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이미지: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미국 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등 세계적인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거듭난 배우 이정재. 올 여름은 [헌트]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며 관객들을 찾았다.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에미상의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라 [오징어 게임]의 인기와 그 화제성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그가 새로운 도전을 통해 극장가를 찾은 것이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에서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난 이정재의 영화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오랜 세월 꾸준히 관객들을 만나온 배우 이정재는 어떤 작품들을 선보여왔을까?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부터 멜로, 오컬트, 그리고 액션까지 그의 연기 변신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보자.

태양은 없다(1998) – 홍기 역

이미지: 우노필름

충무로 대표 절친 사이를 넘어 ‘청담부부’라는 별명까지 얻은 정우성과 이정재의 만남이 처음으로 이뤄진 영화가 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태양은 없다]가 그 주인공.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태양은 없다]는 펀치 드렁크 현상으로 인해 권투를 그만둔 ‘도철’이 관장의 소개로 찾은 흥신소에서 ‘홍기’를 만난 뒤 여러 사건들이 얽히게 되면서 겪는 청춘의 단면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정재는 흥신소에서 일하며, 언젠가는 강남에 있는 빌딩 한 채를 사는 것이 꿈인 ‘조홍기’ 역을 맡았다. 그는 빚으로 인해 다소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으나, 가능한 명품 정장과 구두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해당 캐릭터를 통해 이정재는 흥신소 직원으로서 능청스러운 모습은 물론, 다양한 빚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덕분에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을 정도이다. 참고로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정우성은 권투 선수 생활이 순탄치 않아 방황하는 ‘도철’ 역으로 그와는 다른 입장에 놓인 캐릭터를 선보였는데, 각기 다른 청춘의 모습으로 두 배우 모두 각각 주목 받게 되었다. 이후 23년 만에 [헌트]를 통해 이제는 감독과 배우로 다시 만났다.

시월애(2000) – 성현 역

이미지: 싸이더스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은 무엇일까.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담은 영화 [시월애]가 영광의 주인공이다. 리메이크는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록 주연의 [레이크 하우스] 이현승 감독이 연출하고 이정재,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는 2년 후로부터 온 편지를 받게 된 ‘성현’과 자신의 편지가 2년 전으로 갔다는 것을 믿게 된 ‘은주’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감성을 교감하는 이야기다.

이정재는 해당 영화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보다 2년 뒤에 보내온 편지를 받게 되는 남자 ‘한성현’ 역을 맡았다. 영화는 우연히 맞닿게 된 ‘은주’와 부탁을 들어주며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는 전개를 인상적으로 그린다. 이 과정에서 이정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통해, 상대 배우인 전지현과의 평범하지 않지만 마음을 적시는 멜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풋풋한 감성을 보여준 두 사람은 10년 뒤 [도둑들]에서는 서로를 속고 속이는 관계로 만나 티키타카의 반전 재미를 선사한다.

신세계(2012) – 이자성 역

이미지: (주)NEW

한국 누아르의 수작 [신세계]도 이정재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신세계]는 신입경찰 ‘이자성’이 수사기획과의 ‘강과장’으로부터 국내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으로 잠입 수사 명령을 받은 8년 후, 해당 그룹의 후계자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신세계 작전을 설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정재는 해당 영화에서 국내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뒤, 그룹의 실세 ‘정청’의 오른팔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 경찰 ‘이자성’ 역을 맡았다. ‘정청’역을 맡은 황정민과 ‘강과장’역의 최민식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그만의 독보적인 캐릭터 연기를 보여줬다. 세 배우의 열연을 통해 영화는 각 캐릭터들의 대사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으며, 46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관상(2013) – 수양대군 역

이미지: (주)쇼박스

소위 팩션영화는 관객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고, 픽션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역학을 소재로 두고 있는 [관상]이 그렇다.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관상]은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이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가 생활하던 중,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이정재는 해당 영화에서 이리의 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자, 역모를 통해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가 ‘수양대군’ 역을 맡았다. [관상]의 전반부에는 관상가 ‘내경’이 자신의 아들인 ‘진형’과 처남 ‘팽헌’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며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중반부 ‘수양대군’의 등장과 함께 분위기가 달라진다. 즉, 이정재의 ‘수양대군’의 존재감이 역대급인 작품이다. 이정재는 해당 영화를 통해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비롯한 수많은 명대사를 남겼으며, 올해의 영화상 및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관상]은 여러모로 이정재의 필모그래피와 빌런 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사바하(2019) – 박웅재 목사 역

이미지: CJ ENM

[사바하]는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의 힘을 보여준 [검은 사제들] 감독과 이정재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작품이다. 사이비 종교라는 색다른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뤄내며 장르적 재미와 다양한 해석을 관객에게 던진다. [사바하]는 신흥 종교 비리를 찾아내는 종교문제연구소의 ‘박목사’가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하던 중 마주하게 되는 미스터리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정재는 해당 영화에서 신흥 종교 비리를 찾아내는 종교문제연구소의 ‘박웅재 목사’ 역을 맡았다.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문스러운 사건들과 마주하는 그의 역할은 [사바하]를 보는 관객들에게 안내자, 길잡이와도 같다. 그만큼 이정재의 연기와 역할 자체가 큰 의미로 그려지는데, 다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영화에 접근성을 더해준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 레이 역

이미지: CJ ENM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코로나 시국으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신세계]의 주역, 황정민과 이정재의 시너지가 폭발해 435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때 펜데믹 시즌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홍원찬 감독이 연출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자신의 마지막 청부살인 임무와 관련된 태국의 납치 사건 소식을 들은 ‘인남’과 그에게 자신의 형제가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된 ‘레이’의 대립을 화끈한 추격 액션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정재는 해당 영화에서 자이니치 출신의 야쿠자로, ‘인간 백정’이라는 잔혹한 별명을 가진 ‘레이’ 역을 맡았다. 영화가 단순한 추격전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긴장감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이정재가 연기한 캐릭터 덕분이라는 평이 많았다. 그만큼 자신의 목표에 광기가 서린 눈빛이 인상적인 인물을 선보였으며, 이는 이정재가 배우로서 보여준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스타일리쉬한 빌런으로 자리했다. [관상], [도둑들], [암살] 그리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까지, 이정재 빌런=흥행 성공이라는 불패신화도 계속 이어갔다.