡았다. 의도치 않게 마약 운반에 연루되어 대한민국으로부터 비행기로 22시간 거리에 위치한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 위치한 감옥에 수감된 것이다. 전도연은 가벼운 대화조차 불가능한 낯선 곳에 있어야만 했으나, 정작 자신의 나라인 대한민국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캐릭터의 사연을 완벽히 소화해내어 감정적 공감과 생각할 거리를 이끌어냈다.

무뢰한(2014) – 혜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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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은 사람을 죽이고 잠적한 ‘준길’을 잡기 위해, 그의 애인인 ‘혜경’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접근한 형사 ‘재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하드보일드 멜로 장르를 표방하는 [무뢰한]은 그만큼 냉철하고 무신경한 시선으로 인물들 사이의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여기에 거칠게 드러내는 멜로 감성으로 이전까지 해당 장르 영화들과 다른 매력을 유발한다.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전도연의 연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캐릭터 분석이 돋보인다.

전도연은 자신의 곁을 맴도는 형사 ‘정재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술집 여자 ‘김혜경’ 역을 연기했다. 겉으로는 퇴폐적인 분위기의 스타일링 강해 보이는 태도를 보여주지만, 내면에는 외로움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전도연은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겉으로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4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 성적은 저조했지만, 작품성과 연기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졌다. 전도연의 열연 역시 많은 영화 팬들에게 인정받으며, 백상예술대상, 올해의 영화상, 부일영화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생일(2018) – 순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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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대한민국이 슬픔에 잠겼다. 지금도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한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제작, 세상에 선보여졌는데, [생일]은 극영화의 시선으로 유족의 아픔을 의미있게 담았다. 이종언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 전도연이 주연을 맡은 [생일]은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수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정일’과 ‘순남’의 가족,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전도연은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엄마 ‘박순남’ 역을 연기했다. 가족을 잃은 유족의 마음을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표현해 보는 이의 눈물샘을 건드린다. 겉으로는 그 비극을 잊고 잘 살아가려고 하나, 때때로 속에서 끓어오르는 슬픔에 어찌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공감가게 그리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